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브루와 카카오 메이커스, 그리고 프로듀스101

입력 2019.07.16 13:41 | 수정 2019.08.15 21:52

콜드브루를 마신다는 것

술은 잘 못 마신다. 소주 2잔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4잔 마시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된 것마냥 빨개진다. 1병 마시면 다음날 구현모란 존재는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커피에 안착했다. 왜 산을 타냐면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고, 왜 커피를 마시냐면 내 일상에 가장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 먹고 한 잔, 공부하며 한 잔, 저녁 먹고 한 잔, 친구를 만날 때도 한 잔 한다. 힘든 일이 생긴 친구한테 "술 한 잔?"보단 "커피 한 잔?"이 마음 편하다. 가성비 좋고, 다음날 부담도 없다.

 

무슨 커피를 좋아하냐고? 콜드브루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에 재미 들린 게 2012년부터고, 콜드브루 커피에 눈을 뜬 건 2013년이다. 그때 콜드브루는 귀했다. 지금처럼 스타벅스와 할리스 커피 같은 대형 체인점에서 팔지 않았다. 편의점과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팔지도 않았다. 당시 콜드브루는 커피에 관심 많은 주인장을 둔 작은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 그 후 들어가는 카페마다 콜드브루를 찾고, 없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 마니아는 아니다. 사실 맛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카페라떼와 카페오레의 차이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콜드브루가 좋은 이유는 그게 날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카페라테와 카페오레 그리고 카푸치노가 아메리카노의 '옆그레이드'라면 콜드브루는 '업그레이드'다. 맛보다는 커피 한 잔에 담긴 내 자존심과 자존감의 양을 말한다. 카페를 들락날락거리는 사람의 태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거다. 길거리에서 파는 저가형 커피 가게 대부분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걸 보면, 아메리카노가 왕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 특별해지고 싶다. 프라푸치노는 부담스럽다. 미친 듯한 개성을 뽐내는 듯하다. 카푸치노와 카페라테는 진부하다. 모든 것의 기본인 아메리카노에 약간의 변주인 듯 한 콜드 브루, 딱 그 정도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마시게 된다. 남들과 비교하는 허영심에 의거해 만족감을 느끼는 게 자존심이고, 스스로를 존중해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자존감이다. 남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콜드 브루를 마시면서 느껴지는 남다름과 허영심에서 자존심이 자라고, 비싼 커피를 마실 정도로 스스로를 아낀다는 감정에서 자존감이 자란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대표 주자인 스타벅스가 리저브 매장을 열어 프리미엄 커피를 판매하고 탐앤탐스도 고급 매장을 만들었다. 원두를 고를 여지도 없던 시절에서 원두 고르는 건 기본이요, 바리스타와 직접 대화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절로 넘어왔다.


"콜드 브루에서 그런 자존감과 자존심을 느낀다니 너무 오버 아니야?", "어떻게 자랐길래 저런 거야?"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이게 나만의 이야기일까? 미국의 콜드브루 시장은 지난 2015년 100% 넘는 성장을 했는데, 밀레니얼이 주도했으며 소비의 이유는 새로운 경험 때문이라고 답했다.*남다르고 싶었던 소수가 구매를 시작하고, 그 소수의 구매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콜드브루에 이어 질소를 넣은 커피가 나오는 것도 이 배경이다.**

* 관련 기사: '아직 비주류이나 급성장 중인 콜드브루 커피시장' (KOTRA, 2015.9.24)

** 관련 기사: 'How Cold Brew Changed the Coffee Business' (The NewYork Times, 2017.6.5)

생산의 시작, 메이커스

나는 반도의 흔한 대학원생이다. 반도의 대학원생을 긴장케 하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지도 교수의 수업이다. 저번 학기에 지도 교수의 수업이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있었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으로 스마트폰을 볼 수 없다. 찍히면 죽는 거고,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는 건 "저 좀 찍어주세요."의 선언일뿐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매주 오전 10시 20분 즈음에 오는 그 알림 때문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코 끝에 떨어져 나를 간질이는 머리처럼, 친구의 앞니에 낀 고춧가루처럼 나를 미치게 한다. 무슨 알림이냐고?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이하 메이커스) 알림이다. 이쯤 되면 퍼블리 글인지 광고 글인지 헷갈릴 수 있는데, 퍼블리 글이다. 좌표 제대로 찾아오셨다.

망토담요-라이언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

메이커스에 빠지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사촌동생들의 선물을 사줘야 했는데, 초등학교 3~4학년 사촌동생들에게 라이언 굿즈만큼 좋은 게 없었다. 마침, 그때 메이커스에서 라이언 이불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보다 꽂혔다.

 

다수가 아니라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어디에서나가 아니라 여기에서만 가능한, 모두가 아닌 나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준다는 컨셉이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초기 구매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산부터 엎어진단다. 내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물건이라는 개념은 내 사전에 처음이었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독특해 보이고, 명품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눈에 띌만한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이 쓴 수필집부터 매장에서 팔지 않는 라이언 망토 담요와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얼리버드 제품까지 참 다양했다.

