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의 철포를 보고, 손정의는 ARM 인수를 결행했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07.19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7) 손정의와 오다 노부나가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성공적 최고경영자(CEO)를 다른 CEO와 구별하는 단 한 가지 행동 특성이 있다면 뭘까. '빠르고 자신 있는' 의사 결정, 다시 말해 결단력이다. '올바른' 의사 결정이 아니라는 데 주목하라. 컨설턴트 엘레나 보텔로 등 2명이 CEO 2000명 데이터를 분석한 2017년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CEO는 불확실성 속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갖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결단력을 상징하는 CEO를 꼽자면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결단력은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 인수에서 두드러졌다. 인수 가격이 33조원. 일본 인수·합병 역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그런 통 큰 결단을 연달아 내릴 수 있었던 건 그가 늘 미래를 생각한 덕분이다.

오다 노부나가를 벤치마킹하다

손정의는 역사 공부를 즐긴다. 평소 누구를 즐겨 벤치마킹했을까? 오다 노부나가였다. 특히 그가 2010년에 30년 비전을 발표하기 전에 그랬다. 왜 그럴까?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다케다 가쓰요리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잡은 건 나가시노 전투였다. 노부나가가 그 운명의 전투에서 이긴 결정적 요인은 철포, 즉 조총이었다. 철포 3000자루로 당시 가장 강했던 다케다군의 기마대 1만2000명을 섬멸했다.

철포는 그로부터 약 30년 전 다네가시마라는 섬에 표류한 포르투갈인들에게 전래돼 일본이 국산화에 성공했고, 전국에 퍼져 영주들이 시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철포의 전략 전술적 가치에 최초로 눈을 뜬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는 철포를 있는 대로 사 모으는 한편,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영주들에게 철포를 진상받아 당시로선 거의 불가능했던 대규모 철포 부대를 만들어냈다. 전쟁의 패러다임 전환을 내다본 것이 승인(勝因)이었던 것이다. 기업가 손정의 역시 패러다임 전환을 예측하는 일에만 평생 골몰해 왔다. 그래서 노부나가를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손정의에게 철포는 야후, 아이폰, 알리바바, 그리고 ARM이었다. 그는 기업가보다 투자가로 더 유명하다. 야후나 알리바바처럼 나중에 대기업으로 성장할 벤처기업을 수도 없이 발굴해 냈다.

패러다임 전환 시기를 포착하라

손정의가 ARM 인수를 처음 결심한 건 언제일까? 2007년 아이폰이 나오기 얼마 전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때였다. 그때 그는 잡스가 세계를 바꿀 모바일 기계를 만들고 있음을 감지했다. 잡스는 시치미를 뗐지만, 손정의는 장차 잡스가 모바일로 뭔가 한다면 손을 잡자고 제의했다. 그날 두 사람의 대화는 훗날 소프트뱅크가 일본에 아이폰을 독점 판매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손정의는 잡스와 만나 또 한 생각을 품게 됐다. 잡스가 만들려는 작고 뛰어난 기계, 즉 스마트폰을 만들려면 저소비 전력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것은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 자랑하는 기술이었다. PC 시대 반도체 패권을 인텔이 쥐고 있었다면, 모바일 시대 반도체 패권은 ARM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손정의는 품은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일찌감치 철포의 가치에 주목한 것처럼. 당시엔 아무도 그 회사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때라 손정의는 더욱 갖고 싶었다고 한다.

손정의는 당시에 이미 벌여놓은 일이 많아 당장은 여력이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ARM을 매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손정의는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전원과 연결될 필요가 없는 초저소비 전력 반도체 칩을 대거 이용하게 될 것이고, 20년 안에 ARM이 설계한 반도체가 지구상에 1조개 이상 뿌려지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바둑으로 치자면 50수 앞을 내다본" 셈이다.

손정의는 자신이 남보다 나은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바로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성과 시기를 읽는 능력"이다. 10년이나 20년 후에 꽃피울 사업을 씨앗 단계에서 구분해내는 능력이다. 그는 "앞으로 300년 동안 진정한 의미에서 정보 빅뱅이 일어날 것"이며 "지금은 아직 그 초입"이라고 말한다. 그의 모든 미래 전략과 투자는 바로 이 관점에서 출발한다.

지난 4일 청와대를 방문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지난 4일 청와대를 방문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 연합뉴스
승률 90%까지 기다리면 늦어

손정의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모은 사우디아라비아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2016년에 만나 말했다. "20세기에 신은 저하에게 최고 선물을 주었습니다. 석유입니다. 21세기에 신이 손정의에게도 선물을 준다면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 구슬을 받고 싶습니다." 그는 이어 자신이 ARM을 인수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1조개에서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정보가 수정 구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얼마 후 손정의가 만드는 1000억달러 펀드에 540억달러를 출자해 수정 구슬을 찾는 데 동참하게 된다.

손정의의 기업 인수는 너무 앞서 나가기에 가까운 이들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앞서 나가는 이유는 뭘까. "승률이 90%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고 70%의 승산이 보일 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플랫폼'이다. 어떤 회사가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건 '게임의 룰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에게 야후, 아이폰, 알리바바, ARM은 철포이자 플랫폼이다. 관건은 시장이 완숙되기 전에 플랫폼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30년 비전을 준비하던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본인은 열심히 땀 흘리며 산을 오르지만 제자리를 맴돌고만 있는 꼴이지. 그런 자세로는 자신을 둘러싼 원을 벗어나기 힘들어. 하지만 비전이 있으면 재빨리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 있어. 결국 높은 산 정상까지도 정복할 수 있어."

손정의는 때로는 무모하고 준비성 없이 달려든다는 느낌을 준다. 초고속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든 장면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을 먼저 벌이고, 수습은 뒤에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준비 부족보다 때 놓치는 걸 더 두려워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일본식 경영과는 대조적이다. 미래를 내다보려 하는 집착만큼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리더들이 꼭 배웠으면 좋겠다. 당신의 10년 후 철포는 무엇인가? 오늘 손정의가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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