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 등 테크기업들은 개인 선택, 즉 자유의지를 빼앗으려 한다"

    • 박상현 작가·번역가

입력 2019.10.11 03:00 | 수정 2019.10.11 21:00

'생각을 빼앗긴 세계' 저자 프랭클린 포어

/에비 메저스(Evy Mages) 제공
지난 8월 미국 48개 주 검찰총장이 모여서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페이스북을 상대로 반독점 조사를 이미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거대 독점 테크 기업들에 대한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프랭클린 포어(Foer)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 안고 있는 지식 독점 문제를 파고든 저널리스트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온라인 미디어 슬레이트와 뉴리퍼블릭 편집장을 거쳐 애틀랜틱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인쇄 매체를 비롯한 지식산업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 '생각을 빼앗긴 세계(World Without Mind)'란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테크 기업들은 '사색 가능성'이란 소중한 자산을 파괴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를 보고 있고 늘 주의산만한 상태로 사는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이어 "테크 기업들은 개인주의(개인성)의 핵심을 이루는 자유의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각 개인이 하루하루 내리는 작은 선택들을 자동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뉴스를 읽을지, 어떤 물건을 살지, 어떤 길로 갈지, 심지어 어떤 친구를 사귈지까지 테크 기업들이 만든 알고리즘에 의존하면서 살도록 조종한다는 얘기다. 이들이 만든 기기나 웹사이트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지 않고, 지식재산권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저작권 가치를 무시한다. 포어는 "테크 기업들의 핵심은 지식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지식을 거르고 정리해주는 데 있다"면서 "우리는 이들에 의존해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건너뛰어야 할지 결정하며 정보의 승자와 패자가 뭔지 골라낸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사실상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을 견제할 대항마가 잘 눈에 띄지 않아 이들의 폭주를 제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민주주의 위기 불러온 테크 기업

―20년 전만 해도 테크 기업들을 보는 시각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근래 그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예전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뻗어나가는 걸 보면서 기술이 세상을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세계 도처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비이성적인 정치 세력이 세력을 확장하는 걸 목격하면서 테크 기업의 성장과 민주주의 위기가 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거대한 테크 산업과 글로벌 경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이 세 요소가 손잡고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테크 기업들도 워싱턴 DC에서 막대한 로비 자금을 쓴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보나.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은 (공화당 거물 후원자로 유명한) 코크(Koch) 형제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소로스(Soros)처럼 당장 다음번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로비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전통적인 거부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실용적인 목적을 추구한다면,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은 1만 년 후 인류를 걱정하는 부류다. 좀 더 멀리 내다본다. 그 야망은 차원이 다르다. 인류를 더 낫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순진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TV 시리즈 '스타트렉'에 환호하면서 자란 세대다. 수퍼 히어로가 되는 걸 꿈꾸는 이들이다."

―정치적인 야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거대 테크 기업의 독점은 왜 위험한가.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테크 플랫폼 기업들을 주목한다.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이 공론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이런 기업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지금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 소셜 미디어는 중국 정부와 손잡고 정부 방침에 알게 모르게 협력하고 있다. 미국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 중 독점기업 한 곳만 남게 된다면 중국 같은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 해결책은 정부가 테크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핑계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개별 기업의 시장 장악력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현재 반독점 문제에 관해서 미국 여론은 전반적으로 정치 성향이나 진영에 무관하게 찬성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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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에서 페이스북 청문회가 열렸다. 의사당 바깥에서 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 CEO 가면을 쓴 시위대들이 집회를 갖고 페이스북 개인 정보 누출 등을 비판했다. /블룸버그
페이스북이 반독점 1차 타깃 될 듯

―독점기업의 분리가 실리콘밸리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나.

"미국 정부는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다. 거의 기업 분리 직전까지 갔는데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에 호의적이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온 국민의 관심이 테러에 가 있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의를 보고 기업 분리를 없던 일로 했다. 그런 식으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당시 실리콘밸리에선 구글이란 신생 업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평소 마이크로소프트 같았으면 미래의 경쟁자로 위협적일 수 있는 구글의 싹을 어떻게든 잘라 통제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반독점 조사 여파로 겁을 먹고 있었던 시기라 구글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구글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독점을 막을 때 미래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반독점 조사가 시작됐다. 어떤 기업이 가장 핵심 타깃이 될 걸로 보나.

"페이스북이 가장 유력하다. 2016년 대선 이후 페이스북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가 크게 하락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분할했을 때 정치인들이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말하자면 가장 정치적 홍보 효과가 큰 대상이 됐다. 현재 페이스북은 워싱턴 내에 아군이 없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페이스북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허용해 트럼프 당선에 도움이 됐다고 미워한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페이스북이 우익과 보수 진영의 주장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다고 싫어한다. 페이스북이 반독점 조사에서 가장 취약 고리인 이유다. 아마존은 비교적 느긋하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아마존을 군대만큼이나 신뢰한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은 군보다 아마존을 더 믿는다고 한다."

집행은 2020년 미 대선이 변수

―이번 반독점 조사 결과의 전망은. 정말로 거대 테크 기업들이 분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페이스북을 정말로 분할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 와츠앱 사업 부문을 분리하는 게 가장 근접한 시나리오겠지만 법원의 분할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분사할 수도 있다. 아마존의 경우 온라인 상거래와 웹서비스(AWS)를 분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모든 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기업 분할을 두려워하는 테크 기업에 누가 가장 위험한 대선 후보라고 보나.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다. 민주당 후보 중에서도 거대 테크 기업의 독과점 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는 주자도 많다. 그러나 워런은 다르다. 이 문제에 대해 이해도도 높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갖고 있다. 그래서 테크 기업 CEO들이 가장 싫어하는 후보가 워런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은 후보도 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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