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에서 불을 밝힌다 내가 어두워야 리더가 빛난다 나는 참모다

입력 2019.05.24 03:00

[Cover story]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시마 사토시, 그가 말하는 '훌륭한 참모의 조건'

2005년 12월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 간부 회의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넉살스럽게 이런 말을 던졌다. "보다폰(재팬)의 모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야…정말 원하면 사가라고 하던데?" 농담으로 여긴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선언한 소프트뱅크였지만 보다폰재팬을 인수하려면 2조엔이 필요한데 소프트뱅크는 보유 자금이 2000억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손 사장은 입사 2개월이 갓 지난 시마 사토시(嶋聡) 사장실장에게 가볍게 의견을 물었다. 중의원 출신인 그는 "국회에서 정보통신 정책을 담당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시장은 3사 체제로 재편될 것이고 인수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황당하게 들렸던 그 계획은 그 자리를 계기로 3개월 만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2006년 3월 소프트뱅크는 기어코 업계 3위이던 보다폰재팬을 인수했고, 단숨에 1520만명 사용자를 손에 넣었다. 8년 뒤 미국 이동통신 업체 스프린트까지 인수하면서 일본을 넘어 글로벌 통신 강자(强者)로 약진한 계기는 바로 손 사장과 시마 실장의 의기투합이었던 셈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김현국
'손정의 제국'을 보좌한 책사

시마는 보다폰 인수를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진언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에 빗댔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위나라 조조와 맞서려면 오나라와 손을 잡고, 형주(荊州)·익주(益州)에 근거지를 마련하라"고 진언했다. 시마는 손 사장에게 보다폰 인수가 거대 기업 NTT에 맞서는 (삼분지계의) 첫걸음이라고 조언한 것이다.

보다폰을 인수한 뒤 한 달 만에 손 사장은 판매대리점 담당자들을 상대로 휴대폰사업 전략설명회를 열고 폭탄선언을 던졌다. "10년 안에 NTT를 앞지르겠다"고 장담한 것. 당시 일본 통신업계는 국영기업에서 민영화한 NTT가 시장점유율 53%를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었고, KDDI가 26%, 보다폰재팬은 6%로 멀찌감치 뒤떨어진 3위였다. 안팎에서 "말도 안 된다" "또 허풍이 시작됐다"고 비웃었지만 시마는 그 허풍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전술·기획을 짜고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 손 사장을 지원 사격했다. 2013년 10월 소프트뱅크는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연결 기준)에서 NTT를 앞질렀다고 선언했다. 8년 만이었다. 시마는 WEEKLY BIZ와 인터뷰에서 "훌륭한 참모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보스의 무모한 목표를 실현시켜준다"고 강조했다.

"보스와 다른 사고로 부족한 면 채워야"

천하를 호령한 영웅들 곁에는 항상 그 야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갈 수 있도록 기획하는 2인자, 참모(參謀)가 존재했다. 이성계 옆엔 정도전이, 유비에겐 제갈량, 조조는 순욱, 토니 블레어는 필립 굴드를 통해 이상을 현실로 바꿔나갔다. 기업 세계에도 마찬가지다. 손정의에게 시마가 있었던 것처럼 마크 저커버그는 셰릴 샌드버그를 등용해 '20대 놀이터' 같던 페이스북을 명실상부한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아마존 제국'을 구축한 제프 베이조스는 '그림자 참모'들을 교체해가면서 조직을 정비했다. 텐센트는 마틴 라우 텐센트홀딩스 사장이 비사교적인 성격을 지닌 '보스' 마화텅 회장 대신 전 세계를 누볐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곁에는 60년 지기 '고향 선배' 찰스 멍거 부회장이 언제나 자리를 지킨다.

시마는 '참모론'에 대해 "보스와 다른 사고방식으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콤비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며 "동물적으로 보스의 관심 사항을 파악해 그가 움직이기 전부터 손발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모는 종복(從僕)이 아니다. 정확한 경영 환경 분석을 바탕으로 보스가 내준 가이드라인을 명심하면서 개혁 실무 작업을 이끄는 승부사다. 보스와 참모는 기본적으로 파트너란 의미다. 한스 파울 뷔르크너 BCG(보스턴컨설팅그룹) 회장은 "좋은 참모는 변환기에 진가를 발휘한다"면서 "조직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계를 넓혀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스맨'은 좋은 참모가 될 수 없다는 걸 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연설문 작성을 맡았던 카일 오코너 미국 버지니아대 총장 수석 보좌관은 좋은 연설문에 대해 "80%는 보스가 할 말을 대신 전달해주지만 20%는 (자기 생각을 보태) 더 좋은 연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참모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간명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다. 시마와 뷔르크너, 오코너를 인터뷰하고, 글로벌 기업 참모 열전(列傳)을 통해 보스를 빛내는 참모의 성공 방정식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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