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크리스티앙 디오르·불가리·지방시… 30대에 움켜쥐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09.27 03:00 | 수정 2019.09.27 21:09

[이지훈의 CEO 열전] (9)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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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지난 2009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뉴스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블룸버그
루이뷔통, 크리스티앙 디오르, 불가리, 지방시, 돔페리뇽, 태그호이어….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뭘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다. 또 하나는 한 회사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기반의 명품 제국 LVMH 그룹이 주인공이다. LVMH에는 이들을 포함해 75개 쟁쟁한 브랜드가 모여 있다. 지난 7월 블룸버그는 이 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2위 부자 자리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LVMH 브랜드 중에서는 역사가 100년이 넘은 게 즐비하다. 와이너리 샤토 뒤켐의 역사는 15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루이뷔통은 1854년, 불가리는 1884년에 탄생했다. 그러나 이 브랜드들을 모두 품에 안게 되는 LVMH가 탄생한 건 불과 30여 년 전인 1987년. 당시 30대 젊은 사업가 아르노에 의해서였다.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가업을 물려받아 건설회사를 경영하던 아르노가 경영난에 빠진 디오르를 인수했을 때 사람들은 부잣집 아들의 호사 정도로 여겼다. 그가 디오르에 이어 루이뷔통을 인수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을 한 지붕에 모아 명품 그룹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시너지는 고사하고 오히려 명품들의 가치를 깎아내릴 것이라고 코웃음 쳤다. 그러나 명품을 한 지붕 아래 모으는 비즈니스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세계 명품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 케링과 리치몬트가 LVMH를 모방하면서 이제 세계 명품시장은 이 세 재벌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들은 여러 극단과 모순을 동시에 포용한다고 했다. 음양 문양에서 음과 양이 서로를 끌어안듯 말이다. 베르나르 아르노의 성공 비결 역시 모순을 끌어안는 능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낡음과 새로움을 동시에 포용


첫째, 명품 브랜드는 낡음과 새로움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오랜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늘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르노는 둘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명품 브랜드의 숙명적인 역설이라고 말했다. 아르노가 세계 2위 부자로 등극한 것은 2019년 들어 LVMH 주가가 40% 이상 급등했기 때문인데, 이는 지난해 남성복 디자이너 교체로 오래된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넣은 것이 시장에서 높이 평가받은 덕이라는 분석이다.

루이뷔통에서 7년을 일하다 디오르로 옮긴 디자이너 킴 존스는 디오르 브랜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안장 백(saddle bag)을 재해석해 여자들의 전유물이던 핸드백을 남성용으로 선보이는가 하면, 표범 문양 운동화를 내놓기도 했다. 킴 존스는 전통과 새로움, 대중성과 틈새, 동양과 서양 등 상반된 요소를 융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명품의 역설을 구현하기에 적임인 셈이다. 루이뷔통 역시 신진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스트리트 패션의 자유분방함을 끌어들이면서 젊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아르노는 "기업가는 신중함과 위험 부담의 상충을 조정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중해야 하지만, 위험 부담 역시 기업가의 삶에 숨을 쉬는 것처럼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아르노는 "진정한 기업의 발전은 그와 같은 모순된 유형의 경영으로부터 움틀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다르게

베르나르 아르노가 끌어안은 두 번째 역설은 '한 지붕 아래 있지만 서로 다르게'이다. LVMH의 각 브랜드는 명목상으로만 한 그룹일 뿐 매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손익 계산을 별도로 하고, 같은 그룹이지만 브랜드들 사이에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아르노는 디자이너에게 아주 폭넓은 자유를 허용한다. 디오르의 전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신문지 모양의 드레스를 내놓아 세간에 물의를 일으켰을 때 아르노는 미리 알고서도 단 한마디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르노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늘 세상을 놀라게 해왔다"면서 스트라빈스키의 초연 당시 극장이 텅텅 비었던 사례를 들었다. 아르노는 말한다. "만일 창의적인 사람을 어깨너머로 쳐다본다면 그는 위대한 작업을 그만둘 것이다. 만일 상사가 계산기를 들고서 당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본다면 당신도 그만두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개성 강한 브랜드들을 굳이 한데 모은 의미가 뭘까? 사실 기업이 핵심 사업과 역량에 집중할 때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연구가 많으며, 사업 다각화는 일반적으로 기업 가치를 증대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베르나르 아르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보았다. 인재의 풀로서 명품 그룹이 그것이다. LVMH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들을 함께 갖고 있으면 젊은 인재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유능한 인재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괜찮은 직장을 떠나기도 하지만, LVMH 같은 그룹에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옮겨가고 싶은 회사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룹 내에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룹 시스템은 서로에게 배우는 학습의 장으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그룹 내 시계 브랜드가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갖추려면 그룹 내 패션과 화장품 부문 마케팅 관리자를 데려와 도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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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루이뷔통이 일본 현대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와 손잡고 내놓은 제품들. / 블룸버그
'함께 일하되 풀어놓는다'

LVMH는 인재들을 활발하게 순환 근무시킨다. LVMH의 브랜드 매니저 직에 공석이 생기면 약 3분의 2가 LVMH 내부 인재로 채워진다. 이렇게 인재들이 다양한 제품과 지역을 경험한 노하우는 그룹 전반에 전파되어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다. LVMH는 이를 '지적인 시너지'라 표현한다. 그룹이다 보니 물류, 금융, 광고, 부동산 관리 등 지원 기능을 중앙 집중화해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지적인 시너지' 효과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아르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마치 바둑에서 50수 앞을 내다보는 것처럼 내다본 셈이다. 그는 덩샤오핑의 등장과 함께 개혁·개방의 시대로 접어든 중국의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고 가장 먼저 중국 매장을 낸 명품 경영자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변화가 극심한 시대이다. 자본보다 인재가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모순을 끌어안는 리더십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아야 한다. 함께 일하되 풀어놓아야 한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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