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4가지 치킨 게임

    •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입력 2019.09.27 03:00 | 수정 2019.10.21 00:22

[WEEKLY BIZ Column]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치킨 게임’에서는 두 사람이 양쪽에서 차를 몰고 서로 돌진하다가, 먼저 핸들을 꺾어서 피하는 쪽이 겁쟁이로 취급되면서 진다. 피하고 쪽이 지고 돌진하는 쪽이 이기는 구조다. 둘 다 피하면? 쑥스러운 무승부가 된다. 둘 다 돌진하면? 차량이 충돌해 둘 다 죽는다. 이런 시나리오는 강대국 간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연구됐다. 예를 들어,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체면을 구기느냐, 재앙적인 충돌을 감수하느냐 선택에 직면했다. 관건은 당사자들이 타협할 수 있느냐다.
4가지 치킨 게임 세계 경제 위협
현재 세계 경제에는 몇 가지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타협하지 못하면 충돌로 이어질 것이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건 미국과 중국 간 무역과 기술에 대한 분쟁이다. 두 번째는 미국과 이란 분쟁이며, 세 번째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EU) 사이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둘러싼 벼랑 끝 전술이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이자 페론주의자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어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충돌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면적인 무역·기술·통화 전쟁이 제조업·무역·투자 침체를 가져오고 이는 서비스업과 민간 소비에 악영향을 미쳐 미국과 세계 경제를 심각한 불황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은 유가를 1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을 촉발할 것이다.
브렉시트가 실행되면 그 자체로 세계 경제 침체를 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유럽 경제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고 주변으로 영향이 파급될 것이다. 무역에서 EU가 영국에 의존하는 것보다 영국이 EU에 훨씬 더 의존하기 때문에, '하드 브렉시트'는 영국에 심각한 경제 침체를 일으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유로존은 이미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으며, 제조업 경기도 좋지 않다. 경기 침체에 가까워지고 있는 네덜란드·벨기에·아일랜드·독일은 사실 영국이라는 수출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 때문에 유로존 수출 등이 악화한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브렉시트 논란은 결정타가 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 해협에 새로운 세관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수천 대 트럭과 승용차들이 줄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게다가 유럽의 경기 침체는 세계 경제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세계 경제 성장을 저하시킬 것이다. 어쩌면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심지어 유로화와 파운드화 가치가 미국 달러화 등 다른 통화에 비해 너무 급격히 하락한다면, 새로운 통화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위기 역시 세계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좌파 후보 페르난데스가 당선된 다음 570억달러 규모 IMF 구제금융 계획을 무산시킨다면, 아르헨티나는 2001년처럼 채무 불이행 사태와 외환위기를 반복할 수 있다. 이는 신흥시장으로부터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으며 터키·베네수엘라·파키스탄·레바논에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중국·브라질·멕시코·에콰도르에도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어떤 선택 나올지
네 가지 시나리오 모두에서 양측은 체면을 챙기길 원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재선 도전 전에 경제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원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협상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이 치킨 게임에서 패자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국내에서 정치적 지위가 흔들리고 상대방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협상이 없으면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나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핵 합의를 폐기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란을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전을 치를 수 없다는 것과 그로 인해 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도발 수위를 높였다. 게다가 이란은 일부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진 찍는 기회를 주는 협상에 나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순진하게도 EU에 대해 '하드 브렉시트'로 위협함으로써 전임자가 확보한 협상안보다 더 나은 브렉시트 방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의회가 하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존슨 총리는 한꺼번에 두 가지 치킨 게임을 하고 있다. EU와 타협 시한이 10월 31일이지만 사실상 하드 브렉시트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양쪽 모두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좌파 후보인 페르난데스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며, 현 마크리 대통령과 IMF가 모든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IMF 메시지는 명확하다. 다음 번에 지원할 예정인 54억달러를 보류한다면 아르헨티나는 금융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페르난데스 역시 아르헨티나의 대외 부채 570억달러를 갚지 않는 디폴트(상환 불능) 카드를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채무를 상환하지 않으면, IMF 역시 골치가 아프다. 다른 경우처럼 체면을 살려주는 타협이 모두에게 더 좋지만, 충돌과 금융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타협하려면 앙쪽 모두 절제해야 하지만, 치킨 게임에서는 미친 행동을 해야 이익이라는 게 문제다. 핸들을 제거해버려 계속 돌진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반대쪽은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쪽이 모두 핸들을 제거해 버렸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좋은 뉴스는 네 가지 시나리오에서 양측이 여전히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어떤 조건에서는 대화에 열려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쁜 뉴스는 양측이 여전히 어떤 합의와도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더 나쁜 건 이 치킨 게임에서 져서 체면을 구기느니 아예 충돌하지 말고라는 생각을 지는 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의 미래는 이 치킨 게임 결과를 지켜봐야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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