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고딘이 영향 준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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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6.21 03:00

      [Cover Story]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의 모든 것

      옆 사람에게 설명하기 쉬운 말로… '애플 광고전략' 세워

      ①애플


      고딘과 애플의 인연은 36년 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생 IT 회사 '스피나커 소프트웨어'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던 고딘은 애플의 첫 히트작 매킨토시가 시중에 나오기도 전에 애플 본사를 찾아가 베타테스터를 자청했다. 애플의 최초 개인용 컴퓨터였던 '애플 I'과 후속작 '애플 II'가 구축한 작고 단단한 세계관과 얼리 어답터를 우대해주는 마케팅 전략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는 "소수의 열성 팬에게 집중하던 애플의 전략이 완성도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결국 이런 마케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지금의 애플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고딘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막역한 사이다. '천재 해커'로 불렸던 엔지니어 워즈니악은 사실상 애플 초기의 모든 제품을 직접 설계했지만, 경영자인 잡스와 달리 마케팅에는 무지했다. 고딘은 이런 워즈니악의 전략 고문을 맡아 애플의 마케팅 전략에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어려운 전문 용어로 제품의 기능을 잔뜩 늘어놓기보다는 사용자가 옆사람에게 설명하기 쉬운 단어로 광고해야 한다는 애플 특유의 홍보 전략이 이때 나왔다.

      애플은 사람의 스타일로 맥이 일반 PC보다 세련된 작업을 하기 적합하다고 강조했다(왼쪽 사진). 이에 반해 컴팩은 자사 제품 기능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방식의 광고를 선호했다.
      애플은 사람의 스타일로 맥이 일반 PC보다 세련된 작업을 하기 적합하다고 강조했다(왼쪽 사진). 이에 반해 컴팩은 자사 제품 기능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방식의 광고를 선호했다. / 각 사
      워즈니악이 애플을 떠난 이후에도 고딘은 언론과 블로그를 통해 애플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애플이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운영체제(OS)를 무료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바일 OS의 후발 주자인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과 플랫폼 개발자에게도 무료를 선언하며 빠른 속도로 애플이 구축한 열성팬 시장을 잠식해나가던 시점이었다. 이후 OS 무료화를 고려하던 애플은 2013년부터 OS를 파는 대신 앱스토어 매출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료로 수익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딘은 "적게 잡아도 매킨토시만 200대 이상 구입한 애플의 열성팬으로서 애플이 최근 들어 점차 놀랄 만한(remarkable) 제품이 아니라 지루한(boring) 제품을 내놓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스마트폰 업계 변화의 톱니바퀴는 애플이 아니라 중국 업체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복권식 프로모션으로 이용자 늘려… 야후 전성기의 주역

      ②야후

      고딘은 야후의 절정기였던 2000년대를 함께했다. 공식 직함은 마케팅 총괄 부사장. 고딘의 야후 입사는 충동적으로 이뤄졌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마친 고딘은 당시 닷컴 붐에 편승해 1995년 '요요다인'이라는 인터넷 다이렉트 마케팅 회사를 세웠는데, 당시 최고의 인터넷 기업이었던 야후가 이 회사에 눈독을 들였다. 인수 금액은 2960만달러(약 348억원)로 20년 전 기준으로 볼 때 파격적으로 높았다.

      고딘은 인수 조건으로 야후에서 일하길 희망했다. 소규모 자영업자와 중소기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요요다인의 실험적인 서비스를 더 본격적으로 펼칠 기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8년 인수 직후 뉴욕 증시에서 야후 주가가 9% 넘게 뛸 정도로 요요다인 인수는 야후의 초기 온라인 시장 장악에 큰 힘을 보탰다.

      고딘은 야후에서 일하면서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 미국 유명 레코드사인 컬럼비아 레코드 같은 대형 회사와 온라인 마케팅을 펼쳤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주는 프로모션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고딘이다. 복권 방식 프로모션은 미국인들이 항상 즐기는 오락이었지만, 당시 인터넷상에서는 기술 문제로 이런 마케팅을 시도할 만한 플랫폼을 구현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고딘은 요요다인을 통해 쌓은 이벤트 노하우에 야후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을 더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지금은 진부한 방식이 되어버렸지만, 20년 전 이 프로모션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용자 수가 자고 나면 앞자리 수가 바뀌어 있을 정도로 빠르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같은 1세대 검색엔진과 패권 다툼을 벌이던 야후는 고딘의 마케팅 프로모션에 100만달러(약 11억8000만원)를 상금으로 내걸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급증한 이용자 수는 이후 2005년 구글이 검색 시장에 돌풍을 몰고 오기 전까지 야후가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하는 기틀이 됐다.


      소비자 주문 데이터 분석, 취향별로 다른 전단 돌려

      ③다이렉트 마케팅(1-800)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1-800'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화번호다. 수신자 부담 전화를 뜻하는 1-800은 기업 영업이나 광고 수단으로 사용되는 번호로 한국의 '080'과 유사하다.

      미국에서는 소비자가 카탈로그나 광고 전단에 적힌 이 전화번호를 보고 기업에 바로 전화를 건다고 해서 '다이렉트 마케팅'이라고 불린다. 1958년 레스터 운더만이라는 사업가가 시작한 다이렉트 마케팅은 40년이 넘게 꾸준히 입지를 지켜왔지만,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 사이트가 대거 등장하자 위기를 맞았다.

      이전까지 미국에서 기업과 소비자가 매장 외에 만날 곳이라고는 시내 외곽 직거래 농산물 장터와 다이렉트 마케팅으로 담당자와 통화하는 방법뿐이었는데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메일과 웹사이트 같은 더 편리한 방법이 생긴 것이다.

      고딘은 자신이 세운 인터넷 기업 요요다인의 이사였던 운더만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상담원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면 최저가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던 소비자 행동을 서버에 저장해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제품을 적은 카탈로그를 일정한 시기마다 뿌리고 막연히 주문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린 반면 'RFM(Recency·Frequency· Monetary value)'이란 개념을 도입해 소비자 행동 예측에 나선 것이다. RFM은 최근 주문과 구매 시점을 토대로 특정 기간 동안 얼마나 자주 구매하였는지, 구매 규모는 얼마인지를 주도 면밀하게 분석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고딘은 각 소비자에 대한 RFM을 계산한 후 이를 바탕으로 특정 취향을 좋아하는 소비자군을 나누고, 여기에 맞춰 다른 상품 전단을 공급했다. 다이렉트마케팅을 그가 말한 '팬덤' 구축에 적용한 것이다.

      고딘과 함께 RFM을 접목한 '다이렉트 마케팅의 아버지' 운더만은 올해 1월 9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딘은 "우리는 그저 쓰레기로 취급되던 광고지와 카탈로그를 보물이 가득한 보석상자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