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하양·초록 삼색 바이오 市場 문 열렸다”

입력 2019.10.11 03:00

[Cover Story] ⑥~⑦ 전문가 인터뷰, 삼색 바이오 시장

유전자를 블록 조립하듯 모아 만든 기초 유전자 회로.
유전자를 블록 조립하듯 모아 만든 기초 유전자 회로. /블룸버그
빨강  암·말라리아 등 난치병 고치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인간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게 된 인류는 이제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전병의 근원을 쫓아가 발병을 예방하고, 면역 세포를 변형해 난치병을 극복하기 이르렀다. 이 중심에 선 기술이 레드 바이오(Red Biotechnology)다. 레드 바이오는 생명공학이 의학·약학 분야에 응용된 개념으로 혈액의 붉은색을 본떠 붙여진 명칭이다. 2017년 기준 글로벌 바이오 산업 시장에서 레드 바이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57.3%(2180억달러)로 가장 크다.

처치 소장 연구팀을 포함해 하버드대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에서는 합성생물학 기술을 응용해 최근 생명공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인 '면역 세포 치료제'를 비중 있게 연구한다. 기존 화학 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하지 않고 정상 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에 환자가 탈모, 소화 장애, 기력 저하에 시달렸다. 반면 면역 세포 치료제는 환자 본인에게서 분리한 면역 세포를 합성생물학 기술을 응용해 암세포를 잘 공격하도록 변형하고 활성화해 환자에게 다시 주입한다. 자기 몸의 면역 세포를 이용하는 데다 암세포만 표적 공격할 수 있어 부작용이 적거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암세포에 대한 환자의 면역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한다.

합성생물학 기술은 기존에 드물거나 비쌌던 성분을 대량 생산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미국 버클리대 연구팀은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효모에서 식물성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내륙을 포함한 저개발 지역에 내성을 갖춘 말라리아 바이러스가 창궐했지만 몇 안 되는 말라리아 백신의 약효는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약은 등장한 지 3년도 채 안 돼 시장 점유율 3분의 1을 차지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바이오 연료 생산에 투입할 미생물을 양산하기 위한 식물성 셀룰로오스.
바이오 연료 생산에 투입할 미생물을 양산하기 위한 식물성 셀룰로오스. /블룸버그
하양  친환경 플라스틱·에너지 만들고

바이오화학 또는 산업바이오라고도 칭하는 화이트 바이오(White Biotechnology)는 바이오플라스틱, 바이오에탄올처럼 석유·석탄 기반 화학제품을 대체할 만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분야를 말한다. 합성생물학과 에너지 분야는 좀처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합성생물학을 이용하면 죽은 생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석유·석탄과 달리 살아 있는 미생물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 생물학적 분해 과정을 이용해 옥수수나 사탕수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얻는 방법이 간헐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데다 식용 작물을 태워 에너지를 만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면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설계한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투입하면 비식용 작물이나 낙엽 같은 죽은 식물에서도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낼 수 있다. 최근에는 컬럼비아대 유전공학 연구소와 뉴욕대 제프 보에크 교수 연구팀이 미생물에서 얻은 효소 유전자를 옥수수에 이식, 잎과 줄기의 셀룰로오스를 에탄올 원료에 해당하는 탄수화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렇게 되면 옥수수 알맹이는 식용으로, 잎과 줄기는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합성생물학을 응용한 바이오 연료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챈 거대 에너지 기업들은 일찍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시장이 무르익기도 전인 2009년 합성생물학 관련 1세대 스타트업인 신테틱 지노믹스와 6억달러(약 7200억원) 규모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엑손모빌은 투자의 결과물 중 하나로 해조류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연료가 상용화 초읽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유전자 합성·조작 기술로 수확성을 높인 알 굵고 꽉찬 옥수수.
유전자 합성·조작 기술로 수확성을 높인 알 굵고 꽉찬 옥수수. /블룸버그
초록  이전에 없던 새 생명체 '창조'

우량 형질을 가진 개체를 교배해 품종을 개량하는 것을 육종(育種)이라고 한다. 씨 없는 수박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아예 유전자에 손을 대 고유 유전 정보가 변형된 우량종을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제초제나 해충에 강한 콩 같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GMO)가 그 예다. 육종으로 개량된 품종이든 GMO이든 종(種) 자체가 바뀌진 않는다. 반면 합성생물학 기술을 응용하면 자연적인 교배 방법으로는 유전 정보를 전혀 주고받을 수 없는 동떨어진 종들을 인간의 의도대로 섞어서 이전에 없던 생물체를 만들어 내거나, 유전 정보를 교란해 아예 멸종시킬 수도 있다. 농·식품 전체를 아우르는 그린바이오(Green Biotechnology) 영역에서 합성생물학은 이렇듯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의약품이나 에너지 분야보다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그린 바이오 분야에서 합성생물학의 적용은 더디고 신중하다. 합성생물학을 통해 만들어진 동식물이 자연계로 유출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UC버클리를 중심으로 기존 작물을 재설계해 육류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물을 만들거나, 구제역과 같은 해충과 질병에 내성이 있는 가축을 만드는 연구가 조심스럽게 이뤄지는 정도다.

가장 눈에 띄는 상업적 성과로는 미국 듀폰이 효모와 세균을 이용해 만든 섬유 소로나(Sorona)다. 소로나는 석유나 동식물에서 얻어지는 기존 인공 섬유와 달리, 합성생물학을 통해 배양한 효모와 세균에 옥수수에서 뽑아낸 당을 먹여 만든 바이오 섬유다. 스판보다 내구성과 복원력이 좋아 세탁 과정에서 마모가 적고, 커피나 케첩 같은 이물질을 쏟아도 얼룩이 거의 남지 않는다. 여기에 가격까지 저렴해 미국에서는 요가복이나 카펫을 만드는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

Knowledge Keyword

: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생물학에 공학적 관점을 도입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 요소와 시스템을 새로 설계하고 제작하는 학문. 이미 기능이 알려져 있는 유전 물질을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표준 부품화해 필요에 따라 더하고 빼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
생명체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개체나 부산물을 얻기 위한 기술의 총칭. 특정 유전 형질을 갖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하는 DNA 재조합 기술, 수많은 DNA 조각들을 읽고 분석하는 해독 기술이 여기 속한다.

유전체(genome)
: 유전체(genome)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성한 말로 생명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DNA 유전 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사람의 유전 정보는 DNA를 구성하는 A(아데닌)·G(구아닌)·C(시토신)·T(티민) 등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인류의 유전자는 약 99%가 같지만, 서로 다른 1% 때문에 개인별 형질 차이가 나타난다.

: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유전병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독일·중국·일본 등 12개국 과학자들이 진행한 DNA 분석 프로젝트. 27억달러(약 3조2300억원)가 투입된 거대 국제 과학 연구 프로젝트를 이용해 31억쌍에 이르는 사람의 DNA 염기 서열이 모두 지도화됐다.

: 유전자 변형 생명체(GMO)
‘자연적으로는 유전 정보를 서로 교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다른 생물의 특정 유전자를 기존 생물에 유전 공학적 방식으로 삽입해 새 성질이 발현되도록 만든 생명체의 총칭. 수확량을 늘리거나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만들면 인류에게 축복이 된다는 의견과, 장기적으로 신체 이상이나 환경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팽팽히 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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