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6.07 03:00
[Cover Story] 세계 1위 '자라'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세계 최대 의류제국 일군 '자라'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
가난으로 중학 자퇴, 셔츠점서 일하며 유통 혁신 힌트 얻어
2015년 포브스 선정 세계 1위 부호에 빌 게이츠도 제쳐…
패션 변방 스페인서 국민적 영웅으로
"나는 평범한 사람 누구나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
'자라 제국'을 이룬 인디텍스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Ortega·83)는 조국 스페인에선 국민 영웅이나 다름없다. 유럽에선 패션 변방으로 취급받는 스페인에서 세계 1위 의류업체를 일궜기 때문이다. 인디텍스 본사는 스페인에서 경제 규모로 따지면 18번째에 속하는 인구 25만명 소도시 라코루냐에 자리 잡고 있다. 오르테가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패스트 패션 왕국을 건립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오르테가는 긍지이자 자랑거리다. 오르테가 자택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서니 탁자 위에 오르테가 사진이 표지에 실린 잡지가 올려져 있었다. 지역 매체에서 지난 2월, 8개 면에 걸쳐 작성한 오르테가와 인디텍스 특집 기사였다. 호텔 직원에게 특정 잡지를 객실에 놔둔 이유를 물어보니 "오르테가는 라코루냐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르테가는 2011년 파블로 이슬라 현 인디텍스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지만 여전히 매일 본사로 출근한다. 인디텍스 담당자는 "아직도 인디텍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면서 "늘 호기심이 많고, 열정이 넘친다"고 말했다.
중학교 자퇴생에서 세계 최대 부호로
오르테가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할 무렵인 1936년 북부 레온의 인구 100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원이었다. 가난 때문에 그는 13세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라코루냐에서 '갈라'라는 셔츠점에 보조원으로 취직해 의류업에 발을 내디뎠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갈라 생산·유통 방식에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작은 가게였지만 원단을 생산업자에게 직접 사지 않고 중개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했고 가내 수공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 오르테가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지만 마땅한 직장이 없는 지역 여성들을 조직화해 여성 속옷과 아동복, 잠옷 등을 체계적으로 분업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라'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어 1972년 아내 메라(당시 약혼녀)와 함께 여성용 목욕 가운을 만들어 파는 '고아 콘펙시오네스'를 열었다. 원단업자에게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이어 하나둘 불필요한 중간 과정을 단축하면서 후일 '패스트 패션' 기본 체계를 구축해나갔다. 1975년 오르테가는 라코루냐에서 자라 1호점을 출범시키면서 본격 사업 확장에 돌입했다. 원래 가게 이름은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딴 '조르바(Zorba)'였으나 인근에 똑같은 이름의 술집이 있어 글자를 약간 변형해 '자라'라는 상호를 만들었다.
속도와 고객 만족 극대화 추구
오르테가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 옷을 적당한 가격에 최대한 빨리 만들어 판다"는 철학을 고수하면서 사업을 펼쳐갔다. 유행을 선도하지 않고 순발력 있게 따라가고,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얻은 옷이라 해도 재생산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다. 2011년 영국 케이트 미들턴 세손빈이 자라 브랜드 드레스를 입고 공연장에 나타나자 전 세계에서 관심이 폭주했지만 자라는 "추가 생산은 없다"고 선언했다. 자라 시계(時計) 안에선 미들턴이 입고 나타난 시점은 이미 지나간 유행이란 계산이었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1만여 개 인디텍스 브랜드 지점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가 속속 본사에 실시간으로 접수되고 제품에 반영된다. 자라가 매년 새로 출시하는 디자인은 1만2000개에 달한다. 자라 내에서 퍼진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오르테가가 지나가다 오토바이 탄 운전자가 멋진 수제 청재킷을 걸친 걸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어 모양을 일러준 다음, 만들라고 지시한 옷이 바로 다음 주 생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회장 물러날 때도 퇴임식 없이 메모 1장
오르테가는 노출을 특히 꺼리는 '은둔의 경영자'로 통한다. 1999년까지 사진 한 장 언론에 등장한 적이 없었고, 2001년 상장을 앞두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달랑 기자 3명과 인터뷰한 다음 다시 사라졌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도 퇴임식 없이 메모 한 장으로 퇴임사를 대신했다. 정장 대신 파란색 점퍼에 하얀 셔츠, 회색 바지를 작업복처럼 입고 자라 본사를 누빈다. 회장실도 따로 안 두고 항상 현장을 돌면서 직원·디자이너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한다. 자라가 극도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건 이런 오르테가 성품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아침은 동네 분식점,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며, 스스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고 누구나 노력하고 헌신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오르테가는 지난 2015년 미 경제 매체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 1위에 오르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산 규모 795억달러로 단골 1위이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785억달러)와 신흥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676억달러)을 제쳤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674억달러)보다도 많았다.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투자 업체가 아닌 의류 소매업체 창업자가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한 건 포브스 순위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뒤 지분 가치가 떨어지면서 최근 6위까지 내려앉긴 했지만 재산이 614억달러에 달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소매상'으로 꼽힌다.