 

한정된 소수만 가질 수 있고,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듯한 물건은 각별히 여겨진다. 같은 제품이더라도 '수제'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르게 느껴진다. 수제라는 단어에는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구매하고, 그걸 만들며 땀을 흘렸을 생산자가 들어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느낌, 대량 생산을 하지 못하기에 여기에서만 소비할 수 있다는 희귀성,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는 인식까지 삼위일체로 나를 소비의 중심에 넣어둔다. 누군가 나를 대접해주고, 내가 그걸 받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만큼 날 세계의 중심에 두는 것은 없다. 그것을 사면 내 자존감이 올라간다.

 

그렇지만 소규모 수공업, 주문형 제작 등의 생산 방식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워 필연적으로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 직장인이 봐도 착한 가격은 아니니 흔한 20대 대학원생인 내겐 분명히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매주 메이커스의 알림이 오면 부리나케 구경하고, 구매할까 말까 수십 번 망설이고 선물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찾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고, 이것이 내 자존감을 세워주고, 내가 특별한 무언가가 된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산의 완성, DIY제품

취준생들이 흔히 쓰는 자기소개서의 테마 중 하나는 퍼즐이다. 그 회사에 본인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 퍼즐 조각인지 어필한다. 본인의 시각을 더해 이 회사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말한다.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예'와 '죄송합니다'밖에 없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자기소개란 내가 얼마나 필요한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아귀가 맞는 퍼즐만큼 매력적인 구매 포인트가 어디 있겠는가.

넌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필요한지 어필하다 지친 요즘 것들을 유혹하기 위한 가장 좋은 멘트일 것이다. 무언가를 완성시키거나 이루었을 때 나오는 성취감은 자존감의 근원 중 하나다.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해냄으로써 성취감을 얻고 인정받는다. 나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부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게 싫어 퇴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를 더 강력히 뒷받침한다.*

* 관련 기사: '살고 싶어서 퇴사합니다' (시사IN, 2016.3.2)

 

D.I.Y 시장과 메이커스 문화 그리고 나노 블록 열풍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타임지에서는 미국에서 시작된 메이커스 문화가 배우려는 의지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문화의 산물이라 추정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면 그만큼 성취감이 들고, 자존감이 올라간다. 직접 조립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노블록도 같은 맥락이다. 캐릭터가 귀여우면 완성된 제품을 사면 되는데 직접 조립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비효율을 기꺼이 감수한다. 2천 조각짜리 퍼즐을 맞추고, 600 조각짜리 나노 블록을 조립한다. 이제는 아파트마저 조립한다고 한다.

* 관련 기사: 'Why the Maker Movement Is Important to America’s Future' (TIME, 2014.5.19)

조립의 매력은 구매자 스스로 제품 생산에 참여해 제품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그 제품은 완성되지 않는다. 내 참여가 제품을 완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난 누구보다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가 된다. 프로듀스 101의 국민 프로듀서는 시청자를 치켜세우는 단어이며, 투표로 데뷔를 결정짓는다는 구조는 시청자가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직접 창작에 뛰어들게 만든다. 좋아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전광판에 광고를 때리고,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건 내가 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 때문이다. 나 없이는 그가 존재할 수 없다는 자각 말이다.*

* 관련 기사: '아이돌 연습생에 천만원 '조공' 바치기…판 커진 '프로듀스101'' (조선일보, 2017.5.30)


내가 참여해 제품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소비 자체가 하나의 체험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것과 연결되며 우린 수많은 간접 체험을 겪는다. 간접 체험의 홍수 속에서 직접 체험은 더욱 희귀해지고 매력적이다.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즐기고 좋아하는 가수와 연예인의 팬미팅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심정도 여기에 있다. 물건을 넘어 사용 경험과 구매 경험을 중시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만을 위한 것이고, 내가 직접 만드는 재밌는 경험을 거부할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요즘 것들이 유난히 많이 좋아할 뿐이다.**

* 관련 기사:  '첨단화된 고전산업, 온라인 핸드메이드' (KOTRA, 2015.11.10)

** 관련 기사: '미국 '메이커 무브먼트'와 DIY산업 동향' (KOTRA, 2014.5.30)

요즘 운동권들의 소비, 후원

현재의 운동권과 운동 단체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는 게 과거처럼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경도되었다는 폄하와 '옛날도 아니고 지금 그런 걸 왜 하냐'는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운동을 접하지 못하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반값등록금, 안녕들 하십니까*와 같은 세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 관련 기사:  '2016 대학등록금, 안녕들 하십니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2016.2.5)

 

후원도 마찬가지다. 특정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기적으로 하는 후원보다 날 드러낼 수 있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후원이 좋다. 특정 단체의 이름으로 집단 지어지는 것보다 그 가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개별체가 되고 싶다. 최고의 연대가 입금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묻지마 입금은 내가 그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텀블벅에서 구매한 상품들 ⓒ구현모

