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1075억원 → 1084억원 6개월 만에 또 최고가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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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5.24 03:00

      [이규현의 Art Market] (14) 경매가의 비밀 '승자 독식'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5월 중순 뉴욕에서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필립스 등 세계 굴지 경매회사들이 현대미술 작품을 내놓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각 분야에서 기록적인 가격이 쏟아져나왔다. 인기 있는 생존 작가들 작품 값이 치솟는 건 여전히 큰 화제였다. 특히 제프 쿤스(Koons·64)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인 '토끼(Rabbit)'는 9100만달러(약 1084억원·수수료 포함)에 팔리면서 생존 작가 최고기록을 6개월 만에 다시 경신했다. 작년 11월 9030만달러(약 1075억원·수수료 포함)에 팔렸던 데이비드 호크니(Hockney·82)의 '예술가의 초상'이 이전까지 생존 작가 최고기록이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수수료율을 높이면서 경매 최종 가격이 높아진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겼지만, 그래도 6개월 만에 또다시 생존 작가가 1000억원 넘게 팔린 것 자체는 놀라운 결과다. 호크니 이전에 생존 작가 최고기록은 역시 제프 쿤스였고, 2013년 팔린 '풍선 개(Balloon Dog·5840만달러)'였다.

      이번에 9100만달러에 팔린 쿤스의 '토끼'는 쿤스가 즐겨 하는 풍선 시리즈 작품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풍선 인형 모양을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으로 만드는 이 시리즈가 1000억원 넘게 팔리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조각이기 때문에 똑같은 에디션이 3개, 작가 소장용 '아티스트 프루프(AP)'가 1개 똑같이 존재하는데. 도대체 이런 작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몇몇 수퍼스타 작가들이 그들끼리 기록을 깨면서 뉴스를 장식하는 장면에 익숙해져 있다.

      예술·스포츠계, 승자 독식 시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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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9030만달러에 팔린 데이비드 호크니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 / 크리스티
      이런 현상을 보면서 미술시장은 이제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처럼 '승자 독식(Winner-Take-All)'의 시장이 되어 가는 걸 알 수 있다. 승자 독식 시장에서는 경쟁자들보다 조금만 뛰어나도 일단 우위를 점하면 시장을 불균형적으로 많이 점유한다. 전 세계적으로 소수 프로 스포츠 스타들은 다른 선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액 연봉을 받는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소수 스타급 선수들은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면 전체 계약 규모가 100억원 이상인 '대박'을 가져온다. 대중문화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100배 더 번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100배 잘하는 건 아니다. 뛰어난 사람 몇몇에 대한 수요가 몰려 지나친 경쟁이 붙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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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 작가 최고 경매가를 경신한 제프 쿤스 ‘토끼(Rabbit)’.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이다. / 로이터
      미술시장도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아트바젤과 UBS가 올해 낸 보고서에서는 순자산이 10억달러가 넘는 억만장자 수가 2000년에 비해 2018년에는 4배 정도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억만장자들은 자산 일부를 미술품에 투자한다. 그 덕에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 규모가 2009년 120억달러에서 2018년 300억달러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 성장을 주도한 작가가 몇몇 '빅네임'이고 그 빅네임 작가들을 다루는 갤러리도 전 세계 소수 수퍼 갤러리들이란 점이다. 작년에 비싸게 팔린 생존 작가 20명은 전체 시장 매출의 64%를 차지했다. 갤러리로 볼 땐 상위 5%에 들어가는 갤러리들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승자인 몇몇 작가 작품 가격은 이제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 영향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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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쿤스 ‘풍선 개(Balloon Dog)’. / EPA
      전문가들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승자 독식 현상이 두드러진 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발달에 따른 세계화 영향이 크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펼쳐지는 프로스포츠 중계를 우리나라에서 보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유럽 주요 국가 축구 리그나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를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에 가지 않아도 프리미어 리그나 메이저 리그 특정 구단 팬을 자처하는 시대다.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은 세계 최고 프로 스포츠를 향해 몰리고, 자연히 몇몇 스타 선수와 스타 구단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현대미술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감상한다. '아트토이' 분야 세계적 스타인 커스(KAWS)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어가 200만명이 넘는다. 관람객들도 미술품 전시나 경매 현장에서 작품 사진을 날려주기 때문에, 꼭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경매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누가 지금 가장 인기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세계적 경매회사들은 경매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다만 미술시장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처럼 톱스타 한두 명이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시장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박지성과 손흥민 덕에 국내에 축구 팬이 많아졌고, BTS의 존재는 K팝 시장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하지만 과연 미술시장도 몇몇 스타가 전체 파이를 키워갈 수 있는 시장일까. 컬렉터들이 점점 더 '돈 되는 작가' 몇몇에만 투자를 해서 극소수 수퍼스타 작가들 값만 치솟고, 이런 작가들을 다룰 수 있는 톱 갤러리들이 독식을 하는 게 전체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것은 중소 갤러리들 역할인데, 중소 갤러리들이 이 승자 독식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어떤 미술 작가들만 살아남게 될까. 이런 이슈들은 앞으로 미술계에 많은 고민거리를 남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