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팀으로 돌아온 세계경제 명감독… 그녀의 다음 작전은?

입력 2019.07.19 03:00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자 , 유럽경제 어떻게 이끌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자 , 유럽경제 어떻게 이끌까
크리스틴 라가르드(Lagarde·63)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3월 프랑스 중앙은행이 주최한 '파리 콘퍼런스'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 금융 시스템과 유럽 경제를 이렇게 평가했다. "금융 시스템은 10년 전 금융 위기 때보다 나아졌지만, 또 다른 경제 충격이 와도 견딜 만큼 충분하지는 않은 수준이다. 유로존 경제 역시 전반적으로 괜찮지만, 성장의 이익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고 있다." 불과 3개월여가 지난 7월 2일, 라가르드 총재는 오는 11월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발탁됐다.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던 유로존 금융 시스템을 자기 손으로 보완하기 위해 2021년까지 남은 IMF 총재 임기를 포기하고 유럽행을 결심했다.

현재 유럽 경제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이어 포퓰리즘, 극우 세력 득세,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로 전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자는 유럽 경제를 어떻게 이끌까.

금리 조정 카드는 이미 무용지물

ECB는 유로존 통화 정책을 총괄한다. 유럽 주요국이 사용하는 유로화를 직접 다루기 때문에 중앙은행으로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에 버금간다. 그러나 최근 유로존 경기가 주춤하면서 예전과 다르게 통화 가치와 영향력이 떨어지는 추세다. IMF는 올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잡았다. 지난해 성장률 1.9%보다 0.6%포인트 낮은 수치다. 내년 전망치 역시 작년만 못한 1.6% 수준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자 , 유럽경제 어떻게 이끌까
라가르드 내정자는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 경제 재부팅 버튼을 눌러야 한다. 마리오 드라기 현 ECB 총재의 경기 부양책을 완전히 뒤바꾸거나 눈에 띄는 고강도 정책을 시행하기는 쉽지 않다. ECB는 이미 2014년부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현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 이자 놀이를 하는 대신 기업과 가계에 풀어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려는 조치이다. 이 조치로 유로존 시중은행은 ECB에 자금을 맡길 때 이자를 받는 대신 수수료를 낸다. 2000년 말 3.75%였던 ECB 예금 금리는 2016년 마이너스 0.4%로 떨어진 이후 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중단하고 금리를 정상화할 만한 의미 있는 경기 회복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라가르드 내정자는 경기 부양을 위한 중앙은행의 주된 '무기'인 금리 조정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일단 드라기 총재가 추진하던 정책을 뼈대로 삼아 거기에 새 옷을 입히는 수준의 소극적 경기 부양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라가르드가 IMF를 이끌면서 ECB에 경기 회복을 위한 확장적 통화 정책을 꾸준히 권고했다는 점을 근거로 "ECB가 2조6000억유로(약 3452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내용의 추가 경기 부양책을 짤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분 심한 회원국 통합도 과제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은 여느 중앙은행이 갖는 당연한 책무다. 반면 ECB의 수장은 여기에 '회원국 통합'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같이 해결해야 한다. 현재 유로존에서는 ECB가 주도하는 경기 부양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남유럽 국가들과, 이런 경기 부양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북유럽 국가들 사이의 감정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브렉시트에 이어 유럽연합의 존망을 위협하는 힘겨루기가 줄지어 벌어지는 이런 시기에 ECB는 유럽연합을 한 경제 공동체로 묶는 임무도 해내야 한다.

유럽연합은 라가르드 내정자의 정치적 조율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라가르드는 이전 ECB 총재들과 달리 출신국에서 중앙은행 수장을 맡아본 경험이 없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통화 정책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15년간 정부 각료와 국제기구 리더로 일하면서 별다른 잡음 한번 일으키지 않았을 정도로 안정적인 행정 능력과 탁월한 협상 능력이다. 그는 프랑스 산업통상부·재무부 장관, IMF 총재로 일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통화권끼리 합의를 찾아가는 협상을 여러 차례 주도했다. IMF 총재 부임 초기인 2012년에는 구제금융을 갈구하는 그리스에 단호하게 압박을 가하다가, 2015년 그리스 정부가 자세를 바꿔 긴축 정책을 내놓자 독일을 포함한 유로존 중심국에 '그리스가 진 막대한 채무를 재조정해달라'고 앞장서 설득했을 만큼 밀고 당기기에 능수능란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라가르드 내정자가 이런 경험을 살려 오는 11월 취임 직후부터 유로존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과 ECB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ECB는 독일 자본 의존도가 높고,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를 모델로 세워졌다. 그러나 정작 독일에서는 ECB가 그리스와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국가를 도와주기 위해 돈을 푼다는 반감이 팽배하다. 많은 돈이 계속해서 풀리면서 잠재적 자산 가격 거품, 낮은 예금 이자, 저금리로 인한 경쟁력 낮은 좀비 기업 출현 같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라가르드 내정자가 기존 통화 완화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경기 침체 위기에 놓인 회원국들을 지원하려면 독일과 밀월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보수적 ECB 문화 바꿀지 관심

경제계에서 손꼽히는 '패셔니스타'이자 세계적 여성 리더로 꼽히는 라가르드 내정자가 유난히 보수적인 ECB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라가르드는 미국 법무 법인 베이커앤드맥킨지의 첫 여성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프랑스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 IMF 사상 첫 여성 총재, G8(선진 8국)의 첫 여성 재무장관에 이어 ECB 첫 여성 총재까지, 거쳐 온 기관 곳곳에서 '첫 여성' 타이틀을 5개 얻었다. 그때마다 '거침없지만 우아한 여성적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워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가르드 내정자는 영문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16세에 루게릭병으로 잃은 후 세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한 부모 가정에서 세 남동생과 함께 성장한 경험이 그녀가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부드럽지만 동시에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단련하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0대에는 수중 발레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로 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는 "이때 숨을 꾹 참고, 괴로워도 이 악물고 웃고, 남들과 함께 작업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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