'東門으로 메시아 올때 일어나야지' 예루살렘 올리브 묘지 미어터진다

입력 2019.10.25 03:00 | 수정 2019.10.31 12:22

[이철민의 Global Prism] <25> 예루살렘 묘지의 정치경제학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예루살렘의 성전산(聖殿山·Mount Temple)을 보기 위해 시 동쪽의 해발 818m 올리브산 전망대에 오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또 있다. 발아래부터 맞은편 성전산에 이르는 기드론 골짜기까지, 올리브산 서쪽과 남쪽 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선 석관(石棺)들이다. 이 석관들은 솔로몬 왕(BC 971~BC 931)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도 장례가 이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다. 지난 3000년간 이곳에 묻힌 시신은 이스라엘 정부가 확인한 것만도 15만 구가 넘는다. 유대인 뉴스통신사인 JTA는 지난 6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뉴욕을 거쳐, 이곳 올리브산 묘지에 어머니의 시신을 매장한 한 유대계 미국인 랍비의 사례를 소개했다.

묘지와 장례식 비용에 1억원

이 올리브산 묘지에서 폭 60㎝·깊이 120㎝ 석관 하나를 누일 수 있는 묘소 비용은 현재 3만달러(약 3500만원)가 넘는다. 10년 전만 해도 2만달러 정도였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에 미리 이 묘소를 사 두었지만, 뉴욕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과 묘지까지 운구(運柩)에 3000~ 5000달러가 든다. 또 이스라엘에 사는 이들의 매장은 무료지만, 해외 유대인이 이곳에 묻히려면 각종 허가에 1만~1만5000달러가 추가로 든다. 장례식에 유가족이 함께하면 우리 돈으로 장례 비용이 1억원도 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미국에선 지난 20년간 시오니즘의 영향으로 "고국에서 살 수 없다면 묻히게라도 해 달라"는 유대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시 동쪽의 올리브산에서 내려다본 성전산과 유대인 묘지 전경
예루살렘시 동쪽의 올리브산에서 내려다본 성전산과 유대인 묘지 전경 /이철민 기자·하아레츠
예루살렘의 여러 묘지 중에서도 성전산 맞은편의 올리브산 묘지는 이스라엘 국내외 정통 유대교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는 날, 그를 맞을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경전(구약성경) 등에 따르면 메시아는 올리브산 정상으로 오며 그때 죽은 자들도 함께 부활한다. 메시아는 올리브산이 마주한 예루살렘 성벽의 동쪽문인 황금문(Golden Gate)을 통해 성전산에 오른다. 따라서 이 묘지에 묻히면 메시아가 올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아 부활하게 된다. 그래서 이곳에 묻힌 시신의 상당수는 두 발이 황금문을 향하게 누워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은 물론, 메나헴 베긴 전(前) 총리와 사어(死語)가 된 히브리어를 일상 언어로 되살린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와 랍비 등 이스라엘 현대사의 많은 위인이 이곳을 마지막 안식처로 삼았다. 또 기독교인으로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의 어머니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와 중세 덴마크의 한 왕비도 여기에 묻혔다. 올리브산 밑자락엔 다윗 왕이 끔찍하게 사랑했지만 아버지에게 반역했던 왕자 압살롬, 솔로몬의 이집트 출신 왕비, 구약성경을 쓴 예언자들의 무덤도 있다.

