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꼼짝마"… 블록체인 거래, 미술품 시장을 확 바꿀 것

입력 2019.08.09 10:30

폴란드 '아르테이아' 공동창업자 필리프 게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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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을 미술품 시장에 도입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2010년 9월 미술품들을 경매하고 있는 런던 크리스티 국제 경매장 풍경. /블룸버그
디지털 기술은 미술 시장에서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회사 크리스티가 블록체인 기술을 경매에 도입한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경쟁 업체 소더비는 AI(인공지능)로 예술품을 추천하는 기술을 보유한 테크 기업을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화랑협회가 블록체인 기술을 작품 인증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시스템은 서울옥션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예술품 거래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홍콩 즈신금융테크는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기술과 선물거래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다이아몬드 거래 플랫폼 '에버캐럿'을 선보이기도 했다. 암호 화폐를 미술품 거래에 끌어들이는 작업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그 흐름을 주도하는 업체 중 하나는 폴란드 크라코프에 본사를 둔 아르테이아(Arteia)다. 공동 창업자인 필리프 게먼(Gellman) 대표는 프랑스 출신으로 자산 관리나 금융 파생 상품 중개 분야에서 25년 동안 일한 인물. 취미로 다루던 예술 작품 수집·거래를 첨단 금융 기법과 결합하겠다는 구상을 기반으로 아르테이아를 세웠다. 블록체인 기술을 미술품 경매에 활용하면 효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르테이아는 지난해 10월 '아르테이아 컬렉트'란 이름으로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수집 관리, 작품 소장, 개인 거래 서비스를 내놓은 바 있다. 유럽에서 대대로 예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진 테탱저와 마리안, 프티, 길리온 가문 등이 아르테이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게먼 대표는 지난 5월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도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을 청중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Q1. 블록체인 기술을 미술품 거래에 활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한다. 미술품에 이를 적용하면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던 복제·위작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 주요 경매 회사가 융성했던 건 '신뢰'라는 자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경매에 오르는 작품은 적어도 가짜는 아니라는 확신을 깔고 있다. 이 비용이 컸다. 블록체인은 이제 이런 신뢰를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도록 다리를 놓았다.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 같은 경우는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모작 전시가 성행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체 작품 중 50%가 위작이란 의심을 받는 작가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이 블록체인이다."

옥스퍼드대·앨런튜링연구소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블록체인을 통한 디지털 거래내역서(digital ledger)가 도입되면 미술 시장 유동성과 가치가 올라가고 예술이 금융 산업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아르테이아 모델은 얼핏 이베이(eBay) 같은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게먼 대표는 이에 대해 "일반 전자상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보안 기술이 들어가는 데다, 아르테이아 플랫폼에 들어오기 위해선 수집가가 실명 인증과 자금 세탁 방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Q2.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예술품과 결합하나.

"블록체인과 RFID(전자태그) 기능을 내포한 NFC(근거리 무선통신) 칩을 작품에 부착한다. 억지로 떼면 경보가 울리도록 설계했다. 이 칩에 담긴 정보는 편집할 수 없지만 구성원 모두가 볼 수 있다. 예술가 스스로 진품임을 인증하고, 이를 '공공 디지털 대장'에 영구 기록하는 셈이다. 작품명, 거래 이력, 낙찰가 등 모든 작품 관련 정보가 차곡차곡 담긴다. 분광기술(分光·spectrography)을 통해 작품 진위 여부를 판정한 정보도 포함한다. 구매자가 손쉽게 작품 진위 여부를 식별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있으면 '전작도록(全作圖錄·catalogue raisonne)' 제작 역시 더 정확하고 쉽게 이뤄질 수 있다."

Q3. 블록체인을 통해 미술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보나.

"UBS·아트바젤을 비롯해 각종 관련 기관이 조사한 자료에서 온라인 예술품 거래 규모는 5~6년 전보다 2~3배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6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미술품 시장 규모로 따지면 10분의 1 수준이지만 상승세는 뚜렷하다. 블록체인은 그 추세를 본격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다. 미래 소비 시장 주체인 밀레니얼 세대는 온라인과 함께 성장해왔다. 이 시장이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하다. 보험 회사 히스콕스 보고서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하는 20~30대의 79%가 최근 1년간 온라인에서 예술품을 구매한 적이 있고, 65%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예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Q4. 온라인 미술 시장이 성장하면 뭐가 달라지나.

"거래 금액 규모로 보면 워홀이나 피카소를 비롯한 상위 100대 예술가 작품이 전체 경매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1만달러 이하 소규모 작품 거래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다 보니 적정한 작품가를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 방치된 시장을 공략하는 게 목표다. 이러면 전체 미술 시장도 더 활성화할 수 있다. 대형 경매 회사들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받는 30% 이상 고수수료도 개혁 대상이다. 디지털 시대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장한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거래할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장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블록체인 기반 미술품 경매 시장은 공간이나 직원을 최소화할 수 있어 거래 수수료를 3%대까지 낮출 수 있다.

거래 자체도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수집가와 수집가, 작가와 수집가, 기관(박물관)과 수집가 간의 직거래도 가능해져 속도도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특정 일에 특정 장소(갤러리나 경매장)에 갈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작품이 업데이트되고 온라인으로 확인한 다음 거래할 수 있다. 예술품 시장 작동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출발점이다. 과거 거래가 번거롭고 오래 걸려 자산으로서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예술 작품의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Q5.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 시장 전망은 어떤가.

"지난 15년간 세계 미술 시장 성장을 주도한 건 단연 중국이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밝다. 한국 역시 아시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이다. 한국 미니멀리즘은 세계 무대에서 관심이 높다. 더구나 디지털 인프라 선진국이면서 암호 화폐 분야 활동도 활발하다. 아르테이아 역시 암호 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시너지를 이룰 여지가 충분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494억원 수준이던 한국 미술 시장은 지난해 1308억원에 달해 연평균 27.6% 증가했다. 온라인 경매 시장 역시 2013년 37억원에서 지난해 199억원으로 6배가량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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