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호텔서 막힌 변기 뚫던 아르바이트생, 호텔업계 황제가 되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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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5.10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5) 힐턴 호텔의 크리스토퍼 나세타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여름방학 때 호텔에서 알바를 하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는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을 했다. 소년은 훗날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둘째로 큰 호텔 그룹의 수장이 된다. 힐턴의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토퍼 나세타(Nassetta) 회장이다.

      몇년 전 그가 새로 개장하는 호텔을 방문해 직원 유니폼을 입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옷이 너무 무겁고 신축성도 없어 불편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얼마 뒤 힐턴은 스포츠 의류 업체 언더아머와 제휴해 편안한 작업복을 만들었다. 힐턴은 2018년 포천이 선정하는,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직장 1위에 올랐는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힐턴은 특히 청소나 주방 직원 같은 말단 직원의 만족도가 경쟁사보다 높게 나타났다. 나세타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잘해줄지 골몰하고 있다"고 말한다.

      쇠락하던 힐턴에 소방수로 등장

      나세타 회장은 힐턴의 소방수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옛 명성을 잃고 쇠락하던 힐턴을 2007년 인수했다. 그리고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이며 호텔을 재건한 경험이 있는 나세타를 영입했다. 어떻게 사모펀드가 인수한 회사가 고성장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종업원에게도 사랑받는 회사가 될 수 있었을까? 단순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고수일수록 잘 정리돼 있고 단순하다. 목표가 뚜렷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힐턴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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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버그
      나세타 회장은 부임 후 90일간 전 세계 힐턴을 돌아다녔는데, 조직을 묶어주는 비전이 없음을 발견했다. 힐턴은 오랜 명성에 기대 자만에 빠졌고, 고객을 위해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결여돼 있었다. 호텔업의 본질이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는 업"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회사 운영은 일선 직원들과 단절된 채 이뤄지고 있었다. 나세타 회장은 고위 간부들이 고객과 직접 교감해야 한다고 생각해 1년에 1주일은 호텔에서 객실 관리나 프런트 같은 일을 직접 해보게 하는 집중 훈련(immersion) 제도를 도입했다.

      [이지훈의 CEO 열전]
      나세타 회장이 직원들에게 힐턴의 핵심 가치에 대해 물었을 때 답은 저마다 달랐다. 직원들의 대답을 다 세어보니 가짓수가 30가지에 이르렀다. 그는 곁가지를 치고 북극성처럼 비전을 뚜렷이 설정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힐턴의 가치를 영어 철자로 압축했다. H(hospitality·환대), I(integrity·성실), L(leadership·리더십), T(teamwork·팀워크), O(ownership·주인의식) N(now·바로 지금)이 그것이다. 이를 모든 직원이 공유하고 어디를 가나 'HILTON' 문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목표의 단순화

      나세타 회장은 이런 가치관의 바탕 위에 목표의 단순화를 추구했다. 그는 힐턴의 턴어라운드(구조조정) 전략을 두 가지로 단순화했다. 첫째, 세계시장 개척이다. 힐턴은 강력한 브랜드와 시스템을 갖고 있음에도 해외 확장은 부진한 편이었다. 둘째, 업(業)의 재정의이다. 호텔업은 과거와 달리 호텔 소유와 분리되는 추세이다. 소유는 하지 않되, 브랜드와 백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프랜차이즈나 위탁경영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힐턴의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나세타 회장은 보았다. 첫째와 둘째 전략은 연결돼 있다. 해외에서 프랜차이즈·위탁경영 방식으로 확장하면 힐턴의 높은 인지도를 이용하면서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세타 회장은 1년에 3분의 2 이상을 여행하는데 그 대부분이 해외일 정도로 시장 개척에 힘을 쏟았다. 중산층과 출장객들을 잡기 위해 중저가 브랜드인 힐턴가든인이나 햄프턴인으로 공략했다.

      그 결과 부임 초기에는 계획 중인 호텔 중 해외 비중이 19%이던 것이 2014년엔 60%로 커졌다. 또 2019년 2월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호텔 객실의 20%가 힐턴 관련이라고 힐턴 측이 투자자 설명회에서 밝혔다. 기존 호텔 객실 중 힐턴 비중이 5% 정도임을 감안하면, 확장세가 뚜렷하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성장세가 가팔라 진행 중인 호텔의 30%를 차지한다.

      제품과 서비스의 단순화

      [이지훈의 CEO 열전]
      이번에는 제품과 서비스의 단순화이다. 요즘 힐턴은 기술을 호텔 경영에 발 빠르게 활용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스마트폰으로 객실 문을 여는 디지털 키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 전체 호텔의 72%에서 이용 가능하다. 나아가 스마트폰을 리모컨처럼 사용해 조명을 켜고 온도를 조절하고 TV 채널을 돌릴 수 있는 '커넥티드룸' 기능을 올해 말까지 300개 호텔에 도입할 예정이다. 힐턴이 신기술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고객 경험을 단순하고 즐겁게 만드는가?'에 있다고 기술 담당 임원이 말했다.

      나세타 회장 부임 전 힐턴의 회원 제도인 '힐턴 아너스 프로그램'은 마일리지를 쌓기는 쉬워도 쓰기는 어려운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처럼 온갖 제한 규정으로 가득했다. 나세타 회장은 과감히 제한 규정들을 풀어 고객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했다. 힐턴 아너스 회원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3600만명에서 8500만명으로 급신장했다.

      나세타 회장은 직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한 직원 수행 항목을 3000개에서 300여 개로 줄이고, 본사를 땅값 비싼 미국 LA 베벌리 힐스에서 버지니아주로 옮기는 등 운영의 단순화도 추구했다.

      채권자 설득해 금융위기 넘겨

      나세타 회장이 부임하고 얼마 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블랙스톤의 힐턴 인수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거래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나세타 회장의 최대 난제는 205억달러에 달하는 채무였다. 금융위기로 매출액이 20%, 이익이 40% 가까이 추락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는 채권자와 블랙스톤을 설득해 채무를 연장하고 블랙스톤의 추가 출자를 이끌어낸다. 위기를 넘긴 힐턴은 나세타 회장의 단순화 경영에 힘입어 성장 궤도에 올라타게 된다.

      블랙스톤은 증시에 재상장된 힐턴 주식을 2018년까지 모두 팔아 큰 투자 수익을 거두었다. 실적 향상과 투자자들의 신뢰에 힘입어 힐턴은 종업원 복지에 투자할 수 있었다. 나세타 회장은 블랙스톤이 떠난 뒤에도 계속 CEO를 맡을 수 있었으니 모두 윈윈이었던 셈이다.

      나세타 회장은 리더십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래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앞으로 나가게 동기 부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조직이 방향을 잃고 있다고 느끼는가? 고객과 괴리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단순화하라. 목표를 단순화하고, 제품을 단순화하고, 운영을 단순화하고, 조직을 단순화하라. 나세타 회장이 전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