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짜리 이 디지털 기기가 자동차보험 혁명 가져왔죠"

입력 2019.10.25 03:00

[Cover story] 보험 혁명 3명 인터뷰

美 최초 디지털 車보험사 '메트로마일'의 댄 프레스턴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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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메트로마일’ 본사(위 사진). CEO 댄 프레스턴(왼쪽에서 둘째)과 직원들이 그동안 수상한 상패들을 들고 모였다. 대부분 가장 혁신적인 스타트업에 주는 상이다. 뒤로 ‘우리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보다 스마트한 방법을 발명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가운데와 아래 사진은 메트로마일의 톡톡 튀는 사무실 풍경이다. /최종석 기자
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기술과 아이디어로 보험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는 메트로마일(Metromile) 본사는 새 둥지처럼 생겼다.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자 벽에 '우리는 앞서가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미래를 발명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투명하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사무실은 여느 스타트업처럼 톡톡 튀었다. 하나도 똑같이 생긴 자리가 없었다. 헬륨 가스 풍선, 오토바이 헬멧도 보였다. 회의실에는 벤츠, 포드 등 자동차 산업의 영웅들 이름을 붙였다.

유리로 마감해 안이 훤히 보이는 작은 회의실에서 30대 청년이 나와 쑥스럽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메트로마일의 CEO 댄 프레스턴(Preston·34)이었다. 남자 6명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그 회의실은 CEO 집무실이었다.

미국 최초로 '마일당 보험료' 상품화 성공

미국 인슈어테크(InsurTech·보험과 기술의 결합) 스타트업의 선두 주자인 메트로마일은 구글 출신인 데이비드 프리드버그가 2011년 설립했다. UC버클리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기후 변화에 관심이 많아 기후 스타트업을 세우기도 한 인물이다. 메트로마일은 2012년 운전한 만큼 보험료를 내는 보험 상품을 출시했고 단숨에 글로벌 보험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이 3억달러(약 3500억원)에 이른다.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프레스턴 CEO는 2013년 CTO(최고기술책임자)로 합류했다가 이듬해 CEO가 됐다.

"주행거리가 짧으면 사고 위험도 낮아지는데 기존 자동차보험은 사람들의 평균 주행거리만 반영해 보험료를 책정합니다. 주행거리가 짧은 운전자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인 것이죠. 그래서 주행거리에 따라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보험료를 정하는 보험을 만들었습니다."

메트로마일을 가능하게 한 열쇠는 '펄스(Pulse)'라는 작은 텔레매틱스(차량 무선 통신) 기기다. 가로 5.08㎝, 세로 6.35㎝, 두께 2.54㎝로 명함보다 작다. 이 기기를 차량 대시보드 아래 포트(OBD-II)에 장착하면 자동으로 주행거리를 측정해 메트로마일에 전송한다.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다양하다. 주행 구간, 주행 시간, 차량의 평균 속도는 물론이고 차량의 상태도 알려준다. 미국의 경우 청소차가 청소하는 도로에 차를 주차하면 딱지를 끊는데 미리 '청소차가 오니 이동 주차하라'는 경고도 해준다. 여기에 쓰기 편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짝을 이룬다. 프레스턴은 "1920년대부터 참신한 아이디어 수준에 그쳤던 '페이-퍼-마일' 보험이 현실이 된 것은 이런 GPS(위성항법장치)와 센서 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메트로마일은 기존 보험사들에는 '공통의 적'이다.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자에게서 또박또박 목돈(보험료)을 받아 굴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든 요즘 소비자들은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원합니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죠. 메트로마일이 기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빅데이터로 운전 습관까지 분석

보통 자동차보험은 1년 단위로 가입한다. 한국의 경우 67만원 정도를 가입할 때 낸다. 보험료는 보험사가 차종, 운전자의 나이 등을 고려해 정한다. 주행거리는 평균치를 적용한다. 반면에 메트로마일의 보험은 월 단위로 정산한다. 월 기본 보험료에 운전한 만큼 추가 보험료(주행거리×마일당 요금)가 붙는 방식이다. 기본 보험료 수준과 마일당 요금은 사람마다 다른데 사고를 낼 가능성이 큰 사람일수록 높다.

