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좋은 의도 가졌다고 좋은 정책 아니다

    •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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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6.07 03:00

      [On the Policy]
      가난한 근로자 삶의 질 올리려는 최저임금 인상, 실직으로 이어질 수도
      암 치료처럼 정밀하게 예측하고 시행해야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김현철 코넬대 정책분석학과 교수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단과 치료를 받는다. 암이 발견되면 그 종류와 병기에 맞추어 외과적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 등을 적절히 조합한 치료가 이어진다. 아마 의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다양한 치료법이 가능하지만, 현재로는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걸까? 답은 임상 실험이다. 의사들은 지난 수십 년간 최선의 치료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10만번 넘는 실험을 했다. 신규 치료법을 적용하는 실험군과 기존 치료법을 적용하는 대조군을 비교하는 무작위 통제 실험을 통해 치료의 칼날을 갈고 닦았다. 이러한 축적은 현대 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증거 기반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을 탄생시켰다.

      병의 진단과 치료에만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몸과 같이 사회와 경제도 아프고, 치료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맞는 최선의 치료가 정부 정책이라는 모습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이러한 개념을 임상 경제학(Clinical Economics)이라 칭했다.

      시범사업 결과 보기 前 예산 배정해선 안 돼

      정부 정책이 사회와 경제에 대한 최선의 치료를 지향하고 있으니 정책 설계 단계에서 그 효과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동떨어져 있다. 수많은 정책은 당위와 직관, 빈약한 증거하에 도입된다. 정부 재정을 500억원 이상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라 하여 불필요한 선심성 정책을 시행 전에 걸러내는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쉽게 남용된다.

      정책이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반드시 의도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령 자전거 헬멧 의무화는 자전거를 더 과격하게 타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오히려 치명적 사고율을 올릴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자전거 타는 사람을 아예 줄어들게 만든다. 정부가 제공하는 직업 교육, 암 검진을 정말 필요한 사람은 외면하고, 사실상 필요 없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도 있다. 가난한 근로자의 삶의 질을 올리려는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의 실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책은 의료 시술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실력 있는 외과 의사가 암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이를 조심스럽지만 깨끗하고 잘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은 이미 수십 년간 사회 실험을 통해 정책 효과에 대한 과학적 입증에 대한 노력을 해왔다. 미국의 굵직한 정부 지출 사업 중 건강보험, 각종 고용 촉진 프로그램, 저소득층 주택 바우처, 역소득세와 같은 사회복지 정책 등이 모두 사회 실험 대상이었다. 게다가 그 노력은 초당적이다.

      증거 기반 정책 구현을 위한 핵심 요소는 혁신적 데이터 구축과 정책의 객관적 증거 확보이다. 데이터의 양과 질이 혁명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쏟아지는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수많은 데이터는 통합되어 관리되지 못하고 많은 곳에 흩어져 있다. 가령 구급차 운영 방식을 효과적으로 개선하려면 행정안전부의 119 안전신고센터의 자료,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자료, 민간 구급차 회사 및 민간 병원의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개인 정보 보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부 부처 간 데이터조차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 효용성 증거의 확보도 갈 길이 멀다. 사업 효과를 증명해야 할 시범 사업은 그 목적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령 올해 특정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데, 이미 내년 예산에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업이 기대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범 사업이 효과를 증명하기보다는 집행 과정상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검토하는 수준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