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음악은 공허… 함께 만들고 연주하며 느끼는 경험이 소중"

입력 2019.05.10 03:00

[음악과 디지털] 토드 매코버 MIT 미디어랩 교수

AI는 창작 거들어 과거 데이터 분석해 참신하게 복제할 뿐
음악은 치유의 수단 디지털 기술 발달로 개인별 맞춤 처방도
도시의 소음 모아 도시 교향곡 만들듯 남북한 교향곡 제작
음악은 남북 화합의 메시지 전달에 적합 분단 흔적 담을 생각

MIT 미디어랩 토드 매코버(Machover·66) 교수는 음악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선구자로 통한다. 미국 내에선 '세계에서 가장 연결된(wired) 작곡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가 기획한 '미래의 오페라(Opera of the Future)'는 전통 오페라 양식에 전자 음악과 통신 기술로 재현한 현란한 영상이 뒤섞여 몽환(夢幻)적이고 전위적인 앙상블을 창조했다는 평가다. 그가 최근에 관심을 가진 주제는 '남북한 교향곡(Symphony for the Koreas)'.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한국을 찾아 비무장지대(DMZ)를 비롯한 분단의 흔적을 탐색했다. 이번 남북한 교향곡 프로젝트에는 국내 민간 악단인 린덴바움오케스트라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메코버 교수는 남북한 교향곡을 통해 한반도 분단 현실을 음악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음악과 기술이 만났을 때 새로운 가치의 지평이 열린다”고 말했다.
메코버 교수는 남북한 교향곡을 통해 한반도 분단 현실을 음악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음악과 기술이 만났을 때 새로운 가치의 지평이 열린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매코버에게 남북한 교향곡이 갖는 의미와 음악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1953년 컴퓨터그래픽 공학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줄리아드 음대를 마친 정통 음악가 출신이다. 전공은 첼로였다. 뉴욕타임스로부터 '음악적 선지자'라는 찬사를, 미 존 F 케네디 센터에선 '예술옹호상', 뮤지컬아메리카에서는 '올해의 작곡가상'을 받았다.

남북 도시 소리를 교향곡으로 재연

―남북한 교향곡은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

"아직 구체적인 악상은 잡히지 않았다. 다만 세계 각 도시의 고유 소리를 수집해 교향곡에 융합하는 '도시 교향곡(City Symphony)' 형태가 될 것이다. 예술은 정치적인 장벽을 초월하는 영역이다. 교향곡은 오케스트라가 합주하는 작품인데 '심포니'란 말 자체가 '다양한 음들이 완전히 어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남북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적합한 악곡인 셈이다."

'도시 교향곡'은 매코버가 수년 전부터 진행하는 도시 음악 프로젝트다.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디트로이트, 마이애미, 루체른, 토론토를 주제로 한 작품을 완성한 바 있다. 각 도시에서 분출하는 자동차·지하철 소음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 새소리까지 다양한 음원을 채집해 교향곡 선율에 입히는 과정이다. 이번 방문 기간 중에도 서울에서 이태원·인사동·경복궁 등지를 돌며 서울만의 독특한 소리를 담아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DMZ에서도 그 일대 소리를 녹음했다. 남북한 교향곡 완성을 위해 평양을 찾아 '평양의 소리'도 수집할 방침이다. 그는 "분단뿐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지역과 정치 성향에 따라 갈등이 심한데 음악을 통해 대화의 장을 열어가는 제안도 해보고 싶다"면서 "미국도 정당 간 대립이 심하긴 한데 그래도 대화는 한다"고 덧붙였다.

―AI(인공지능) 시대 음악이 갖는 의미는.

"미디어랩에선 AI를 EI(Extended Intelligence)라고 부른다. 기계는 인간이 수행하는 창작 과정을 거들 순 있지만 스스로 온전한 의미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진 못한다. 그냥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알고리즘을 파악한 다음 빚어내는 약간 참신한 복제물일 뿐이다.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테크 기업들이 AI 작곡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단지 창작자들에게 특허료(로열티)를 안 주려고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계가 생산한 음악은 공허하다. 무엇보다 음악은 그 생산물 자체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을 함께 제작하고 공유하고 연주하면서 느끼는 사회적 경험이 소중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할 때 가치가 있다. 무슨 공장 생산품이 아니다. 음악은 3C, Create(창조), Connect(연결) Collaborate(협업)를 통해 그 궁극적인 가치를 발현한다."

매코버 교수가 동료들과 함께 오페라에 전자음악 기술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코버 교수가 동료들과 함께 오페라에 전자음악 기술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WBUR
컴퓨터 기술로 뇌성마비 환자 작곡 도와

그럼에도 매코버는 어떤 음악가보다도 기술을 음악에 접목하는 데 열심이다. 그는 미디어랩 동료들과 함께 뇌성마비 환자인 댄 엘시가 직접 작곡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통해 돕고 그 작품을 악단과 함께 공연하는 영상을 TED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댄 엘시와 함께한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누구나 음악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댄은 비록 의사소통을 비장애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기술은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컴퓨터를 통해 댄이 원하는 선율과 박자를 선택하고 조합하도록 약간 도와줬더니 나름 멋진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댄에겐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성취다. 음악을 연주할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댄은 그 뒤 1년에 1장씩 자작곡 CD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사실 그가 만든 곡들은 기성 음악처럼 매끄러운 선율이 아니라 다소 불규칙한 화음의 연속으로 들릴 수 있다. 매코버는 이에 대해 "음악이란 결국 마음의 생각을 표출하는 예술"이라면서 "제임스 조이스가 오래전 언급한 대로 소설에 반드시 이야기(narrative)란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음악도 선율(melody)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매코버 작품 활동은 현대음악 거장 존 케이지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그 역시 케이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케이지는 독창적인 작곡자이자 음악이론가, 예술가로서 "소음도 음악"이라고 주장하고, 플라스틱이나 장난감 인형, 항아리나 컵에 물 붓는 소리, 설거지와 도마 소리까지 일상 모든 소리를 음악 소재나 감상 대상으로 삼았다. 1952년 '4분 33초'라는 작품은 케이지의 그런 철학을 웅변했다. 이 곡은 4분 33초간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퇴장하는 게 전부다. 그사이 들리는 관객 웅성거림·기침 소리, 의자·창문·바람 소리까지 모든 상황을 음악으로 변용(變容)할 수 있다는 접근법이다. 이 곡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연주장마다 다른 소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우연성도 내포하고 있다.

뇌성마비 환자 댄 엘시가 MIT 미디어랩과 작곡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
뇌성마비 환자 댄 엘시가 MIT 미디어랩과 작곡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 /댄엘시 홈페이지
기술 발전으로 '맞춤형 치료 음악' 가능

―음악을 인간 정서 안정과 치료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음악 치료(music therapy)는 오래된 방법이다. 특정 음역·주파수에서 인간의 뇌가 더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는 과학자들 연구 결과도 많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음악은 인간 신체를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의술에서 투약이나 수술은 개인마다 다르게 처방한다. 음악도 치유를 위해서 개인 맞춤형으로 얼마든지 개작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마다 서로 취향과 선호가 다른데 하나의 곡이라도 이런 요구에 따라 조금씩 변형할 수 있다. 악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유명 첼로 연주자 요요마(Yo-Yo Ma)와 함께 만든 하이퍼첼로(hypercello)는 첼로와 연주자 손목·팔 등 안에 센서를 달아 맥박과 감정에 따라 첼로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변형한 기기다. 매코버는 "하이퍼 악기(hyper instrument)는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표현과 의미, 방향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정의해 보자는 시도"라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Interview in Depth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