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내 이름이 날아갔네

입력 2019.08.09 10:33

[이철민의 Global Prism] (22) 고유상표 보호에 나선 기업들

선임기자
선임기자
자사 제품의 상표(tra- demark)가 시장의 해당 제품 전체를 부르는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성공적이라면 기업으로선 '꿈'만 같을까. 사람들이 일상 대화에서 휴지 대신에 그저 '클리넥스', 해열제 대신에 '아스피린', 인라인 스케이트 대신에 '롤러블레이드'라고 말하는 상황이 된다면?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한 상표가 해당 제품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명사나 그 제품을 사용하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로 바뀌면 상표 등록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그냥 휴지를 달라면서 "클리넥스 한 장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클리넥스 제조사인 킴벌리-클라크는 자사 상표가 '휴지'라는 일반 명칭으로 바뀌는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기업으로선 한 상표의 막대한 성공이 오히려 그 상표의 파괴를 초래하는 악몽(惡夢)이다.

'상품 대박' 반작용으로 상표 잃다

제너리사이드의 가장 고전적인 케이스는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 만든 진통·해열·소염제인 아스피린. 바이엘은 1921년 미국 유나이티드 드러그사가 "아스피린은 주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酸)' 약을 통칭한다"고 주장해 승소하면서 미국과 일부 나라에서 상표를 잃었다. 이후 다른 제약사들도 아스피린이란 이름을 쓰게 됐고, 바이엘은 '바이엘 아스피린'을 제조한다. 이 밖에 이동형 대형 쓰레기통인 덤스터(Dumpster), 아이들이 그물망 위에서 껑충껑충 뛰노는 트램펄린(Trampoline), 재생섬유소를 추출해 만든 얇은 필름인 셀로판(Cellophane), 동전을 넣어 가동하는 세탁기 런드로매트(Laundromat), 지퍼(Zipper), 비디오테이프(Videotape), 드라이아이스(Dry ice), 요요(Yo-yo), 에스컬레이터(Escalator) 등 수십 개의 상표가 해당 제품 전체를 통칭하는 명사나 동사로 바뀌면서 상표권을 잃었다. 국내에서도 아주 매운 양념으로 구운 닭 요리인 '불닭'이 2000년 상표 등록됐지만 이후 이런 요리를 통칭하는 보통명사가 돼 상표가 취소됐다. 오리온(구 동양제과)이 신제품 개발해 상표 등록한 '오리온 초코파이'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2001년 대법원은 '초코파이'란 말 자체는 초콜릿이 발라진 과자 유형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다고 봤고, 이후 롯데·해태·크라운 등에서도 '초코파이'를 내놓기 시작했다.

'상표 지키기' 아이디어 백태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지배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마다 '상표 지키기'에 안간힘을 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사기 제조사인 제록스(Xerox)는 "문서를 '제록스한다'가 아니라, '복사한다(photocopy)'고 말하세요" "당신이 '아스피린'처럼 '제록스'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두통에 걸려요"라고 광고한다. 일상 대화에서 상표 '제록스'가 '복사하다'는 뜻의 동사로 쓰이게 되면 회사 이름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고의 디지털 복사물은 제록스 복사기(Xerox copier)에서 만들어진다"는 선전 문구와 같이, 자사 제품을 '제록스 복사기'라고 소개해 '제록스=복사기'라는 인식을 막는다.

이 밖에 롤러블레이드는 '인라인 스케이트', 버블랩은 '공기버블 포장', 자쿠지는 '소용돌이 욕조(whirlpool hot tub), 밴드-에이드는 '접착성 반창고', 프리스비는 '나는 원반', 포토샵(Photoshop)은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해당 기업들은 행여라도 자사 브랜드가 제너리사이드의 덫에 빠질까 봐 대체 용어를 적극적으로 알린다. 우리가 흔히 '칙칙이'라 부르는 탈부착 장치인 벨크로(Velcro)를 발명한 벨크로사는 아예 2017년 회사 변호사들을 동원해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변호사들은 "거친 면은 갈고리(hook), 잔털이 많은 면은 걸림고리(loop)예요. 여러분은 다 '벨크로'라 부르지만, 이건 젠장 '후크 앤드 루프'라고요! 우리 특허권은 40년 전에 소멸돼 누구든 이걸 만들 수 있는데, 모든 제품을 '벨크로'라 부르면 우리는 상표를 잃어요!"라고 절규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보통명사 되길 원하는 기업도

'인터넷 검색'의 대명사인 구글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Alphabet)사는 "구글(to google)이 인터넷 검색을 뜻하는 동사로 쓰이니, 상표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 맞서 5년간 다툰 끝에 2017년 5월 연방항소심에서 간신히 이름을 지켰다. 원고 측은 언어학자들의 전문적인 의견과 '구글'을 동사로 등재한 유명 사전들, '구글'을 동사로 쓴 수십 편의 영화·TV 시리즈물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3인 재판부는 "사회 일부에서 구글을 '검색하다'와 동일한 의미로 쓰지만, 다른 표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전의 첫째 정의(定義)도 늘 '구글의 검색 엔진'이고, 둘째에서야 동사로 소개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아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상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 영역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무한 확대되면서 '상표 검역'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밴드-에이드를 접착성 반창고라고 말해 주세요"라는 존슨앤드존슨사의 호소에 대중이 동참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히트 브랜드라고 모두 보통명사나 동사가 되는 함정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애플·아마존·페이스북·디즈니 등이 그런 경우다. 또 일부 기업은 자사 상표가 보통명사나 동사로 사용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차량 공유 기업인 우버(Uber)의 CEO 다라 코스로샤히는 작년에 "동사가 되는 상표는 매우 적다. 우버가 그런 수준에 오른다는 건 우리가 고객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그들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버드 로스쿨의 상표법 전문가인 레베카 터시넷 교수는 "상표가 나중에 통칭으로 바뀌게 될 위험성이나 확률은 낮고, 사람의 마음을 선점하는 데서 오는 효과는 막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a제너리사이드(Genericide)

한 기업의 상품이 히트를 치면서 그 상품의 상표가 그러한 제품들을 부르는 일반명사나 그러한 제품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로 바뀌면서 상표 등록이 취소되는 경우를 말한다. '포괄적·통칭적인'이란 의미의 'generic'과 '죽임·살해'란 뜻의 접미사 'cide'를 합친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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