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게놈 프로젝트: Write' 98% 완성, 창조주가 된 인간… 바이오 경제 폭발한다

입력 2019.10.11 03:00 | 수정 2019.10.12 16:09

[Cover story] 생명체 유전자 해독 끝내고 편집 시작… 합성생물학 시장 활짝 열려

2016년 5월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 전 세계 유전공학 분야 대가들이 대학본부 내 대회의실인 '고든홀'에 하나둘 은밀하게 모여들었다. 과학자를 비롯해 의료인, 법률가, 기업 경영자, 사회단체 대표자까지 150여 명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날 모임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유전공학 분야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언론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 모임 주최자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과학자 조지 맥도널드 처치(Church) 박사. 하버드대 부설 와이스생물감화공학연구소(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 소장이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 이렇게 적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유전체(genome·게놈)를 합성해 사람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할지 토론해 봅시다."

유전자를 합성한 '복제 인간' 실험 코앞

인간 세포 하나에는 몸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24개 유전자(gene)가 들어 있다. 이 유전자를 뜯어보면 31억개에 달하는 염기쌍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렇게 수십억개 단위로 짜인 유전정보 총체를 유전체라 부른다. 처치 소장을 포함해 이날 자리를 함께한 과학자들은 이미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3년에 걸쳐 인간 게놈을 함께 해독한 학술적 동반자다. 이들은 유전체 구성 성분을 모두 뜯어보고 인간 유전체 지도 초안을 그리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해석을 마무리한 후 13년이 지나 다시 만난 이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주최 측은 회의를 마치고 한 달이 지난 후에야 학술지를 통해 일부 내용만을 공개했다. 같은 해 6월 세계 최고 권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 정보를 합성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쓰기(write)'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실렸다. 2003년 끝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인간 유전체를 샅샅이 읽어내는 것(read)이었다면 '인간 게놈 프로젝트: 쓰기'는 인간 유전체를 자연적인 수정 과정 없이 인간의 손으로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미다.

이후 생명공학계는 물론 언론과 대중마저 이 프로젝트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시작했다. 실험실에서 프랑켄슈타인 같은 인조인간이나, 생물학적으로 부모 없는 인간을 만들어 낼 때 윤리적 책임이 먼저 이슈로 떠올랐다. 의도적으로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조작해 생물학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피부 이식·제약·섬유 등 응용 시장 급팽창

논란은 커지고 있지만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 듯하다. 하버드대에서 만난 처치 소장은 깜깜한 연구실에서 직접 스탠드 조명을 켜고 한편에 놓여 있던 검붉은 덩어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미생물 DNA(유전자 구성 물질)를 편집해 만든 피부입니다. DNA를 편집한 세포를 증식해 만든 콜라겐이 주성분이죠. 만져보세요." 눈을 감고 만져보니 온기만 없을 뿐 감촉은 사람의 살결과 꼭 같았다. 처치 소장은 "변형된 생명체의 경제적 가치가 원래 생명체보다 월등히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유전자변형(GMO) 농작물로 증명됐다"며 "법적·윤리적 틀을 벗어나 기술적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합성생물학을 통해 인간 유전체를 98%까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적 완성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온 만큼 미래 제조업의 개념이 합성생물학을 통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뛰고 있다. 처치 소장의 콜라겐 피부는 이미 미국 내에서 상품화를 마쳤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던 생체조직 합성공법을 상업적으로 다듬어 줄줄이 스타트업을 차리고 있다. 맥주 효모 DNA를 편집해 저렴한 값으로 대량 양산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인공 거미줄과, 세포의 유전자 복제 과정을 본떠 만든 신약이 등장했다. 합성생물학은 처치가 주관한 모임 이후 최근 3년간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신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1억달러(약 1200억원) 수준이었던 관련 시장은 2023년 105억달러(약 12조5600억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합성생물학의 개념과 선도 기업들, 윤리 과제 등을 해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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