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직원 뽑을 때 빅데이터 분석 따랐더니… 제록스, 조기 퇴직 20% 줄어

    •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입력 2019.08.23 03:00 | 수정 2019.08.23 22:31

지상 명강의 빅데이터, 새로운 세상을 열다 (1)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1세기북스 출판사가 서울대 교수진을 초청해 벌이는 인문교양 강좌 '서가명강' 내용을 압축해 연재합니다. '서가명강'은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란 뜻입니다. 강연 뿐 아니라 도서나 팟캐스트(오디오클립·팟빵)로도 접할 수 있습니다.

제록스 콜센터는 상담원들 조기 퇴사율이 높아 골머리를 앓았다. 1인당 교육비가 5000달러인데 배치되자마자 나가는 이들이 많아 비용 낭비 요소로 지적된 것. 콜센터 직원은 종일 불평불만을 응대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다. 그렇다고 신입 직원이 과연 적성에 맞는지를 분간하면서 뽑기란 쉽지 않다. 제록스는 이력서와 더불어 신입 직원 대상 적성검사 데이터를 분석했다. 수년간 쌓인 데이터는 조기 퇴직자들 특성을 간추릴 수 있게 해줬다. 우선 회사에서 멀리 살고 확실한 교통수단이 없으면 조기 퇴사가 많았다. 소셜미디어 활동이 전혀 없거나 5개 이상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격 검사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inquisitive type) 끊임없이 뭔가 물어보는 사람, 공감을 너무 잘하는 사람, 창의력이 낮은 사람들 중 조기 퇴사자가 많다는 사실을 일러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집에 가서도 '왜 오늘 그 고객은 불같이 화를 냈을까'라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룬 것이 아닐까? 공감 능력이 과도하면 감정 소모가 너무 많아 남들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퇴사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데이터를 통해 도출하는 인사이트(insight·통찰력)는 상관관계만 알 수 있다. 이런저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 퇴사율이 훨씬 높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과관계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지난 1월 영국 런던에서 IBM 사이버 공격 대응팀이 전 세계 현황을 전자 지도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C-톡(TOC)으로 불리는 이 센터는 초대형 트럭 안에 설치되어 있어 기동성이 뛰어나다. /블룸버그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구별해야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차이는 이렇다. 누군가 "세차만 하면 다음 날 비가 온다"고 말할 때 그 자체는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다. 세차한 다음 비가 온 날이 많아 데이터는 그렇다고 말해주지만 누군가가 세차했다고 비가 오는 건 아니기 때문. 제록스 조기 퇴사자 중 궁금한 게 많다면 조기 퇴사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궁금해하는 성격과 조기 퇴사에 동시에 원인으로 작용하는 어떤 숨은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걸 잠재요인이라고 한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어휘력이 뛰어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옆집 엄마는 자기 아이도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으면 한다. 그런데 옆집에 가보니 책장에 책이 가득한 게 아닌가. 엄마는 "집에 책이 많으니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백 권 책을 주문한다. 이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한 것이다. 옆집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책이 많은 건 인과관계가 아니다. 실제는 옆집 엄마가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책이 많고, 아이는 엄마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가 책을 좋아한다는 게 잠재요인이고, 그게 책이 많다는 현상과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도출된 인사이트를 근거로 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증거 기반 의사결정이라고 한다. 증거 기반, 팩트 기반, 데이터 기반, 다 같은 말이다. 제록스사는 앞서 나온 6개 인사이트를 가지고 증거 기반 의사결정을 내렸다. 열거한 성향 지원자를 선발하지 않았다. 1년에 4만8700명 가까운 상담원 고용을 사실상 빅데이터 분석가 손에 넘겼다. 이후 제록스는 기존에 비해 조기 퇴사율을 20%나 줄였다. 엄청난 성과다. 상당한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감소율이 100%가 아니라 고작 20%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데이터의 한계다. 제록스가 사용한 데이터는 이력서와 성격검사밖에 없었다. 조기 퇴사 이유가 이력서에 등장하는 집과의 거리나 교통수단, 그리고 소셜미디어 개수, 성격검사 결과와만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퇴사 이유는 더 다양할 것이다.

결국 분석은 그 데이터가 포함하고 있는 인사이트만을 뽑아낼 수 있다.

분석 결과가 경영에 반영돼야 진가

데이터로부터 인사이트를 얻는 분석(analytics), 특히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은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에 비유된다. 만약 금광 안 금 매장량이 100t이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200t을 캐내는 건 불가능하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그 데이터가 포함하고 있는 잠재적인 인사이트양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그만큼 인사이트가 도출된다.

제록스가 이력서와 성격검사 데이터만으로 20% 조기 퇴사자를 예방할 수 있었던 건 훌륭하다. 실제 상황에서 판단 기준은 20%가 아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과, 20% 조기 퇴사 감소를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 절감되는 비용, 즉 편익을 비교해봐야 한다. 이런 비용편익 분석(cost benefit analysis)을 통해 제록스는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제록스 사례가 인상적인 부분은 도출된 인사이트를 비즈니스 액션으로 실행했다는 데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인사이트를 데이터로부터 뽑아내도 액션이 수반되지 않으면 가치가 나오지 않는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전해준 인사이트를 의사결정자가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 현업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분석가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체험으로 축적된 자체 노하우나 가설을 더 믿는다. 보통 '인사 전문가도 아니면서 자기들이 뭘 안다고'라는 반응이 많다. 최종 결정을 내린 제록스 인사 부서가 대단한 이유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만들어 내는 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이지만, 인사이트를 가치로 만들어 내는 건 결국 비즈니스 의사결정자다. 즉 기업의 신상품 개발, 마케팅, 영업, 생산, 재무, 인사, 총무 분야에서 일을 하는 모든 임직원이다. 데이터 과학자가 "#7692 고객이 지금 #527 아이템에 꽂혀 있으니 얼른 가보세요. 5%만 할인해주면 살 겁니다"라는 인사이트를 주면, 영업부 직원이 실제로 아이템을 할인 가격으로 추천해야 효과가 있다. "저 #247 모터 장비가 좀 이상해요. 평소와는 다른 소음과 진동 패턴을 보이고 있어요. 한 달 안에 고장 날 가능성이 75% 정도 돼요"라는 인사이트를 주면, 생산부 엔지니어가 곧바로 확인하고 필요한 부품을 교체해야 의미가 있다. 이런 행동이 비즈니스 액션이며, 빅데이터를 현장으로 끌어들여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이다.

본 기사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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