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최대 격변기… 전기차 초기 단계선 정부가 적극 역할해야"

입력 2019.05.24 03:00

GM 구조조정 주도… 알릭스파트너스 테드 스텐저 파트너

알릭스파트너스 테드 스텐저 파트너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2009년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500억달러(약 60조원)에 달하는 미국 정부 구제 금융을 지원받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던 미국 자동차 생산 업체 GM. 10년이 지난 지금 GM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 점차 과거 영화를 찾아가고 있다. 당시 GM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알릭스파트너스 테드 스텐저(Stenger) 시니어파트너를 만나 그 비결과 저력, 그리고 한국 자동차 산업과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 물었다. 스텐저 파트너는 최근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는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차에서 전기차 혁명까지 태동 초기 이후 가장 큰 격변기를 맞고 있다"면서 "전 세계 자동차 업체가 미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원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이럴 때 삐끗하면 영원히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영환 알릭스파트너스 한국사무소 대표가 동석해 인터뷰를 도왔다.

Q1. GM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테드 스텐저 프로필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GM은 점유율이 글로벌 3~4위권으로 추락했는데 조직 규모는 1위 회사처럼 방만했다. 이익을 못 내는 브랜드가 넘쳤다. 그걸 자각하고 신속하고 과감하게 없앨 건 없애고 줄일 건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생산 시설을 40%가량 정리했다.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태라 이 상황을 이해시키는 게 어렵진 않았다. 강성으로 통하던 노조와 협상이 3개월 만에 마무리된 것만 봐도 당시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다. 노조가 현실을 받아들인 게 컸다. 회사가 없어진다면 노조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연금과 의료 혜택, 각종 복지 제도를 축소하고 신입 사원 초임도 낮췄다. 필사적으로 비용을 줄여가면서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GM이 가는 길은 명확하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설사 지역 주민 반발이나 정치적 파장을 부르더라도 회사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파산 직전까지 가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이다."

Q2. 정부가 자동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게 있을까.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초기 과정에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크다. 전기차만 해도 정부가 보조금을 공격적으로 지급하는 나라들이 한발 앞선 경쟁력을 보유한다. 중국이나 싱가포르를 보라. 내연기관에선 한국 자동차 업체가 단연 앞서지만 전기차는 이 후발 주자들에게 추월당할 처지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면 출발 단계에선 국가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 구조조정만 놓고 보면 GM처럼 자금 지원만 하고 실행 단계에선 제3의 민간 기관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휘둘리지 않고 명확하게 노선을 견지할 수 있다."

Q3. 과거 미국 대형 유통 업체 K마트 구조조정도 관여한 경험이 있다. 어땠나.

"K마트는 두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첫 번째(2002년)에 관여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빅데이터' 기법을 활용했다. 점포별로 인기 상품과 판매량 변동 상황, 특화할 수 있는 제품을 분석해서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안 팔리는 상품은 과감하게 치웠다. 어느 정도 경쟁력을 회복했다고 판단했으나 그 뒤 다시 한 번 유통업계가 디지털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K마트는 실책을 거듭했다. 명확한 전략 없이 지점 확장에 몰두했고, 특정 상품군(群), 예를 들어 스포츠용품은 전문점(딕스스포팅굿즈나 스포츠오소리티)에 밀리는데 계속 진열을 고집하면서 재고가 늘었다. 백화점 시어스와 시너지 효과에 대한 구체적 분석 없이 합병하면서 결과적으로 윈윈(win-win)이 아닌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돼버렸다. 충성 고객이 누구며 어떤 상품이 핵심 수익을 창출하는지 연구도 미흡했다. 다른 얘기지만 월마트는 이런 K마트 몰락을 보면서 각성했는지 몰라도 현재 디지털 전환이나 고객 취향 분석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아마존이 대표하는 인터넷 쇼핑몰 공습에도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고 본다."

GM 경영 성적표
Q4. 좀비(Zombie)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숲에 사슴이 너무 많아지면 사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숲 생태계 전체가 파괴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좀비 기업은 결국 기업 생태계 전체를 악화시킬 수 있다. 경제 전체가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걸 일부라도 좀비 기업들이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전체 활력이 떨어진다. 물론 좀비 기업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그 기업이 기반을 이루던 도시들은 위축된다.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 생리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계속 이동한다. 러스트 벨트에서 실리콘 밸리로 경제 중심 축이 이동하면 인구 구조가 변화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동성(mobility)은 생물 생태계처럼 먹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플린트나 제인스빌(GM 공장이 폐쇄된 도시)이 쇠락하고 오스틴(텍사스주 신흥 기술 기업 집적지)이 부상하는 건 어떤 이들에겐 우울할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질서다. 파산은 실패가 아니다. 다시 일어서고 개선하는 산업 사이클 속 한 단계다. 끝이 아니다."

Q5. 한국 경제 구조조정을 위해선 뭐가 필요한가.

"한국 경제도 2%대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시기를 맞았다. 올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금융 위기 이후 최저다. 제조업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약화하고 있고,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 주도 성장에도 민간 근로 소득과 소비 증가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미 기준 금리 역전 현상으로 자본 유출이 확대될 수 있어 금융시장 불안정 조짐도 보인다.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총체적 회생(holistic turnaround)에 나서야 한다. 이미 선진 기업들은 핵심 사업 부문 운영을 개선하고, 유동성을 관리하면서, 조직 변화에 전력투구해, 위기를 오히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Good to Great)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바꿔가고 있다. 에어버스는 이미 2007년부터 이런 총체적 회생 작업을 선도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프로그램을 생산·사무 현장에 전폭 투입해 비용을 효율화하고, 장기 성과와 목표를 뚜렷하게 잡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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