"우리 플랫폼에는 축적된 수억 마일의 운전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과거 손실 데이터를 분석해 보험료 산정 모델을 만들었어요. 차종, 운전자 나이 등 기존 보험사들이 확인하는 요인 외에 운전자의 운전 습관, 주로 운전하는 시간대 등도 고려합니다."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프레스턴은 "메트로마일은 보험사 이전에 데이터 회사"라고 했다. 그는 "다른 보험사들이 상품 내용은 비슷하게 베낄 수 있을지 몰라도 2012년 이후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와 활용 노하우는 따라올 수 없다"며 "데이터 과학과 머신러닝, 인공지능(AI)을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운전한 만큼 보험료를 낸다는 아이디어는 심플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험 상품으로 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주행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선 GPS 정보 이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주차 위반 딱지를 피하게 하는 기능은 더 고차원적이죠."

가입자 보험료 부담 50% 감소

메트로마일이 지난해 새로 가입한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보험을 갈아타면서 연평균 741달러를 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연평균 자동차보험료가 1500달러 수준이니 보험료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1년에 1140달러를 아껴 새집 장만하는 데 보탰다는 가입자도 있었다고 한다. 프레스턴은 "미국인의 65%는 주행거리가 짧은 도시 운전자이고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다"며 "연간 1만2000마일(약 1만9000㎞) 미만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는 주중에는 우버 등 공유 차량을 이용하고 주말에만 자가용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들은 사고 처리,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해요."

최근에는 퇴직자 회원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한다. 보험료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사람들도 메트로마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실직하거나 환경이 바뀌면 가장 부담되는 게 보험료입니다. 이걸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재도전에 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험료를 절약해준다는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아요."

메트로마일은 2017년 '아바(Ava)'라는 AI 보험금 지급 시스템도 개발했다. 가입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보험금을 청구하면 AI가 심사해 자동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사고가 나면 고객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앱을 열고 버튼 3개만 누르면 즉시 보험료 지급 승인이 떨어져요. 그리고 그날 바로 통장에 돈이 입금된다면? 최고의 기술은 가끔은 마술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른 보험사로 옮겨가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메트로마일에 투자한 일본 도쿄해상이 주목한 것도 이 시스템이다.

프레스턴은 최근 트렌드인 디지털 보험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진짜 디지털 보험사는 단순히 온라인으로 보험을 파는 것을 넘어야 합니다. 고객이 누구인지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객이 어떻게 운전하고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를 파악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해야죠. 기존 보험사들은 가입 이후엔 사고가 나야 고객과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앱을 통해 고객에게 주차 위반 딱지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객의 경험이 디지털 보험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작동한다

메트로마일의 ‘페이-퍼-마일(pay-per-mile)’ 보험 가입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화로 가능하다. 생년월일, 성별, 차종과 연식, 운전면허 정보, 직업, 최근 3년간 면허정지·취소 사실 등을 입력하게 돼 있다. 그리고 의료비, 사고 시 렌터카 비용, 긴급 출동 등 보장 범위를 선택한다.

이렇게 입력하면 자신의 월 기본 보험료와 마일당 요금이 나온다. 사고 위험이 높은 고객의 경우 보다 높은 월 기본 보험료나 마일당 요금을 부담하게 된다. 보험료는 ‘월 기본 보험료 + (주행거리 × 마일당 요금)’ 공식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 보험료는 최소 29달러부터 시작하는데 보통은 40달러(약 4만7000원) 수준이라고 메트로마일은 밝혔다. 마일당 요금은 보통 5센트 수준이다. 예를 들어 한 달에 450마일(약 724㎞)을 운전한 사람은 보통 62달러를 보험료로 내게 된다. 연간으로 따지면 744달러다. 미국의 연평균 자동차 보험료가 1500달러 정도니 절반 수준인 셈이다. 보험료는 하루에 250마일(약 400㎞)까지만 매긴다. 250마일 넘게 달린 부분에 대해선 무료다.

보험료는 한 달에 두 번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가입하면 월 초에 월 기본 보험료를 먼저 결제해야 한다. 그리고 월말에 그동안 주행한 만큼 요금을 추가로 낸다. 이 보험이 작동하려면 메트로마일에서 무료로 주는 텔레매틱스(차량 무선 통신) 기기 ‘펄스(Pulse)’를 차량의 대시보드 아래 포트에 장착해야 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매일 주행거리와 이달의 예상 보험료를 확인할 수 있다.

메트로마일 보험의 또 다른 강점은 편리한 스마트폰 앱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스마트폰 앱으로 사고 접수가 가능하다. 가입자가 보험 회사에서 받는 보험금 신청도 앱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보험금을 신청하면 AI(인공지능)가 자동으로 심사해 그날 바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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