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공지능, 세계 호텔·항공·철도 예약상황 분석… 단숨에 적정 교통편 찾아내

입력 2019.07.05 03:00

[Cover Story] 기술혁신 전쟁… 美·中 현장을 가다
중국의 기술 혁신 현장

중국 상하이 시트립에 있는 네트워크운영센터. 이곳에선 빅데이터 예측치 대비 실제 데이터의 괴리가 큰 상황이 벌어지면 상황 센터에서 예약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즉각 파악에 나선다.
중국 상하이 시트립에 있는 네트워크운영센터. 이곳에선 빅데이터 예측치 대비 실제 데이터의 괴리가 큰 상황이 벌어지면 상황 센터에서 예약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즉각 파악에 나선다. / 남민우 기자
중국 상하이에 있는 시트립(Ctrip) 본사. 익스피디아, 프라이스라인, 트립어드바이저와 함께 세계 4대 온라인 여행사로 통하는 중국 기업이다. 4층 네트워크 운영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세계지도를 표시한 높이 2m가량 전광판이 가로로 30m 이상 길게 공간을 차지한 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전광판에 시트립 전 세계 이용자 3억명이 어떻게 호텔·비행기·철도 여행을 이용하는지가 실시간으로 파악되면서 곳곳에서 불이 번쩍인다. 여기서 매일 쌓이는 50TB 규모 여행 데이터는 6000여명 사내 기술자가 철저하게 분석, 인공지능(AI)을 결합시켜 영업·마케팅에 활용한다. 여행객이 너무 몰리는 여행지라면 분위기가 비슷한 대체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항공편을 예약하면 선호할 만한 호텔이나 교통편을 실시간으로 추천해준다. 여행객 취향을 분석해 여행사들이 새로운 패키지여행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이 같은 빅데이터 활용은 시트립뿐 아니라 '기술굴기(技術崛起)'를 선도하는 디디추싱, DJI, 화웨이 같은 다른 중국 기업들도 보편적으로 채택한 무기다. 단지 관심 연구 수준이 아니라 실제 경영 현장에서 활발하게 응용하고 있다.

구이저우에 '빅데이터 종합시범구'

빅데이터 분야에서 중국이 무섭게 도약하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은 중국 구이저우(貴州)에 있다. 중국 대륙 남서부 낙후 지역으로 취급되던 구이저우는 2014년 '빅데이터 종합 시범구'를 선언하면서 '중국 빅데이터의 수도(中國大數据之都)' '중국의 데이터 밸리(中國數谷)'를 자처하고 나선 상태. 최근 구이저우 구이양(貴陽)시엔 국가 빅데이터 종합시험구 전시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안면 인식 사물함이 방문객을 맞는다. 사물함 비밀번호 대신 안면 인식 장치를 탑재, 얼굴만 내밀면 사물함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전시관 한쪽엔 로봇 커피 바리스타가 QR코드로 결제하는 관람객을 상대로 커피 대접에 한창이다. 로봇팔이 커피를 내린 다음 무인 카트로 자리까지 배달해준다. 쉬하오(徐昊) 구이양시 상무부시장은 "빅데이터 산업 육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부가 데이터를 얼마나 공유하느냐에 있다"면서 구이양시 빈곤층 자녀 대학 장학금 제도를 들었다. 공안이 가구별 소득 수준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빈곤층 자녀들이 대학 입학 시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장학금 수여 대상이 된다는 것. 이런 적극적인 데이터 공유 철학이 빅데이터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구이양에서 만난 주차 공유 플랫폼 앱 처미커지(車秘科技) 장유(張友) 창업자는 "정부가 육성한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기술 덕분에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미커지는 시내 유휴 주차공간 40%를 앱으로 공유하면서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 구이저우 본토 기업인 랑마(朗瑪) 정보기술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 웨어러블 기술을 접목한 인터넷 의료 전문 기업. AI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원격진료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다. 규제에 가로막혀 19년째 공회전 중인 한국 원격진료 현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상하이 자율주행차 도로로 지정된 안팅의 바오위안루에서 중국 자율주행차들이 달리고 있다.
상하이 자율주행차 도로로 지정된 안팅의 바오위안루에서 중국 자율주행차들이 달리고 있다. / 상하이시
'하이구이(海龜)' 대거 귀향…미국 추격

이 같은 중국 기술 경쟁력이 단기간에 도약하게 된 계기는 '하이구이(海龜·바다거북)'로 불리는 해외 유학생들의 귀국이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선진 대학에서 습득한 과학기술 지식을 고국에 들어와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시트립 창업자 량젠장 역시 미 조지아공대를 마치고 오러클에서 일하다 1999년 중국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시트립을 세웠다. '중국 전기차의 아버지'라 불리는 완강(萬鋼)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독일 아우디 연구·개발(R&D) 엔지니어 출신이고, 중국 차량공유업체 강자 디디추싱의 류칭(柳靑) 대표와 바이두 리옌훙 대표도 각각 하버드대와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과학 석사를 전공했다. 이런 '하이구이'가 최근 수년간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학원은 1994년 매년 해외 우수 인재 100명을 유치하겠다는 '백인(百人)계획'을 세우고 '하이구이'들을 끌어모았다. 이 '백인계획'은 2008년 '천인(千人)계획', 2012년 '만인(萬人)계획'으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예 현지로 건너가 자국 인재를 영입하는 중국 기업도 늘고 있다. 바이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AI 연구소를 세우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AI 연구를 담당했던 중국 연구자들을 싹쓸이했고, 텐센트도 미국 시애틀에 AI 연구소를 열고 IBM·MS에서 AI를 담당한 위둥 박사를 합류시켰다. 알리바바는 '아마존 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런샤오펑 박사를 영입한 바 있다.

이런 인재 영입 성과는 기술 추격 속도전에서 성과를 내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중국 선전 자율주행 스타트업 로드스타는 1년 만에 '레벨 4' 자율주행차 AI 개발에 성공했다. 구글이 '레벨 4'를 달성하는 데 9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였다. 테슬라·구글에서 자율주행차 개발에 참여했던 헝량(衡量) 대표와 '하이구이'들 관록 덕분이었다.

외국인 인재도 파격대우로 영입

중국은 특히 미래 산업 첨단기술 전장인 AI 분야에서 '미국을 초월하는(超越美國)' 오랜 희망을 착착 실현해가고 있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선 미국을 앞서는 모양새다. 최근 20년간 AI 분야 논문 건수에서 중국이 36만건으로 미국 31만건을 제쳤고, AI 관련 누적 특허출원 건수(2018년 기준) 역시 7만6876건으로 미국 6만7276건보다 많았다. 중국 선전 화웨이 본사에 가보면 화웨이가 취득한 수백개 특허장을 붙여 놓은 거대한 벽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사회의 과학기술과 기초 연구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술 수준이 가파르게 높아지다 보니 중국 내 수많은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부터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2013년 창업한 구이저우 자동화 시스템 회사 한카이쓰(翰凱斯)의 차오위텅(曹雨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현재 고객 의뢰를 받아 미국에선 무인 이동 자판기를 개발 중이고, 독일에서는 무인 자율주행 쓰레기차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과감한 인수·합병(M&A)도 미국 추격의 원동력이다. 샤오미 계열 스쿠터 제조 스타트업 나인봇은 2015년 이 분야 원조인 실리콘밸리 세그웨이를 흡수했고, 가전기업 메이디는 2016년 세계 3대 로봇 업체인 독일의 쿠카(KUKA)를 인수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