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광·바람둥이·신용불량자… 美 군용기 70년은 괴짜들의 합작품이었다

    •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9.09.06 03:00

디지털 조직혁신의 모델 '스컹크 웍스'

현대 전쟁에서 승패의 핵심은 하늘을 제압하는 제공권이다. 미군의 최신예 스텔스 전폭기 F-22 랩터(1990년)는 지구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어 '대(對)외계인용'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또 제트전투기 F-80(1945), 정찰기 U-2(1957), 최초의 음속 2배 전투기 F-104(1958), 최초의 음속 3배 정찰기 SR-71(1964)에 이어 스텔스 폭격기 F-117 나이트호크(1981), 스텔스 전폭기 F-35 라이트닝(2000)도 모두 미군 군용기 발달사에 족적을 남겼다. 이 대작들은 모두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소규모 연구개발조직인 스컹크 웍스(Skunk Works)의 연구 성과이다.

스컹크 웍스는 1943년 발족한 이후 탁월한 성과를 계속 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 조직 혁신의 모델로 꼽히기도 한다. 한 연구조직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냈을까. 그 배경에는 천재적 엔지니어였던 켈리 존슨이 리더십을 발휘해 확립한 '자유와 책임, 정직과 신뢰, 협력과 개방, 현장형 실용주의'에 기반한 조직 문화가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①자유와 책임

스컹크 웍스는 1990년대까지 50여명의 설계엔지니어와 100여명의 기계공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불과 150여명이 항공기 역사의 주역이 된 비결은 자유와 책임의 조직 문화였다. 초대 운영 책임자였던 켈리 존슨은 미국 국방부와 록히드 본사의 거대한 관료 조직에서 벗어나야 최대한의 독창성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일단 목표와 기간, 예산이 확정되면 진행 과정은 독자적 권한을 행사하도록 원칙을 정립했다. 이는 초기부터 탁월한 성과로 이어졌다. 1944년 미군은 독일 제트전투기 Me-262에 대항할 제트전투기의 설계와 시제품 제작을 의뢰했다. 180일 이내에 납품해야 하는 가혹한 계약 조건에서 143일 만에 완성품을 인도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존슨은 형식적 관리를 가장 배격해서 서류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국한했다. 결과물만 제대로 만들어내면 일체의 사생활에 대한 간섭도 없어서 경마광, 바람둥이, 신용불량자, 마리화나 흡연자 등 괴짜들이 득실득실했다. 팀워크를 해치지 않으면 개인적 특성에는 관대하되 전문가적 성과에는 분명히 책임지게 하는 존슨의 관리 스타일은 특유의 조직 문화로 발전했다.

②정직과 신뢰

첨단 항공기 개발이라는 특성상 공군의 지휘부조차도 스컹크 웍스의 혁신적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텔스 항공기 개발 초기의 일화이다. 1976년 미국 공군 전술항공사령부의 로린스 웰치 중장은 로버트 딕슨 대장과 브리핑에 참석했다. 스텔스 개념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금시초문이었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상관의 질문에 대답했다. "순수한 기술적 관점에서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비행기가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컹크 웍스가 이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컹크 웍스에 대한 신뢰는 정직함에서 형성되었다. 1950년대 후반 스컹크 웍스는 액체수소연료 정찰기 개념을 미 공군에 제안하고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1959년에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사용한 개발비 600만달러를 제외한 잔여 예산 9000만달러를 반납했다. 이 외에도 계획대로 성능이 나오지 않으면 자금을 반납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다.

존슨은 조직원들에게도 최고 수준의 정직성을 요구했다. 지연 사유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책임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예기치 않은 문제는 해결하면 되지만, 문제를 감추면 후일 더 큰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에게 정직성과 헌신을 요구했지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항공우주업계에서 최고의 보수를 지급하였고 존경받는 전문가로 키웠다.

③협력과 개방

조직원의 개인적 자부심이 상호 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시너지로 승화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갈등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특히 첨단 군용기의 특성상 설계와 시제품 제작에서 사소한 결함도 프로젝트 전체의 실패로 연결되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체, 소재, 역학, 엔진 등 각 분야 엔지니어들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교환되고 문제는 즉각적으로 공유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상호 간 전문성을 보완하고 협력해야 성공한다는 원칙이 체화됐다.

