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비야 내려라" 클라우드의 마술사, 아마존에 먹구름을 몰고오다

입력 2019.06.07 03:00

글로벌 시총 1위 탈환한 MS의 사티아 나델라 CEO


모자 달린 티셔츠를 즐겨 입고, 인도 크리켓 영웅의 사인이 담긴 배트를 항상 책상 옆에 둔다. 개발자 시절엔 '남을 화나게 하지 않는 직원'으로, 최고경영자(CEO)가 된 후엔 '직원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순한 리더'로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가 2014년 CEO 취임 후 MS를 진두지휘하며 부활을 일구는 모습을 봐온 업계에선 '무서울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PC 운영체제인 '윈도'로 1990년대 IT(정보기술) 혁명을 이끌었던 빌 게이츠의 MS가 최근 나델라 CEO 체제 아래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말 아마존과 애플을 제치고 16년 만에 시가총액으로 글로벌 1위 자리를 탈환한 후, 격차를 벌리며 대장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엔 시가총액이 나델라 CEO 취임 이후 230% 이상 증가해 1조달러에 육박하는 등 위세가 등등하다. 모바일 시대에 뒤처지고 말았던 MS의 위상을 나델라 CEO가 성공적으로 되찾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적 마인드 가진 공학도 CEO

사티아 나델라는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처럼 인도 출신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CEO까지 올랐다.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에 이은 MS의 세 번째 CEO다. 지난 2014년 전임자 발머가 사업 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날 당시에도 MS의 윈도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90%에 달했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 성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IT 업계 선두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700조원이 넘었던 시가총액은 2010년 250조원까지 쪼그라들었는데, 미국 잡지 등에 '몰락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당시 빌 게이츠 회장과 이사회가 고려한 100명 넘는 차기 CEO 후보 가운데 나델라는 전략적이고 공학도다운 전문성으로 깊은 인상을 줬다고 한다. 그는 2011년부터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를 맡아 연구했고, 액셀·워드 같은 'MS오피스' 프로그램을 클라우드 서비스에 결합한 '오피스365' 출시를 주도했었다. 그가 CEO에 오르기 전 수석 부사장으로 있었던 엔터프라이즈·클라우드사업부의 매출은 이미 2012년 윈도사업부 매출을 뛰어넘었다. 나델라는 향후 MS의 중심 사업이 클라우드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경영진에 이를 피력했다.

취임 이후 나델라는 '클라우드 퍼스트(first·우선)' 전략을 흔들림 없이 실행했다. 나델라가 직원들에게 보낸 첫 번째 이메일은 1000개 단어로 쓰였는데, 윈도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조직 개편을 단행해 클라우드를 중심 사업으로 전면에 세웠고 작년에는 윈도사업부를 아예 축소해버렸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과거 MS 오피스 프로그램은 한 번 돈을 지불하면 끝나는 '상품'이었지만, 이제는 클라우드 기반 '구독 서비스'로 재탄생했다. 사용자에게 1년에 99달러의 요금을 받는데, 무려 2억1400만명이 이용 중이다. 기업 대상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는 엑손모빌, 스타벅스, 월마트 등 대기업 고객사들을 석권했다. MS의 클라우드 사업 매출은 꾸준히 성장해 올 1분기 340억달러(약 40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작년 연간 매출도 1103억6000만 달러(약 130조4000억원)에 달했다.

'윈도'보다 클라우드로 승부수

2016년까지만 해도 MS 이사회 일각에선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나델라의 선택은 선견지명이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란 거대한 데이터 센터, 해양 횡단 케이블 등의 인프라를 구축한 뒤 기업들에 돈을 받고 서버·네트워크·저장공간 등을 대여해주는 것이다. 이 시장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나델라가 CEO에 취임할 당시 클라우드 분야에서 아마존은 '절대 강자'였다. 아마존은 MS보다 클라우드 사업을 4년 일찍 시작했고, IT 인프라 구축이 여의치 않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고객사들을 절대적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MS는 빠르게 점유율을 늘렸다. MS의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은 2017년 말 14%에서 2018년 말 17%로 1년 만에 3% 증가했다. 이 기간 아마존의 점유율은 32%로 유지됐다. 이는 MS의 강점 덕분이었다.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윈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호환이 쉽고, 전환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MS는 윈도를 쓰고 있는 기업에 클라우드 비용 할인도 제공했다. 기업 애널리스트들은 "마트·편의점의 판매 정보 관리 시스템(POS), 은행의 자동화 기기(ATM), 공장의 각종 기계들도 윈도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MS의 고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델라 CEO는 작년 '오픈소스(무상으로 공개된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 공유 커뮤니티'인 깃허브(GitHub)를 약 8조원에 인수하며 아마존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마존이 70% 가까이 장악하고 있는 스타트업 개발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과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는 것이 본업이었던 시절 MS는 오픈소스를 '암(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깃허브 인수는 MS가 얼마만큼 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존의 적들을 아군으로

클라우드 운영 철학에서도 나델라 CEO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CEO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의 경우 사업 분야를 다방면으로 확장하고 있어 클라우드 사업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마존을 경쟁자로 보는 회사들이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료품 수퍼마켓 체인인 크로거의 CIO(최고정보관리책임자)는 지난 2017년 "우리가 아마존의 성장을 도울 이유가 없다"며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작년 7월 이후 앨버트슨, 갭, 크로거, 월그린스, 월마트 등 5개 주요 유통업체가 아마존 대신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금융사, 헬스케어 기업, 물류업체 중에서도 이러한 기피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나델라의 MS는 고객사를 보조하고 설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고객사의 신뢰를 얻고 있다. 아마존이 자율주행차에 자사의 음성 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MS는 BMW나 닛산, 폴크스바겐 등이 자체적으로 음성 보조 장치를 개발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상에서 AI(인공지능) 기술과 데이터 분석 수단을 제공한다. 나델라 CEO는 고객사를 만나면 "우리(MS)의 클라우드 플랫폼 안에 당신 회사가 들어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당신 회사만의 플랫폼을 만들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한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나델라가 MS의 전통적 강점인 기술력과 인프라 구축 능력, 그리고 다시 부상하겠다는 야망을 되살려 놓았다"고 전했다.

[급성장하는 클라우드 시장… 아마존 1위, 2위 MS]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클라우드 시장 규모는 2017년 1020억달러(약 120조7000억원)에서 2021년 2280억달러(약 269조8000억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마존, MS, 구글, IBM, 알리바바가 5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로 꼽힌다.

기업들이 클라우드를 선호하는 것은 효율성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IT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는 대신 클라우드 업체에 아웃소싱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주력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자체 데이터 센터 운영 능력이 있었음에도 2009년부터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아마존 웹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모든 데이터를 AWS로 이전했다. 개발자들이 콘텐츠 혁신과 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넷플릭스는 주말 오후 등 특정 시간대에 사용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클라우드를 이용하면서부터 데이터 사용량만큼만 비용을 유연하게 지불할 수 있게 돼 효율성이 높아졌다.

삼성증권의 한주기 애널리스트는 "초기에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클라우드를 이용했으나, 최근에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제공하는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아마존, MS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데이터를 분석·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제약 회사 노바티스는 2013년 AWS의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1000만개 화합물 조합 중 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조합을 단 9시간 만에 찾아내기도 했다. 자체 설비로 진행할 경우 4000만달러(약 470억원) 투자가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AWS를 이용해 4232달러(약 500만원)로 비용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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