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탱크맨' 사진이 아이콘 된 이유는… 서방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웠기 때문

    • 채승우 사진가
    • 0

    입력 2019.05.10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9> 톈안먼 사태 '탱크맨' 사진

      그날의 참혹한 상황 보여주는 사진들은 이 이미지에 덮여
      경제혼란·부패 등 여러 측면 있는데 민주화로만 해석
      동영상 있는 경우도 보는 사람이 선택한 사진만 아이콘 돼

      채승우 사진가
      채승우 사진가
      곧 중국 톈안먼 사건 30주년이 돌아온다. 톈안먼 사건은 1989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진압에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말한다. 그 와중에 한 장의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소위 '탱크맨'이라고 불리는 사진이다. 오늘은 사진이 '아이콘'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에 비닐봉지를 든 한 남성이 줄지어 전진하는 탱크를 막아섰다.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가들은 여러 명이다. 6월 4일 정오쯤 베이징 호텔의 각 층 발코니에서 약 50명의 서방 기자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공안 당국이 기자들의 호텔 밖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날 새벽 톈안먼광장을 점거했던 시위대가 해산당했고,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자들은 아직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었다. 호텔 발코니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던 여러 명의 사진기자가 이 탱크맨 장면을 찍었고, 방송 카메라가 촬영을 했다.

      현장 기자들은 별로 중시 안해

      이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중 한 명이 스튜어트 프랭클린이다. 그는 다음날 자신이 찍은 필름을 작은 차 상자에 숨겨 프랑스 유학생으로 하여금 파리로 가지고 가게 했다. 이렇게 밀반출된 필름은 매그넘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현상된 후 전 세계의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CNN의 방송 테이프는 홍콩으로 밀반출되어 처음으로 TV 전파를 탔다.

      이 사진은 말 그대로 '아이콘'이 되었다. 스튜어트 프랭클린의 사진은 그해 말 타임지에 양면에 걸쳐 실렸고, 다른 사진기자인 찰리 콜의 사진은 뉴스위크의 연말판에 크게 실렸다. 1992년 영국 가디언지는 한 기사에서 이 사진을 '혁명의 아이콘'이라고 불렀다.

      한데 스튜어트 프랭클린은 자신의 책 '세계, 인간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이 사진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이 사진이 그날의 중국을 제대로 말해주는가 묻는다. 그날 현장에 있던 많은 기자는 이 사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사진보다 그날의 참상을 더 잘 말해주는 사진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한 남성이 전진하는 탱크들을 막아섰다. 이미 이날 새벽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후였다. 이 사진은 말 그대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데, 이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들 중 한 명인 스튜어트 프랭클린은 이 사진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튜어트 프랭클린·매그넘 포토스
      그럼에도 왜 그 사진이 유명해졌을까? 어쩌면 탱크맨 사진은 서방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방에서는 톈안먼 사건을 '민주화 운동'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었는데, 민주화라는 정치적 시각이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는지 의심스럽다. 당시 중국의 개방 정책과 경제 혼란, 그 와중에 드러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시위의 더 큰 이유일 수 있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

      스튜어트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한다. '탱크맨 사진의 계속된 언급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자신들이 잊길 원하는 베이징 학살의 더 가혹했던 현실을 덮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현실은 짓밟힌 학생들과 자전거들, 시체가 높이 쌓인 안치소들, 다양한 시점에 냉혹한 살인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등이었다. (중략) 사진에 아이콘이라는 꼬리표가 주어질 때 그것은 문제의 이미지를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떼어낸다.'

      동영상 보다 사진이 아이콘으로 각인 돼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 왜 동영상이 아닌 사진이 아이콘이 되었을까? 당시의 상황을 보면 더 이상하다. 탱크맨 사진이 처음 배포되었을 때 신문사들은 이 사진을 선택하지 않았다. 신문·잡지들이 이 사진을 크게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TV가 같은 장면의 동영상을 내보낸 후였다. 또 TV가 이 장면을 방송한 나라에서만 이 사진이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나중에 아이콘이 된 것은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왜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일까? 우리가 아이콘으로 기억하는 사진들이 여럿 있는데, 많은 장면에 그것을 찍은 동영상이 함께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석 장의 사진 즉, 사이공 경찰서장의 즉결 처형, 소이탄을 피해 도망치는 발가벗은 아이, 스님의 분신 장면에는 모두 TV 기자들이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 한데 지금 사람들은 그 사진은 모두 기억하지만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대학교 보도사진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몇 학생들이 비슷한 답을 했다. '사진이 동영상보다 더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답은 스튜어트 프랭클린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 사진들은 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것 아니었을까. 사진은 정말 세상을 보여줄까? 사진을 의심해볼 이유가 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