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조선·카메라… 그 강하던 日 제조사단 다 어디 갔나

입력 2019.09.06 03:00 | 수정 2019.10.11 21:13

韓·中·美에 치이는 일본 막강 기업들

지난달 뉴스위크 일본판엔 "일본은 이제 (산업) 후진국임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칼럼이 실렸다. 경제 평론가 가야 게이치가 쓴 글로 "일본은 기술 대국이라는 옛 명성에만 집착해 뒤처졌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일본은 아직 제조업 강국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영화(榮華)는 점점 저물고 있다. 특히 한때 일본이 세계를 호령하던 반도체와 조선, 카메라 세 업종은 한국·중국·미국에 밀려 악전고투하는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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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현 고야키조선소 부근 선박 모습. 고야키조선소는 LNG 운반선 건조에 특화돼 있다. ② 도시바메모리의 메모리칩. 현재 도시바메모리는 낸드플래시 부문 세계 2위다. ③ 캐논의 컴퓨터 단층 촬영 장치(CT). 캐논은 영상 진단 장치 등 첨단 의료 기기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 미쓰비시중공업·블룸버그·캐논
①도시바메모리: 연내 상장 빨간불

'일본 반도체의 자존심' 도시바메모리는 다음 달부터 '기옥시아(Kioxia)'로 간판을 바꿔 단다. 일본어 기억(記憶)에 가치(價値)를 뜻하는 그리스어 악시아(axia)를 합성한 단어. 2017년 9월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인수된 지 2년 만이다. 그런데 사명 변경과 함께 연내 상장(IPO)을 마무리, 수천억엔에 이르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투자비를 조달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지만 빨간불이 켜졌다.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메모리 주력 제품은 낸드플래시. 삼성전자(점유율 38.4%)에 이어 세계 2위(17.6%)다.

그런데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중국 경기 후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경쟁 업체들의 공급 과잉이 겹쳐 지난 2분기 비트당 용량 단가가 10%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에도 조짐이 보여 도시바메모리 순이익이 전년 대비 91.6% 감소한 605억엔이었는데 올해는 더 좋지 않다. 1분기 적자만 193억엔이었고, 2분기엔 적자 폭이 952억엔으로 늘었다. 중국 통신 대기업 화웨이를 향한 미 트럼프 정부의 수출 금지 조치는 직격탄이었다. 화웨이가 도시바메모리 대형 고객사였기 때문.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미에현 요카이치 반도체 공장에 정전이 발생하면서 일부 생산 라인이 멈춰 300억엔 넘는 손해가 발생했다. 도시바 내부에선 "투자 시기를 놓치면 다음 회복 국면에서 글로벌 경쟁 업체들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절박함이 감돌고 있으나 지금으로선 조기 상장은 물 건너간 상태다.

중장기 전략 사업으로 내건 데이터센터 공략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신임 회장에 스테이시 스미스 전 인텔 사장을 영입하면서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애플과 구글, IBM 등 주요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줄고 있어 불안하다. 미 시너지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분기별 평균 300억달러를 넘어서던 데이터센터 투자는 올 1분기 250억달러 선까지 후퇴했다. 막대한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 투자가 주춤하고, 여기에 과잉 생산으로 인한 메모리 가격 하락이 덮치면 도시바메모리의 실적 부진은 헤어나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

韓·中·美에 치이는 일본 막강 기업들
②미쓰비시: 경쟁 업체 하청 자청

지난 7월 미쓰비시중공업은 경쟁 업체 이마바리조선이 지난해 그리스 해운 업체 나비오스에서 수주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건조를 위탁받았다. 경쟁 업체가 개발·설계한 선박을 하청받은 셈. 선박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다. 미쓰비시 간부는 경제 주간지 인터뷰에서 "현재 일감이 없는 고야키조선소를 활용하기 위해 직접 이마바리에 선박을 건조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고야키조선소는 미쓰비시가 조선 사업을 시작한 나가사키현에 자리 잡고 있어 상징적 작업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2000년까지 일본 내 선박 건조량 1위였던 미쓰비시는 2016년 이마바리에 1위 자리를 내주며 7위로 주저앉았다. 1956년 대형 유조선 건조량 세계 1위에 오르며 세계시장을 호령하던 일은 옛말. 2000년 44년 만에 1위 자리를 한국에 내준 뒤론 급속도로 휘청거리고 있다. 미쓰비시뿐 아니라 일본 조선 업계 전체가 한국과 중국 조선 업체에 기술·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며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선박 건조량 점유율에서 일본은 13%로, 한국(44%)과 중국(32%)에 크게 뒤졌다.

미쓰비시는 특히 선박 건조 분야의 꽃이라는 LNG(액화천연가스)선 수주전에서 밀리고 있어 그 타격이 심각하다. LNG선은 1척당 200억엔이 넘는 고가에 의장부(선박 내부 각종 시설) 설계에서 고도 기술력이 필요해 선박 기술 결정체라 하는 분야. 영국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3월 현재 세계 LNG선 누적 수주량은 136척으로 이 중 100척을 한국 조선 업체가 휩쓸었다. 일본은 15척에 불과했다.

미쓰비시는 2016년 선박 사업에서 2719억엔 적자를 떠안으며 골머리를 앓자 이듬해 이마바리를 비롯한 경쟁 업체 3곳에 손을 내밀었다. 미쓰비시가 오랫동안 쌓은 설계·건조 노하우를 제공하고 기술료를 받는다는 고육지책까지 구사했지만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선박 사업을 미쓰비시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해양철강으로 나누고 밀리는 LNG선 대신 상대적으로 채산성 높은 가스선·페리선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LNG선에 비해 매출 기여도가 낮아 고민이다. 미쓰비시는 현재 수주 잔량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라 수주가 아예 끊기는 최악에 대비해 교량·부두 같은 토목 구조물 수주 영업에 나서고 있다. 내부에서는 고야키조선소를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③캐논: 카메라 사업 구조조정

'카메라 명가' 캐논은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지난해 대비 37% 줄어든 2150억엔, 순이익은 37% 줄어든 1600억엔으로 잡고 있다. 2009년 영업이익 2170억엔 이후 가장 낮은 규모. 사상 최고였던 2007년 7566억엔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7월 결산 발표 회견에서 다나카 도시조 부사장은 "주력 사업인 카메라와 반도체 노광 장치 수익이 악화했고, 사무 기기 부문도 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효자 사업이던 카메라 부문 부진이 뼈아팠다. 이 부문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했다.

캐논은 고화질 카메라로 무장한 스마트폰에 맞서 고급 미러리스 카메라로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야심 차게 출시한 'EOS R' 시리즈가 예상을 크게 밑도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여기에 레이저프린터를 포함한 사무 기기 부문도 디지털 기록 문화 확산으로 흔들리고 있다. 결국 카메라 등 해외 사업부 재편을 위해 지난해 200억엔, 올해는 300억엔을 투입, 강도 높은 판매·생산 회사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캐논이 차세대 수익 사업으로 기대하는 분야는 의료 기기. 2016년 도시바 메디컬시스템스를 인수하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의료 기기 핵심인 컴퓨터 단층 촬영(CT) 장치 등 영상 진단 장치 부문에서 캐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로 4위. 아직은 글로벌 '빅3(지멘스·GE·필립스)'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의료 기기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1% 증가한 348억엔으로 캐논 전체 영업이익의 16%를 차지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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