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세계은행서 돈 빌려와 개도국에 마구 빌려준 中 때문에 세계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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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26 03:00

      데이비드 맬패스 신임 세계은행 총재

      "중국 때문에 빚쟁이 국가가 속출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미·중 대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무대는 세계은행, 주연은 데이비드 맬패스(63) 신임 세계은행 총재다. 맬패스 신임 총재는 이달 12일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중국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취임한 지 이틀 만에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이유 삼아 저개발국에 막대한 빚과 질 낮은 사업을 떠안겼다"고 말했다.

      맬패스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중(對中) 매파' 정치인이다. 그동안 외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를 심사하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이끌며 중국 자본에 대한 방어책을 강화해왔다. 미·중 무역 분쟁 협상팀에 합류해 강경파로서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표적인 대중 비둘기파로 꼽히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수시로 갈등을 겪었다.

      세계은행 총재 지명권은 사실상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세계은행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한 미국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 세계은행 총재로 맬패스가 아닌 친딸 이방카 트럼프를 지명하고자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미국 시사 주간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숫자에 능한 큰딸 이방카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맬패스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금고지기이자 재무부 1인자인 므누신 재무장관과 각을 세우는 상태에서, 대통령 딸을 대신해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 오르게 된 셈이다.

      데이비드 맬패스(Malpass·63) 프로필
      세계은행의 중국 대출 조이기

      다소 부담스러운 시험대에 오른 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돈줄을 죄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돈을 빌리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일대 저개발 국가에 경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지난해에는 '약탈적 경제활동'이라는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해 중국을 비난했다. 올해 1월 갑작스럽게 사임한 김용 전 총재는 중국에 대한 대출 구조를 바꾸라는 백악관의 압력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다 결국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은행과 중국의 인연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은행이 중국에 처음 차관을 제공한 것은 1981년. 금액은 2억달러였다. 중국인들이 1년을 일해도 미국 주급만도 못한 197달러를 받던 시절, 세계은행의 2억달러 차관은 중국에 철로를 놓고 항구를 여는 데 쓰였다. 그 사이 중국 연평균 국민소득은 2017년 기준 1인당 8827달러로 1981년과 비교해 45배가 늘었다

      그러나 세계은행 안에서 중국은 여전히 막대한 빚을 진 채무 국가다. 인도에 이어 세계은행에서 둘째로 많은 돈을 빌려간다. 반대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출을 해준 기세등등한 채권자 입장이다. 정부와 상업 대출을 합해 2006~2017년까지 10년 동안 줄잡아 1320억달러를 외국에 빌려준 것으로 집계된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부터 아시아의 파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까지 전 세계 개발도상국가들 가운데 중국에서 돈을 빌리지 않은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히 전체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부에서 빌린 돈의 약 20%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 세계은행 대출금
      "아프리카 17개국 이미 빚더미"

      맬패스는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에 오른 중국이 저개발국에 돌아가야 할 세계은행의 저금리 융자를 계속 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취임 이전부터 꾸준히 밝혔다. 맬패스 취임 이후 세계은행이 앞으로 중국의 막대한 융자 차입에 본격적인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는 "아프리카 17개국이 이미 (중국 사업과 관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면서 "새 계약들이 체결되면서 그 숫자는 늘고 있으며, 이 계약은 투명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이 나서 중국에 대한 돈줄을 죄는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세계은행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이 빈곤 구제와 전후 복구를 위해 힘을 모아 세운 기관이다. 설립 목적 자체가 제재보다 공존에 가깝다. 중국이 전체적인 경제 규모로 보면 미국 바로 뒤까지 쫓아왔지만, 아직 1인당 생산량은 미국 대비 6분의 1 수준이고 실질 구매력은 미국의 3분의 1 정도다. 자칫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중국이 아직 개도국인데 미국이 국제금융기구에서 권력을 이용해 정치적 보복을 저지른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세계은행 개발 자금을 용도에 맞게 집행하지 않고 다른 저개발 국가에 유용했거나, 용도에 맞지 않게 불필요하게 썼다는 구체적인 증거 역시 밝혀진 바가 없다.

      중국이 대출 전용했다는 증거는 없어

      맬패스 총재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과 영국, 일본 같은 다른 세계은행 주요 회원국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 '반(反)일대일로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빚을 안긴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

      다만 국제사회가 맬패스의 리더십과 경제 조타수로서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맬패스가 일했던 베어스턴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파산했는데, 그는 파산 7개월 전인 2007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경제 전망 기사에서 "미국 경제는 튼튼하며 앞으로 몇 달, 어쩌면 몇 년 안에 더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맬패스는 경제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맬패스 임명이 세계은행의 지적 수준과 도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라"고 맹공했다.

      우방국 협조 필요…리더십 능력은 논란

      세계은행 내부에서도 전임 총재의 사임과 맞물려 맬패스 취임에 대한 찬반 여론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 다자주의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던 그가 자본금 2200억달러, 회원국 189개의 거대 국제기구 수장직에 과연 적합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한사코 가입을 거부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2015년 이후 다수 유럽 국가들이 참여한 데에서 보듯, 개발금융의 중심축이 중국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며 "인기 없는 총재가 이끄는 차기 세계은행이 회원국들 사이에서 현재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매우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