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려는 인간 욕망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 맹목적 기술개발 앞서 사회적 논의 선행해야

입력 2019.10.11 03:00 | 수정 2019.10.30 21:40

[Cover Story] ⑥~⑦ 전문가 인터뷰, 삼색 바이오 시장

합성생물학 궁극적 목표는 永生과 長壽
유토피아 환상 뒤엔 디스토피아 공포도

기원전 2000년대에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자 최초의 문학작품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보다 1200년이나 이르다. 소설 속 주인공인 길가메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던 도시 우루크의 반신반인(半神半人) 왕으로, 불사(不死)의 비결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매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나중에는 죽지 않는 법은 고사하고 늙지 않는 법이라도 알고 싶어 하지만 이마저 실패한다. 결국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평범한 행복을 즐기기로 결심한다.

아서 캐플란
지난달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만난 아서 캐플란 뉴욕대 랭건 의료센터 생명윤리학 교수는 기자가 "합성생물학이 생명윤리에 위협이 되느냐"고 묻자 뜬금없이 '길가메시 이야기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합성생물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뭘까요. 신화와 전설, 대중문화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생명은 결국 한 곳을 가리킵니다. 영생(eternal life) 아니면 장수(long life)죠. 인간이 유전체 정보를 교정하거나 편집할 능력을 손에 넣은 이상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너그러워 보이는 첫인상과 다르게 질문을 받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세계 최초로 합성 생물체를 만들어낸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세운 회사 이름이 '인간 장수(Human Longevity)'입니다. 노골적으로 생명 연장을 선전하는 이 회사가 현재 합성생물학 업계를 통틀어 가장 투자금을 많이 받고, 기업 가치도 제일 큰 곳이에요. 생명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대체로 관심이 없다는 증거죠."

벤터 박사는 2010년 인공 박테리아 개발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는 인공 염색체 1개를 갖춘 박테리아 'JCVI-syn1.0'을 개발했다. 최초의 인공 생명체였다. 게놈 해독으로 조물주의 비밀을 벗기려 했던 인간이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뛰어든 첫 상징이었다. 첫 인공 생명체가 나타나자 언론과 대중은 유전자 변형 생물에 대해 더 구체적인 논란을 제기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행위에 대해 윤리적 공세를 쏟아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결과에 학계와 산업계는 열광했다. 투자에 가속이 붙었고 뭉칫돈이 오갔다. 캐플란 교수는 "이후 펴낸 합성생물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창조(creation)'라는 단어를 경쟁적으로 사용한다"며 "단순히 생명체의 작동 원리나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본인이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고 해야 비로소 수긍하려는 욕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기금이 두둑한 미국 내 주요 대학들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대학 수준을 넘어서는 막대한 연구비가 필요하다. 이런 자금은 기업이 지원하는 거대한 재단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법한 연구 결과들도 기업에 불이익을 줄 것 같으면 쉽게 묻힌다"고 덧붙였다.

캐플란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90년대 무렵에는 GMO 농산물에 대한 생물안전성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식품 대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2000년대 이후에는 GMO 반대 여론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합성생물학을 응용해 만든 생물체는 GMO보다 훨씬 큰 위해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그간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관찰해야 발현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생물 안보 역시 마찬가지다.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병균이나 독성 물질을 훔쳐 현재의 백신이 통하지 않는 새 바이러스를 만들어 생태계에 방출할 경우 아무도 손쓸 수 없는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 캐플란 교수는 "헐크·스파이더맨·캡틴 아메리카 같은 히어로들이 유전적 돌연변이나 개량을 통해 일반인을 월등히 넘어서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대중 문화적 설정 역시 우월한 유전자에 대한 동경심을 무의식 중에 자극하고 있다”면서 "테크노 유토피아의 뒷면에는 '워킹 데드'에 나오는 좀비처럼 디스토피아적인 두려움도 공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