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을 구미 아닌 용인에 세우려는 이유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LAB2050 자문위원

입력 2019.05.24 03:00

[WEEKLY BIZ Column]

제조업 숙련노동 갈수록 의미 퇴색
위기의 지방근로자 초광역권 산학연 클러스터가 해결책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LAB2050 자문위원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LAB2050 자문위원
조선업계는 2015년부터 구조조정 한가운데 있다. 대우조선해양에만 7조원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조건은 '뼈를 깎는 고통 분담'. '인적 구조조정'이 핵심이다. 그 뒤 5만 명 넘는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단지 사라진 일자리 규모 이상을 뜻한다. 그건 보통 사람들이 건실히 살아갈 수 있던 한국형 성장 모델의 붕괴를 상징한다.

한국 중화학공업 발전은 수출 기적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도 건실한 직장을 갖고 생계를 부양할 수 있게 한다는 약속이었다. 대학에 가질 못해도 용접이나 기계조립을 배우면 제조업체에 들어가 괜찮은 급여를 받으면서 해외여행도 가고 집도 마련하며 가족을 건사할 수 있었다. 그런 중화학공업 전성기는 201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 호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국가의 주력 산업 주도권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이다. 이제 우리는 숙련의 의미 변화와 고학력자 비중 확대, 그리고 지역별 격차를 눈여겨봐야 한다.

지방 근무 꺼리는 일류 엔지니어들

'숙련의 의미 변화'는 생산직 근로자의 노동 가치가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근로자 숙련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조립공정을 만드는 걸 목표로 작업장 체질을 바꿔왔다. 현대차 노조가 최근 2017~2025년 사이 정규직 근로자 1만7500명이 정년퇴직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력 충원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거절할 수 있던 자신감은 여기서 나온다. 현대차 공정 자동화율은 세계 최고이며 미숙련·저숙련 노동자가 투입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손끝 숙련'이 중요하다는 조선산업도 50% 가까운 생산공정이 사내 하도급에 넘어갔다. 생산직이 만드는 혁신의 비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생산성 향상은 현장 노동자보다는 사무실 기술·설계 엔지니어들 손끝에서 출발한다.

대학 졸업장은 평범한 자격증이 됐다. 대학 진학률이 20%가 되지 않던 시절엔 공고·상고를 나와 일터로 가는 이들이 '보통 사람'이었으나 1980년대생들부터는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었다. 현장 생산직이 아니라 대졸 엔지니어, 사무직이 '보통 사람'이 됐다.

지리적 불균등도 심화하고 있다. 기존 산업도시들 위상이 낮아진 건 생산 자체보다는 연구·개발과 설계, 생산 계획이란 선행 과정이 중시되면서부터다. 일류 엔지니어들은 수도권 근무를 선호한다. 지방 근무를 꺼린다. 그래서 기업들은 가능하면 제조 거점을 수도권에 두려 한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반도체 생산 공장을 구미가 아닌 용인에 세우기로 한 이유다. 반도체 산업은 분명 제조업인데 이젠 '지식기반산업'으로 불린다.

지방 근로자·자녀 대책 시급

대량 실업이 발생한 기존 산업도시를 고용위기지역 또는 산업위기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서 특별 편성한 정부 예산을 내려보내 노동자 재교육, 노동시장 재진입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현재 정부의 고용 위기 대책이다. 그런데 여기에 실직자들의 '자녀' 세대에 대한 대책은 들어 있지 않다. 지방을 떠나려는 일류 엔지니어를 붙드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지방대를 나와 산업도시 현장에서 악전고투하며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위한 대책이 중요하다. 이들이 교육과 경험의 선순환을 통해 숙련도를 축적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그런 의미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강조되어온 '지역별 산학연(triple helix) 클러스터'는 검토해볼 만하다.

첫째, 생산직 '아빠'들이 더 숙련도를 높여가며 일하거나 다른 직장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과 재교육, 노동시장 재진입 체제를 만들고 재정비해야 한다. 숙련은 이제 한 작업장 안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공학 지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을 고도화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이런 평생교육·재교육이 노동자 개개인 노력과 비용 부담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 학습 결과가 현장에 원활하게 반영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 참여가 필요하다.

둘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평생교육 관점에서 대학 체제가 필요하다. 지방대는 이제 시민 교육과 제조업 종사자 재교육을 위한 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투자가 모두 필요한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이런 전환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도시 단위를 넘어선 초광역권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해당 산업도시 산업적 이점을 고도화하고 대도시 사회적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권역을 엮어내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산학연 연결망에서 창출하는 선순환을 통해 혁신 역량이 길러지고 기존 산업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자녀 세대들도 일과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지역에서 삶의 질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동력은 다시 산업 생태계를 단단하게 만들고, 한국은 새롭게 진화한 '제조업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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