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한 매머드까지, 당신이 만들고 싶은 생물은 모두 만들 수 있다”

입력 2019.10.11 03:00 | 수정 2019.10.21 00:17

[Cover Story] ⑥~⑦ 전문가 인터뷰, 삼색 바이오 시장

하버드大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장 조지 맥도널드 처치

"빙하기에 사라진 매머드를 2년 안에 살려 내겠다."

2016년 2월 세계 최대 과학민간단체 전미과학진흥협회(AAAS)가 개최한 연례 회의는 한 학자 발언이 끝나자마자 웅성거렸다. 발언의 주인공은 조지 맥도널드 처치(Church) 하버드대 부설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Wyss Institute) 소장. 2014년부터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추출한 매머드 DNA를 연구해 온 유전학계 석학이다. 명망있는 과학자 발언이긴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에 회의장은 어수선해졌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공상과학(SF) 소설 수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몇 년이 지난 후 기껏해야 실험용 접시 위에 담긴 정체불명 세포 물질을 보는 게 전부일 것"이라면서 폄하했다.

하버드大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장 조지 맥도널드 처치

너무 성급했을까. 약속한 2년을 넘어 3년이 지나가는 지금 처치 교수가 말한 매머드는 아직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매머드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고 여전히 연구소 실험실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매머드를 살려내겠다는 의미는 2년 안에 아시아 코끼리에 매머드 유전자를 접합한 '매머펀트(mammophant)' 배아를 만들겠다는 뜻이었어요. 바깥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연구팀은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 유전체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툰드라 지대에 매머드와 유사한 실제 동물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2025년쯤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머드는 얼음 속에 보존된 사체가 많아 복제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막상 복제를 하려다 보니 온전한 세포를 구하기 어려웠다. 대신 처치 교수는 손상된 세포들에서 조각난 DNA들을 모아 매머드의 전체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기준으로 오늘날 아시아코끼리의 유전자를 교정해 매머드 형태로 바꾸면 복제를 위한 온전한 DNA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체학 세계 최고 권위자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 부설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에서 만난 처치 소장은 말투에 합성생물학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넘쳤다. 얼굴 절반을 넘게 뒤덮은 덥수룩한 수염 속에서는 안광이 빛났다. 그는 유전체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다. 헬리코박터균의 유전체 서열을 처음으로 밝혀내는 등 독특하고 기발한 연구 성과로 유명하다. 아홉 살에 컴퓨터를 손수 만들고 열다섯 살에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 3종을 깨쳤다. 하지만 정규교육에는 잘 적응하지 못해 고등학교 1학년을 두 번 다녔다. 듀크대학에서는 학점 미달로 퇴학을 당했지만, 그를 품어준 하버드대학에서는 박사 학위에 이어 연구소장 자리까지 꿰찼다. 2006년부터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알아야 한다며 '개인 게놈 프로젝트(PGP)'를 시작해 여태 이끌고 있다. 자신의 유전 정보를 정확히 알면, 향후 어떤 질병에 걸릴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기 이식 대기자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면역 거부 반응이 없는 이식용 인간 장기를 돼지에게서 키우고 있다. 어두운 연구소 책장 한편, 검은색과 흰색 얼룩이 교차한 듀록 돼지 모형과 어린이 손바닥만 한 초록색 매머드 인형을 쓰다듬으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DNA 언어가 만들어진 것은 수십억 년 전이지만, 우리가 그 언어를 해독하는 법을 배운 것은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를 포함해 동료 학자들이 인간을 구성하는 31억쌍 DNA 염기 서열 전체를 처음 해독하는 임무를 완수하기까지는 13년 세월과 약 27억달러가 들었죠. 지금은 어떤가요. 당신이 친자 확인을 한다거나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생겨서 유전체 전체 염기 서열을 분석하고자 한다면 1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비용은 한 1000달러 정도 들겠죠. 이런 발전 속도로 10년이 지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직도 매머드가 꿈 같습니까?"

군사작전 하듯 바이러스 백신 급조

처치 소장은 합성생물학의 윤리적 문제점보다 가능성에 온전히 집중하는 대표적인 연구자다. 처치 소장은 "윤리적 논란을 앞세워 지레 그만두거나 속도를 늦추기에는 이 연구가 가져올 혜택이 너무도 크다"며 "45년 동안 염기 서열 같은 유전공학 연구에 집중하다보니 초기에 타당하지 않아 보였던 연구가 시대 변화에 따라 꼭 필요한 연구로 바뀌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3년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퍼진 H7N9형 조류인플루엔자(AI)는 중국 내 감염자 1625명 가운데 사망자가 623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인근 국가들은 노심초사하며 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물리칠 새 백신이 언제 나올지 온 신경을 기울였다. 세계 최대 규모 제약 회사 노바티스는 인플루엔자 발견 후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H7N9형 조류인플루엔자용 백신을 개발해 냈다.

처치 소장은 "합성생물학을 응용하면 일주일이 걸렸던 개발 기한을 하루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면서 "이전부터 매년 유전자 정보 체계를 쌓아놓고, 유전자 복제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길 법한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합성생물학이 가진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연구 속도가 늦어졌고 이 때문에 제때 질병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처치 소장 연구팀은 마치 대(對)테러 훈련에 나선 군대가 작전을 수행하듯, 불시에 닥친 바이러스에 대항해 백신을 신속하게 만드는 법을 수차례 예행연습하고 있다. 하루라는 시간이 이런 연습을 통해 산출됐다. 위생 당국이 바이러스 DNA 염기 서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고 가정하고, 이를 재빨리 분석해 똑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간 남짓. 반나절이면 이 중에서 변이된 바이러스를 콕 집어 뽑아낸 다음, 컴퓨터로 모델링해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로 바꾼다. 다음 순서는 합성생물학 기술을 사용해 미생물에 백신 정보를 뒤집어씌운 뒤 양산에 나설 차례. 처치 박사는 "세포의 유전자 복제 과정에 관한 최근 연구 덕분에 염기 서열을 98%까지 정확하게 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목표로 하는 99.9% 정확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며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주탐사와 같은 거대한 과학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생물에 대한 더 많은 유전자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유전자 기술은 세계적 수준

인터넷 기술이 1990년대 IT 스타트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듯, DNA를 분석해서 새로 설계하고 조립하는 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태동시키고 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서전 작가였던 월터 아이작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21세기의 최대 혁신은 생물학과 기술의 교차 지점에서 나올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한 미국 전역에서는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넷스케이프 개발자 같은 IT 업계 큰손들이 앞장서서 유전자 재조합뿐 아니라 인공지능까지 연계한 합성생물학에 매년 수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영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과학 선진국 역시 바이오경제에 대한 청사진을 일찌감치 마련하고 독자적인 합성생물학 기지를 구축하는 추세다.

처치 소장은 "합성생물학이 더 발전하려면 지금 단계에서는 연구 활동이 국가나 기업·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모든 정보를 제한 없이 인류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며 이런 추세에 조심스러운 우려를 나타냈다. "세계 각국의 유전학자뿐 아니라 선도적인 기업들의 역량이 한데 모이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성찰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 그는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한국의 유전자 분석 기술 역시 합성생물학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한국이 참여하는 공동 연구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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