젊은 세대가 텀블벅을 통한 후원을 운동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록 그것이 물건이라는 형태로 나올지언정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프로젝트를 후원하며 특정 가치를 응원한다. 텀블벅 주요 프로젝트의 굿즈인 팔찌, 배지, 에코백, 스티커 등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본인이 그것을 후원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물을 마실 때, 가방을 들 때, 걸어 다니면서 우리는 특정 가치를 지지한다는 걸 뽐낸다. 가치를 드러내며 우리는 특별해진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가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지점은 2016년의 광화문 광장이다. 민주노총, 농민연대, 지역 노동조합, 대학교의 깃발과 함께 전국디바협회와 강남역 10번 출구의 깃발이 모여있었다. 기존의 깃발들이 특정 직능단체라면 새로 생긴 깃발은 특정 가치를 중심으로 모였다. 분명히 '그냥 재미로'라는 유희의 목적이 있었으나 페미니즘이라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전국디바협회는 올해 봄에 텀블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당초 목표 금액인 350만 원의 1,200%가량인 약 4천3백만 원을 모금했다.

* 관련 기사: '편견에 도전하는 '오버워치' 디바들' (블로터, 2017.3.6)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어떤 행위보다 만족감이 높다. 특정 가치를 지지해 후원한다는 개념은 이 소비에 '착한'이라는 수사를 붙여 이 만족감에 불을 붙인다. 본인한테 착하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텀블벅은 건강한 소비이자 좋은 운동일까? 소비의 측면에 있어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면도 있지만, 과거의 직접 후원보다 규모가 줄어들었을 듯하다. 프로젝트 제작자 역시 제작의 전문가이지 후원 및 운동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구조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 결국, 수익의 몇 프로를 기부하겠다는 착한 마케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새로운 세대의 운동 혹은 후원이라 불리지만, 결국은 사회적 테마와 개성과 가치를 기꺼이 드러내는 소비자의 특성이 반영된 새로운 소비문화다.

소비가 전부인 세상에서 나를 드러내는 법

젊은 사람들의 소비문화가 바뀌니 기업도 그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그 이슈와 관련된 가치를 제품에 담기 시작했다. 마리몬드의 핸드폰 케이스, 나이키의 비트루 콜렉션, 아디다스의 프라이드팩, 러쉬의 사랑비누, 모두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의 산물이다. '착한 소비', '가치 소비'를 내세우며 제품 마케팅과 사회공헌을 합쳤다.

* 기업의 경영 활동과 사회적 이슈를 연계시키는 마케팅으로,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통해 기업이 추구하는 사익과 사회가 추구하는 공익을 동시에 얻는 게 목표

 

1984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이벤트를 시초*로 적어도 30년은 됐을 이 개념이 요즘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가 전부인 시대에, 이전 세대에 비해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딱히 꺼려하지 않는 젊은 세대와 잘 맞기 때문이다. '착한 소비'는 필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는데, 없어서 못 사는 판국이다.

* 관련 기사: '기업, 사회공헌의 진화 '코즈마케팅' 열풍…'착하고 따뜻하게' 소비자 지갑 연다' (경향비즈, 2015.11.29)

 

2017년 6월 24일 오전 11시, 한국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서 LGBT*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나이키 비트루 콜렉션이 판매됐는데 너무 빨리 팔려서 구경도 못했다. 원래 좋아하던 브랜드에서, 내가 지지하는 가치를 담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사지 않을 수가 있을까. "Shut up and take my money!"를 수십 번 외치면서 구매를 준비했지만, 실패했다.

* 성적소수자들을 이르는 말.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

 

다른 곳에서 멸종위기 동물을 알리는 알림 팔찌도 샀다. 자주 끼고 다니진 않는다. 그럼에도 산 이유는 그 가치를 응원한다는 걸 내 장신구로써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리몬드의 티셔츠나 핸드폰 케이스를 사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고, 러쉬 비누를 사며 LGBT를 응원하고, 세월호 배지로 세월호를 추모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진 못했다. 운동가로서의 삶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남이 하면 좋지만 내가 하면 힘든 일일 뿐이다.


코즈 마케팅은
사회 문제에 관심 있으면서
해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미안함을 자극한다

문제를 외면했다는 죄의식을 씻어주고, 기여했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이런 문화가 가장 도드라진 분야가 핑크머니다. 러쉬의 사랑비누, 나이키의 비트루 등 성소수자와 관련된 제품으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 지지자들의 구매력을 통칭하는 단어다.

 

코즈 마케팅이 마냥 긍정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분명히 소비라는 경제적 압박수단을 통해 특정 차별을 철폐할 수도 있고, 구매력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들을 가시화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기꺼이 가치를 저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 역시 이쁘지 않고, 구매할만하지 않다면 그것들을 저버릴 것이다. 이런 부작용과 우려가 있지만 이 추세는 멈추지 않을 듯하다. 소비와 장식을 통해 본인을 드러내는 사회이며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기엔 두렵고 어려워 이를 기업에게 넘기고, 이를 소비함으로써 문제를 외면한 죄의식을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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