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 침체 신호'를 한국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

    •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입력 2019.10.11 03:00 | 수정 2019.10.11 09:21

[WEEKLY BIZ Column]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미 투자업계에선 올여름 새로운 근심거리를 찾았다. '장단기 금리 역전(inverted yield curve)' 현상이다. 통상 단기 채권 금리(수익률)는 장기 채권 금리보다 낮다. 장기 채권이 회수 기간이 길다보니 원금을 떼일 수 있다고 보는 탓에 높은 이자율이 붙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지난 5월부터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높아졌다. 영국과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고, 한국은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도 8월 잠깐 장단기 역전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흔히 불황의 전조처럼 통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상화하려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금리 역전이 곧바로 R로 이어지진 않아

일단 명심하자.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R(Recession·경기 침체)을 불러오는 신호가 아니다. 단지 신용 경색을 나타내는 정도다. 은행은 저금리인 예금을 받아 고금리로 대출을 해주면서 차익을 얻는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은행 대출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은행이 대출 규모를 줄이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금리 역전이 R을 촉발하는 방아쇠는 아니다. 과거 금리 역전 후 R이 나타나기까진 6개월에서 31개월까지 걸렸고, 1998년엔 금리 역전이 있었지만 R은 없었다. 금리 역전이 무조건적인 징조는 아니라는 얘기다. 왜일까? 은행들은 이제 마이너스 금리인 유럽·일본에서 자금을 조달해 미국에서 빌려주는 금리 재정 거래가 가능하다. 장단기 금리 역전을 보는 기준은 국채 금리인데 시장 금리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론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단기 금리가 내려가 장단기 금리 차는 다시 커진다. 그런데 요즘은 꼭 그렇지 않다. 미국 은행들은 필요 이상으로 예금이 넘쳐서 더럽게 싼 이자율로도 대출해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미 연준 기준 금리는 2.00~2.25%대이며, 국채 3년물 금리는 1.96% 수준이다(이후 연준이 추가 인하를 단행해 현재는 1.75~ 2.00%). 반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미국 은행 평균 예금금리는 0.09%에 불과하다. 미 은행들이 제로 금리(0%)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고 유럽·일본마저 마이너스 금리라면 기준금리 인하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앙은행은 사실 장기 금리 하락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금리 역전은 기준금리 인하로 해소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 금리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15년째 마이너스고, 독일 채권 금리는 모두 마이너스다. 한국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지난해 2.25%에서 올 9월 1.36%까지 하락했다. 그렇다고 자금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2012년 이후 계속 위축되고 있다.

'양적완화' 시대에 미 연준은 장기 국채를 대거 사들여 장기 금리를 낮췄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차입을 늘리지 않았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기업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1년 전에도 저금리였지만 수익성이 불투명해 진행하지 않은 신규 사업을 금리 조금 더 낮춘다고 하려 하진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 국채 매각 나서야

진짜 문제는 자금 순환이다. 신용이 좋은 대기업은 대출에 아무 장벽이 없는데 대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그 반대다. 한국에선 정책 지도를 통해 대형 시중은행 5곳이 지난 1년간 중소기업 대출을 29조원가량 늘리도록 유도했지만 은행들 입장에선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장단기 금리 격차가 줄면서 수익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을 정상화하는 방법 중 쉬운 건 양적완화 때 매입한 장기 국채를 내놓는 것이다. 미 연준이 했던 것처럼 천천히 해선 소용이 없다. 미국, 영국, EU,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일본에서 일제히 신속하게 수조 달러에 이르는 자산을 다 팔아버려야 한다. 전 세계 장기 금리는 강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이 이렇게 움직이면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조치는 마법처럼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금리 곡선이 정상화되면서 전 세계 여기저기, 미국은 물론, 일본·유럽에서 설비투자가 늘고 유보했던 프로젝트를 재개할 것이다. 한국 역시 새로운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코스피는 물론 전 세계 증시도 새로운 활력을 찾아갈 것이다.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하려고 할까? 미지수다. 아마 기준금리를 계속 낮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글로벌하게 보라. 은행들에겐 유럽·일본과 금리 재정 거래를 할 기회가 널려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주는 근심을 날려버릴 좋은 환경이란 걸 자각하면 된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View & Outlook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