점령 세력 바뀌면 훼손되기 일쑤

최근까지도 올리브산 묘지는 훼손되기 일쑤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을 때 동(東)예루살렘은 요르단에 속했다. 1964년 당시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3만5000구가 안치된 묘역을 쓸어버리고 올리브산 정상에 호텔을 지었다. 이 호텔은 지금도 '세븐 아치스(Seven Arches) 호텔'이란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또 도로와 주차장을 짓고, 수천 년 된 석관과 묘비를 깨 요르단군의 변기와 도로 표지석으로 썼다. 낡은 무덤 동굴은 들개 서식지가 됐다. 지금처럼 곳곳에 경찰과 경비원이 배치되고 감시 카메라가 176개 설치돼 유족의 묘소 방문이 안전해진 것도 불과 5~6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묻힌 이들이 언젠가 부활해 메시아와 함께 오르길 꿈꾸는, 높이 740m 성전산에서도 현재 유대교 성전은 흔적도 없다. AD 70년 로마군이 유대교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고, 지금은 7세기를 전후해 세워진 황금 돔(dome)으로 유명한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사원 등 이슬람 사원 2곳이 성전산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한다. 또 성전산 동쪽 황금문은 1541년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황제가 돌로 막아버렸다. 황금문은 '구(舊)시가지(Old City)'를 이루는 예루살렘 성벽의 8개 문 중에서도 과거 유대교 성전의 '지성소(至聖所)'에 가장 가까운 문이다. 술레이만 황제는 또 황금문 바로 앞에 유대인들이 부정(不淨)하게 여기는 무슬림 묘지를 만들었다. 유대인의 메시아가 성전산에 오를 수 있는 통로를 완전 봉쇄한 것이다.

묘지난 해소를 위해 23만 구의 시신 안치를 목표로 지하 50m에서 이뤄지고 있는 거대 지하 무덤 공사.
묘지난 해소를 위해 23만 구의 시신 안치를 목표로 지하 50m에서 이뤄지고 있는 거대 지하 무덤 공사. /이철민 기자·하아레츠
매장 수요 늘어나자 묘지 암거래도

그러나 2017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이듬해 5월 이곳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면서, 정통파 유대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성전 복원 움직임도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유일신(唯一神)의 섭리에 의한 역사의 흐름을 믿는 유대교 신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 복원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런 탓일까.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2007년 850명이었던 해외 유대인의 이스라엘 매장은 2016년엔 1590명으로 부쩍 늘었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수는 600만 명으로, 예루살렘에만 52만2000명이 살고 있다. 여기에 해외 유대인 800만 명을 더하면 예루살렘에서 묘지를 찾는 유대인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하묘지 건설로 탈출구 찾아

문제는 예루살렘에서만 한 해 4400명이 숨지는데, 올리브산은 물론이고 시 전체에 더 이상 빈 묘지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주차 건물을 연상케 하는 묘지 빌딩도 옥상까지 빽빽하게 석관이 놓였다. 유대인의 일반적인 장례는 매장으로, 화장(火葬)은 거의 없다. 또 예루살렘엔 유대인 외에도, 무슬림 32만 명을 비롯한 비(非)유대인 34만5000명도 산다. 동예루살렘을 장차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는 무슬림으로서도 자신들 지역에 계속 유대인 묘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길 까닭이 없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올리브산의 많은 유대인 묘지는 시신도 없는 가짜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또 돈 많은 해외 유대인들을 노려, 오랜 세월 방치된 묘지를 파헤쳐 되파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7월 하아레츠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석관을 하나씩 제거하며 반응을 본 뒤 방치된 묘지에 가짜 비석을 세우고 유골을 제거해 2800달러에 판다"고 보도했다.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공간 갈등 끝에 유대인 민간 매장 기구가 마련한 해법은 지하 묘지. 예루살렘 서쪽의 최대 공동묘지인 하르 하메뉴초트 묘지 지하 50m에선 2015년부터 거대한 '카타콤(catacomb)' 공사가 한창이다. 모두 2만5000㎡(약 7500평) 땅속에 1.6㎞ 미로를 뚫어 벽과 바닥에 일반 매장과 다층(多層) 매장이 가능하게 묘혈(墓穴)을 팠다. 시신 23만 구가 안치될 예정으로, 10월 중으로 1차분 8000개 묘소가 분양된다. 지하 묘지 내 이동은 엘리베이터와 전동 카트로 한다. 공사비 3억 세겔(996억원)은 해외 유대인을 상대로 한 묘지 매각 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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