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73세에 시작해 80세에 이뤘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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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6.07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6) 자전거업체 '자이언트' 창업자 류진뱌오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73세 대만 경영자가 있었다. 40년간 자전거 회사를 경영했지만, 자전거를 즐겨 타지는 않았다. 단지 제품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 탔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영화 한 편을 보게 됐다. 청각 장애인 주인공이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는 '연습곡'이란 영화였다. 대사 하나가 가슴에 꽃혔다. "어떤 일은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어."

      그는 생각했다. "지금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평생 탈 수 없을 거야." 얼마 후 그는 15일간 대만을 일주하는 925㎞ 대장정에 나섰다. 고질병 좌골 신경통과 종아리 혈전정맥염이란 고통을 딛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페달을 밟던 그의 분투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

      지난 2007년 세계 최대 자전거 생산업체 자이언트 창업자 류진뱌오(劉金標)에게 벌어진 이야기다. '킹 리우(King Liu)'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알려진 그는 그로부터 2년 후 중국으로 건너가 20일간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1660㎞를 달렸고, 80세 생일을 기념해 다시 12일간 대만을 일주한다. 그는 대만 자전거 문화의 상징(symbol), 나아가 도전하는 대만인의 영웅이 된다.

      류진뱌오는 사업도 인생도 자전거와 같다고 말한다. 페달을 밟으면 나가지만,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가려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전거는 류진뱌오에게 미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류진뱌오는 "현재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다"라고 말한다.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존재 의미라는 얘기다. 그가 좋아하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싸우라(打仗打在開火前)'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OEM 업체에서 독자 제품 생산 변신

      창업 초기 자이언트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였다. 어느 날 커다란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유명 자전거 업체 슈윈(Schwinn)의 수주를 따낸 것이다. 슈윈과의 관계는 날로 깊어져 자이언트 매출의 75%를 차지하게 됐다.

      회사가 반석에 올라섰다고 만족할 법도 하다. 하지만 킹 리우는 오히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일 슈윈이 마음을 바꾼다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위기의식에서 자체 브랜드 '자이언트' 개발에 나섰다. 몇 년 뒤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슈윈이 자이언트와 거래를 끊고 중국 선전의 다른 업체에 제조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자이언트는 자체 브랜드를 마련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기에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이후 브랜드를 해외 시장에 보급하는 데 박차를 가해 현재 매출 구성은 미국, 유럽, 중국에 비슷한 비중으로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다.

      미래는 창의력과 노력의 합작품

      류진뱌오는 미래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대세이고, 둘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미래다. 창의력과 노력이 더해져 만드는 미래다. 류진뱌오의 경영 인생은 시종일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진뱌오 프로필과 자이언트 개요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젊은 시절 실패에서 왔다. 그는 장어 양식장을 했는데 어느날 태풍에 거짓말처럼 쓸려 가고 말았다. 그는 하늘을 원망했지만,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반성했다. 태풍이 오면 해변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양식장은 해변을 피하는 게 기본이다. 투자하기 전에 이런 위험 요소들을 더 철저히 평가해야 했던 것이다.

      위기는 어디에나 있다. '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잠복한 위기를 방치한다면 회사는 결국 비주류로 전락해 시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고 류진뱌오는 말한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류진뱌오는 한시 한 구절을 읊어 준다. '봄이 오는 것을 오리가 먼저 안다(春江水暖鴨先知)'. 늘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오리가 강물이 따뜻해지는 것으로 봄을 읽는 것처럼, 기업가는 늘 산업 동향을 민감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이언트가 머리카락 굵기 탄소섬유로 자전거 차체를 개발한 것도 그런 통찰력에서 나왔다. 당시만 해도 탄소섬유는 우주항공 산업에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자전거 업계에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류진뱌오는 그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연구개발에 전력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속도감인데 이 쾌감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차체 무게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비자층 발굴해야 성장 지속

      류진뱌오가 자주 하는 말 또 하나가 "어장이 마르기 전에 물고기를 길러라"이다. 산업이 성숙하면 모두가 다 자란 물고기를 잡는 것, 즉 기존 소비자를 뺏어 오는 데만 혈안이 되고, 물고기를 직접 기르는 것, 즉 새로운 소비자층을 키우려는 시도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고기 기르기야말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세계의 자전거 인구는 20%가 되지 않는다. 어장의 물고기를 늘리려면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머지 80%를 어떻게 집 밖으로 이끌 것인지, 어떻게 골프채를 내려놓고 자전거를 타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류진뱌오의 마지막 도전은 자전거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이었다. 자전거를 단순 교통 수단이 아니라 건강한 삶과 공해 없는 사회를 만드는 수단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류진뱌오 회장이 말년에 자전거 전도사로 변신한 것도, 대만을 자전거 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대만에 가보면 서울의 따릉이 비슷한 '유바이크'라는 공공 자전거가 있는데, 세계 어느 도시보다 편리하고 이용자가 많다. 자전거 업체인 자이언트가 민간 투자 사업 운영자로 직접 참여했다. 교통카드와 연계해 쉽게 빌릴 수 있고, 자이언트가 직접 개발한 전용 자전거가 튼튼하고 편리한 데다, 24시간 서비스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서비스에 만전을 기한다.

      류진뱌오는 2016년 토니 로 사장과 함께 회장에서 은퇴하고, 조카와 아들에게 회장과 사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중국 시장의 급성장세가 꺾이면서 자이언트의 매출은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감소세로 전환했다. 류진뱌오가 자주 하는 말이 또 있다. 그의 후계자들이 곱씹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수비만으로는 골을 넣을 수 없다.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보다 공격에 들이는 힘이 커야 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