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아마존 상품권이 답례용 특산물? 日 고향세 곳곳서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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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6.21 03:00

      시행 12년, 부작용도 급증

      중개 사이트만 배불려
      지자체 과도한 경쟁 38%를 답례비용으로 손에 쥐는 돈 44%뿐
      중개 수수료 10%에 대기업도 뛰어들어 특산물 상관없이 온갖 품목 퍼붓기

      대도시, 세금유출 반발
      기부자 사는 도시 소득·주민세 공제에 세수 크게 줄어들어
      '답례품 30% 이내로' 新지방세법 개정안 이달부터 시행 중

      '온가에시(恩返し·보은)'는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이 '은혜 갚기' 문화 덕분에 연말연시와 한여름에도 선물을 주고받는 오세이보(歲暮·연말 선물), 오추겐(中元·한여름 선물) 등 일본의 독특한 선물 산업은 꽃을 피웠다.

      일본에는 '고향세(故鄕稅)'라는 것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고향세를 납부하면 세액 공제와 답례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후루사토(고향) 납세' 제도다. 저출산·고령화로 도시와 지방의 자치단체 간 재정 불균형이 심각해지자 재정이 어려운 지역에 돈을 기부하자는 취지로 2008년 도입됐다. 특정 지자체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총기부액에서 2000엔(약 2만2000원)을 뺀 나머지 금액만큼 소득세와 주민세를 덜 내도록 혜택을 준다.

      고향세 납부액 10년간 45배 증가

      자기 고향에 기부도 하고 세금 혜택도 볼 수 있으니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 2015년 손쉽게 세액 공제를 신청할 수 있는 '원스톱 특례제도'가 도입되고 공제 상한 금액도 높아지면서 전국적으로 고향세 열풍이 불었다. 2017년도 총납세(기부)액은 3653억엔(약 4조원)으로 2008년 도입 후 45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이상 성인 남녀 1114명 중 고향세 납세제도를 이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957명(86%)이었다.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사람은 157명에 그쳤다.

      고향세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사가현은 답례품으로 증정한 친환경 딸기가 유명세를 타면서 지역 딸기 농장의 고용이 늘었다. 연어알과 털게 등 음식점 납품용 식자재를 취급하던 홋카이도의 미노리상사는 답례품 호황으로 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3배 이상 늘었다. 구마모토현 대지진 피해 지역에는 고향세가 몰리면서 복구 재원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지자체들은 고향세를 모아 마련한 재원으로 지역 숙원 사업에 나섰다. 홋카이도 가미시호로초는 고향세 재원을 어린이집·의료 무상화에 활용했다. 도쿄 조후시는 지역 출신 유명 만화작가의 생가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중개 사이트 '황금알 낳는 사업'

      하지만 2017년부터 고향세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발단이 된 것은 값비싼 답례품이었다. 지방세법상 기부자에게 답례품을 줘야 한다는 규정은 따로 없었지만 지자체들은 자발적으로 농수산물 등 지역 특산품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하지만 고향세 유치를 위해 지자체들이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과도한 답례품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고향세 유치 1위인 이즈미사노시의 고향세 납세(기부)액은 497억엔(약 5400억원)으로 2017년보다 3.7배 증가했는데, 1200개 품목에 달하는 답례품 덕이 컸다. 이즈미사노시는 일본의 저가 항공사인 피치 항공 포인트, 소고기, 해산물 등 다양한 답례품 리스트로 유명세를 탔다. 답례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역 특산품 대신 아마존 상품권이나 다이슨 가전제품을 주는 지자체도 생겼다. 이러다 보니 지자체들이 답례품 비용으로 쓴 돈이 총기부액의 38.5%에 달하는 상황이 됐다. 배달료와 중개 사이트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지자체가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총기부액의 절반도 안 되는 44.5%에 불과했다.

      주로 IT 기업들이 운영하는 답례품 중개 사이트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올랐다. 상당수 지자체가 답례품 관리를 고향세 중개 사이트에 위탁하고 있는데 지난해 기준 답례품 중개 사이트는 20여곳에 이른다. 라쿠텐, 야후재팬, ANA항공 등 대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이 중 '후루사토 초이스' 사이트는 취급하는 답례품 품목이 22만8800여개나 된다. 중개 사이트는 답례품을 홍보하면서 납세액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데 수입이 짭짤하다. 고향세 중개 사이트 운영 업체인 아이모바일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8% 정도다. 그래서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지자체는 답례품 출혈 경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제3자인 중개 사이트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시와 시골 역차별 문제 도마에

      고향세 때문에 도시와 지역 간 역차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고향세는 주로 도시보다 지방에 집중되는데 기부자가 사는 지역에 내는 소득세·주민세를 공제해 주다 보니 상당수 도시에서 세금 유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고향세로 감소한 주민세 총액은 1600억엔. 2017년 대비 20% 이상 늘어났다. 요코하마시(136억엔), 나고야시(75억엔), 도쿄 세타가야구(53억엔) 등 주민세가 감소한 상위 10곳은 모두 고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세타가야구의 세금 유출분은 지역 의료비 무상화에 드는 예산(44억엔)을 웃돈다. 정부가 고향세 공제액의 75%를 지방교부금으로 보전해주고 있지만 도쿄 23구 등 대도시는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고향세 때문에 대도시는 세수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역차별 논란이 심해지자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달부터 고향세 참여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했다. 고이케 도지사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자체에 본래 들어와야 할 세금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나고야시의 자전거 업체인 도부(東部)가 "답례품 재고 때문에 1억4500만엔 상당의 손해를 봤다"며 아이치현 가스가이시를 상대로 7500만엔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과도한 답례품 문제 때문에 고향세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 이즈미사노시는 지난달 이시다 총무상 앞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인력 파견·크라우드펀딩 등 대안 등장

      고가의 답례품 경쟁이 과열되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고향세를 규제하는 '신지방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달부터 시행된 새로운 고향세 제도는 납세자에게 보내는 답례품 가격을 기부 금액의 30% 이하로 제한했다. 품목도 지역 특산품만 줄 수 있다. 와카야마현 고야초, 시즈오카현 오야마초, 오사카부 이즈미사노시, 사가현 미야키초 등 고향세 납세액 상위 지자체 네 곳은 고향세 공제 대상 지역에서 아예 제외했다. 일본 정부는 이 4개 지역에 지급하기로 했던 특별지방교부금 7억엔도 다른 지자체에 배분했다. 하지만 새롭게 출발한 고향세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납세액이 줄면서 보육 지원 시설 건립 등 지역 사업 계획이 줄줄이 보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향세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납세자가 희망하는 지자체에 모내기 인력을 보내는 등 새로운 방식의 '온가에시'도 화제가 됐다. 지자체가 고향세의 사용 용도와 목표 금액을 미리 인터넷에 고지하고 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도 활발하다.

      한국도 기부금에 대해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다. 고향세란 별도 항목은 없지만 고향에 기부해도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본처럼 선물 경쟁에 불이 붙지 않다 보니 붐이 일지는 않고 있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정책연구실장은 "일본의 고향세는 지자체가 자기 지역으로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국가에 내야 할 세금으로 선물을 주는 셈"이라며 "지역 사업을 위한다면 선물 비용 등 헛돈이 나가는 고향세보다 중앙정부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지자체에 직접 나눠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