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에 신음하는 '가장 미국적인 오토바이'

입력 2019.07.19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21> 할리-데이비슨의 불황 탈출 전략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미국의 대표적 중·대형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이하 할리)은 지난 4월 말, 올해 1분기 매출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13억8000만달러에 이익은 1억2790만달러를 냈지만, 이익 규모는 26.8%나 줄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본사가 있는 할리는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미국 브랜드'다. 1분기 매출 감소에는 미·EU(유럽연합) 간 무역 전쟁 영향이 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간 1510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이유로 작년 6월부터 EU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하자, EU도 가장 미국적인 상품인 모터사이클·청바지·버번위스키를 겨냥해 31%의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2021년 6월에는 66%까지 올라간다. 주요 원자재가 철강·알루미늄인 할리는 양쪽에서 포화를 받았다. 작년에 원자재 비용이 2000만달러 추가되고 유럽 판매 할리는 대당 2200달러의 가격 상승 요인까지 발생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판매 대수 매출액 추이
트럼프 관세 전쟁으로 원가 급등

할리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리가 작년 6월 25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공장을 폐쇄하고 EU 판매 모터사이클 생산 라인을 태국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자, 이번엔 트럼프가 발끈했다. 트럼프는 2017년 2월 취임 직후 할리의 CEO 매슈 레버티치(Levatich)를 비롯한 임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앞으로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면, 할리 같은 미국 브랜드가 가장 혜택을 받고 많은 미국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와 고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홍보했는데 정작 할리가 공장 해외 이전을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날 저녁부터 '폭풍 트윗'을 날리며 "내가 그토록 그들을 위해 싸우는데, 가장 먼저 백기(白旗)를 들다니!" "할리 데이비슨 같은 제품은 결코 다른 나라서 만들면 안 된다. 두고 봐라. 종말의 시작일 것" "엄청난 세금을 내게 만들겠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공교롭게도 할리의 최대 수요층은 블루칼라 백인 장년층 남성으로, 트럼프의 열렬 지지층이기도 하다. 이들은 할리의 공장 해외 이전 발표에 흥분했고, 불매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트럼프는 작년 8월 12일 ""많은 할리 소유자가 제품을 보이콧할 계획이다. 잘됐다!"며 이들을 부채질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작년 3분기 할리의 미국 매출은 전년에 비해 13.3%나 빠졌다. 이지스 캐피털의 로멜 디오니시오 애널리스트는 "당시 미국 경기가 매우 활황이어서 트럼프 요인을 빼면 이렇게 급속한 매출 감소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지난 5월 CEO 레버티치는 CNBC방송 인터뷰에서 "미·EU 무역 전쟁으로 연간 1억달러를 손해 보는데, 마냥 손 놓고 해결책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며 "대통령의 그런 코멘트를 원하는 기업은 없다"고 털어놨다.

젊은층은 구매여력 없어

할리-데이비슨
세계 최고 권력자와 대립하면서까지 할리가 브라질·인도에 이어 태국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해외시장 비중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전체 매출의 39%를 차지한다. 그러나 인도·중국·아세안(ASEAN)의 모터사이클 소비자들은 미국에서 흔히 '빅호그(Big Hogs·거대한 수퇘지)'라고 불리는 360㎏이 넘는 덩치 큰 할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국 공장은 유럽뿐 아니라 아세안 시장을 겨냥한다. 물론 100여 국에서 판매되는 할리의 90% 이상은 여전히 미국 공장에서 만들고, 특히 엔진은 창업 초기부터 밀워키 공장에서만 만든다. 할리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엔 가와사키·혼다와 같은 일제(日製) 모터사이클이 몰려오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수입 모터사이클 관세를 10배로 올렸고, 할리는 슬림화·자동화, 탄력적 노동력 투입 등을 골자로 한 도요타의 린(lean) 생산 기법을 도입하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할리의 최대 고민은 미국 인구 구성의 변화로, 미국 내 수요가 절대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할리 소비자층은 대당 기본 가격이 3만달러를 훌쩍 넘는 빅호그를 살 여유가 있는 5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빅호그의 V트윈 엔진을 시동 걸 때 나는 낮은 으르렁거림과 가속 시 뿜어내는 '쾅쾅' 굉음에 취해 교외로 질주했다. 이런 '위엄'을 외국산에선 결코 찾을 수 없다고 믿는 세대다. 그러나 이 베이비붐 세대는 퇴장하며 검소해졌고, 후속 세대는 이런 고가의 빅호그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 젊은 층은 또 날렵하고 스포티한 모델을 좋아한다. 빅호그를 더 잘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할리 팬들은 워낙 자신의 '애마'를 잘 관리해 미국에선 할리 신제품 1대가 팔릴 때마다 중고 제품 3대가 팔린다.