군용기의 역사를 바꾼 스텔스도 개방성의 산물이다. 1970년대 미 공군은 소련 공군의 조기경보망 돌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1973년 이스라엘과 시리아-이집트 간에 벌어진 욤키푸르 전쟁에서 미국제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소련제 대공미사일에 100대 이상 격추되는 위기 상황이었다. 1975년 스컹크 웍스에 근무하는 36세 젊은 엔지니어 데니스 오버홀저가 소련 모스크바 공과대학 표트르 우핌체프 논문에서 스텔스 아이디어를 찾았다. 레이더 반사 단면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설계하면 대형 폭격기도 레이더에는 나방 크기로 인식된다는 획기적 접근이었다. 항공기 설계의 백전노장들조차 반신반의했으나 실험에서 입증되면서 군용기 역사가 바뀌었다. 1981년 스텔스 폭격기 F-117의 등장으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소련의 방공망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1991년 1월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F-117은 1만6000기의 미사일과 3만문의 대공포로 방어되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날아가 주요 시설물을 완벽하게 제거하였고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스텔스 아이디어의 창안자인 우핌체프는 1990년 미국 UCLA 공과대학에서 전자기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자신의 논문이 스텔스기 개발에 끼친 영향을 모르고 있다가 소식을 접하자 쓴웃음을 지으면서 "소련의 나이 먹고 완고한 설계자들은 내 이론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라고 응답했다는 후문이다.

④현장형 실용주의

존슨은 엔지니어들에게 '현장에서 돌을 던지면 도달하는 거리'에서 일하도록 요구했다. 현장의 질문에 즉각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엔지니어들은 경험이 풍부한 현장 기계공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하였다. 품질 관리자는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한 단계가 끝나면 품질 관리자가 검사하는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공정 진행이 빨라졌고, 현장 인원들에게 품질 관리 의식이 자연히 스며들었다. 이는 후일 일본에서 TQC(종합품질관리)라는 명칭으로 도입되어 폭넓게 활용되었다.

스컹크 웍스는 최고의 기술로 최고의 제품을 최고의 가격으로 만드는 기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존슨은 원가 절감을 위해 시간 절약과 개발 속도를 무엇보다 강조했다. 그의 신조는 '목적은 훌륭한 비행기를 시간에 맞추어 만드는 것이며, 팀은 언제나 신속히, 조용히, 계획표대로 움직여야 한다'였다. 또한 한정된 개발 예산을 혁신적 부문에 집중시켜서 충분한 성능에 적절한 가격으로 신뢰성 있는 산출물을 만들도록 독려했다.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는 최대한 기존 제품을 사용하였다. 최초의 스텔스기인 F-117의 시제품 제작에서 조종 제어용 컴퓨터는 F-16 전투기, 관성항법시스템은 B-52 폭격기를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심지어는 시판되는 민간 항공 부품을 시중의 할인 마트에서 구매하여 원가를 절감했다. 양산 단계에서도 신뢰성이 확인된 기존 설계와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스컹크 웍스가 개발한 항공기들은 당대의 첨단 기술이 집약되면서도 합리적 가격으로 생산되었다.

1943년 캘리포니아 고무공장 악취 속 출범해 '스컹크 웍스'로… 33세 켈리 존슨, 25년간 이끌어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6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캘리포니아 공장 구석의 대형 천막에서 신예기 개발을 위한 별동대를 출범시켰다. 이 장소는 당시 부지 주변의 고무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심해서 스컹크들이 일하는 장소(스컹크 웍스)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 스컹크 웍스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33세 약관에 책임자로 임명된 켈리 존슨(1910~1990)은 운영 관련 전권을 위임받아 최고의 인재들로 팀을 구성하였다. 그는 1968년까지 25년 동안 천재적 재능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제트엔진과 초음속 시대의 명품 군용기들을 연이어 개발하며 항공기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뒤를 이은 벤 리치(1925~1995)는 포용적 리더십으로 16년 동안 조직을 이끌면서 스텔스 시대를 개막하였고, 후진들은 스텔스 개념을 비행기에서 군함, 잠수함, 미사일로 확장하고 있다.

스컹크 웍스의 혁신적인 조직 문화는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였다. 경쟁사인 맥도널 더글러스는 팬텀 웍스를 만들었고, 미국 해군에서도 에어 웍스를 설립하였다. 나아가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기업들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태스크포스의 구성에서 스컹크 웍스의 조직 원리를 적용하였다. 1980년대 IBM의 PC 사업 개발팀, 1990년 포드의 신형 머스탱 개발팀, 2004년 출시된 모토롤라의 베스트셀러 레이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구글의 구글엑스, 아마존의 킨들과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의 개발팀이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스컹크 웍스를 모방한 특수 조직은 많이 생겨났으나 성패는 엇갈린다. 벤 리치는 생전에 다른 회사들이 형식적으로 시스템을 도입했을 뿐 진정한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관료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운영방식과 이에 상응하는 전문가들의 엄정한 내적 윤리와 책임의식의 시너지가 본질인데,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스컹크 웍스의 조직 문화는 21세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자유와 책임에 기반한 민첩한 조직 문화로 바뀔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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