중학교 자퇴생에서 세계 최대 부호로
오르테가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할 무렵인 1936년 북부 레온의 인구 100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도원이었다. 가난 때문에 그는 13세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라코루냐에서 '갈라'라는 셔츠점에 보조원으로 취직해 의류업에 발을 내디뎠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갈라 생산·유통 방식에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작은 가게였지만 원단을 생산업자에게 직접 사지 않고 중개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했고 가내 수공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 오르테가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지만 마땅한 직장이 없는 지역 여성들을 조직화해 여성 속옷과 아동복, 잠옷 등을 체계적으로 분업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라'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어 1972년 아내 메라(당시 약혼녀)와 함께 여성용 목욕 가운을 만들어 파는 '고아 콘펙시오네스'를 열었다. 원단업자에게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이어 하나둘 불필요한 중간 과정을 단축하면서 후일 '패스트 패션' 기본 체계를 구축해나갔다. 1975년 오르테가는 라코루냐에서 자라 1호점을 출범시키면서 본격 사업 확장에 돌입했다. 원래 가게 이름은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딴 '조르바(Zorba)'였으나 인근에 똑같은 이름의 술집이 있어 글자를 약간 변형해 '자라'라는 상호를 만들었다.
속도와 고객 만족 극대화 추구
오르테가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 옷을 적당한 가격에 최대한 빨리 만들어 판다"는 철학을 고수하면서 사업을 펼쳐갔다. 유행을 선도하지 않고 순발력 있게 따라가고,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얻은 옷이라 해도 재생산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다. 2011년 영국 케이트 미들턴 세손빈이 자라 브랜드 드레스를 입고 공연장에 나타나자 전 세계에서 관심이 폭주했지만 자라는 "추가 생산은 없다"고 선언했다. 자라 시계(時計) 안에선 미들턴이 입고 나타난 시점은 이미 지나간 유행이란 계산이었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1만여 개 인디텍스 브랜드 지점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가 속속 본사에 실시간으로 접수되고 제품에 반영된다. 자라가 매년 새로 출시하는 디자인은 1만2000개에 달한다. 자라 내에서 퍼진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오르테가가 지나가다 오토바이 탄 운전자가 멋진 수제 청재킷을 걸친 걸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어 모양을 일러준 다음, 만들라고 지시한 옷이 바로 다음 주 생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회장 물러날 때도 퇴임식 없이 메모 1장
오르테가는 노출을 특히 꺼리는 '은둔의 경영자'로 통한다. 1999년까지 사진 한 장 언론에 등장한 적이 없었고, 2001년 상장을 앞두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달랑 기자 3명과 인터뷰한 다음 다시 사라졌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도 퇴임식 없이 메모 한 장으로 퇴임사를 대신했다. 정장 대신 파란색 점퍼에 하얀 셔츠, 회색 바지를 작업복처럼 입고 자라 본사를 누빈다. 회장실도 따로 안 두고 항상 현장을 돌면서 직원·디자이너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한다. 자라가 극도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건 이런 오르테가 성품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아침은 동네 분식점,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며, 스스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고 누구나 노력하고 헌신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오르테가는 지난 2015년 미 경제 매체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 1위에 오르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산 규모 795억달러로 단골 1위이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785억달러)와 신흥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676억달러)을 제쳤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674억달러)보다도 많았다. 실리콘밸리 기업이나 투자 업체가 아닌 의류 소매업체 창업자가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한 건 포브스 순위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뒤 지분 가치가 떨어지면서 최근 6위까지 내려앉긴 했지만 재산이 614억달러에 달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소매상'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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