이거 할리 맞아?
이거 할리 맞아? 헤드기어를 쓴 한 어린이가 스테이시크사의 3~7세용 전기 모터바이크로 흙길을 달리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지난 3월 이 회사를 인수, 진동과 속도의 박진감을 즐기는 미래의 할리 수요층을 만들고 있다. /스테이시크
3~7세용 전기오토바이도 만들어

할리는 해외시장의 소형 모터사이클 수요층으로 눈을 돌렸다. 태국 공장 외에도, 지난달 19일엔 배기량 338cc짜리 모터사이클을 중국에서 합작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116년 역사의 할리가 만들어내는 '초소형'으로, 할리 기준에서 보면 '베이비호그'다. 중국과 아시아의 소형 모터사이클과 모페드(moped) 소비자들을 겨냥해, 2027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해외시장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미국에서도 작년에 이전 제품보다 무게를 15㎏ 덜어낸 '소프테일(Softail)' 8종을 새로 선보이는 등 생산 라인을 경량·다각화했다. 현재 할리는 교통체증이 심한 도심을 뚫고 나가는 '스트리트(Street)',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스포스터(Sportster)'부터 가장 육중한 '커스텀 비히클(CVO)'에 이르기까지 배기량 750~1923cc 범위에서 30종을 생산한다.

8월부터는 전기 모터사이클인 '라이브와이어(LiveWire)'를 시장에 선보인다. 시장엔 이미 1만달러짜리 타사 전기 모터사이클도 많이 나왔지만, 가속 시 붙는 굉음이 트레이드마크인 할리에 '조용한' 전기 모터사이클 시장은 '뜨거운 감자'였다. 할리는 결국 고속 주행 시 제트 엔진 소리가 나게 했다. 시속 96㎞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불과 3초. 할리 측은 '미래 지향적 사운드'라고 홍보하지만, 시동을 거는 순간 낮게 깔리는 '부르릉' 소리를 좋아하는 골수 팬들은 "할리를 사는 이유가 연료 타는 냄새와 사운드, 진동, 디자인이 좋아서인데, 라이브와이어는 180도 정반대"라고 혹평한다. 또 라이브와이어는 기본 가격이 3만달러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 2월 "이런 고가의 전기 모터사이클 시장은 클 수가 없다"고 전망했다.

할리는 지난 3월 '느닷없이' 최고 시속이 16㎞인 3~7세용 전기 바이크를 생산하는 스테이시크(Stacyc)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아이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속도의 짜릿함을 제공해, 미래의 빅호그 소비자층을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전기 바이크는 올해 9월 새 학년도 시즌에 맞춰 대당 600~700달러에 판매한다. 또 미 전역의 딜러숍에선 모터사이클 운전 강습 센터를 운영한다. 지난 9일엔 레고(Lego)사에서 블록1023개를 합쳐 만드는 할리 '팻보이(Fatboy)'도 나왔다. 실물 팻보이가 2만달러에서 시작하는 데 비해, 길이 30㎝짜리 이 레고 팻보이는 10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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