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팔던 中 17세 소년'에 나이키·아디다스가 떨고있다

입력 2019.04.26 03:00

[오광진의 대륙종횡] (8) 중국 스포츠용품업체 '안타'의 딩스중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미국 구기용품 업체 윌슨과 오스트리아 스키 브랜드 아토믹, 캐나다 아웃도어 아크테릭스가 중국 품으로 넘어갔다. 중국 스포츠용품 업체 안타스포츠(安踏体育)는 지난달 이 브랜드들을 보유한 핀란드 아메르스포츠를 56억유로(약 7조1960억원)에 인수하는 거래가 각국 정부 승인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아메르스포츠는 지난 11일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厦門) 안타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안타 창업자인 딩스중(丁世忠) 현 최고경영자(CEO)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28년 전 자본금 50만위안(약 8500만원)으로 시작, 중국 최대 스포츠용품 업체로 성장한 안타는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본격 겨냥할 수 있는 자리로 올라섰다. 69년 역사를 가진 아메르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은 세계 3위 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난 것이다. 안타를 이끄는 딩스중 CEO는 "중국의 나이키가 아닌 세계의 안타가 되자"는 구호를 강조한다.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에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때문에 우리가 잠을 자지 못했지만 이젠 우리 때문에 그들이 잠을 못 이룰 것"이라고 장담한다. 사무실 책꽂이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 도그(Shoe Dog)'와 손자병법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현재 안타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44.4% 늘어난 241억위안(약 4조원)으로 2007년 홍콩 증시 상장 이후 최대 폭으로 성장했다. 상장 이후 11년 동안 매출과 순이익 모두 각각 7배 이상 늘었다. 시총도 작년 1월 1000억홍콩달러(약 14조5000억원)를 넘어서며 규모로는 나이키·아디다스 다음이다. 비(非)직영점을 포함한 1만2000개 점포 기준 매출로는 지난해 400억위안(약 6조8000억원)에 달해 이미 세계 3위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기도 하다. 브랜드 가치도 나날이 성장하면서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최근 발표한 '2019 의류 브랜드 50강'에 따르면 스포츠 의류업계에선 나이키와 아디다스 다음으로 셋째에 자리 잡았다.

신발 OEM 마을서 독자 브랜드 창업

안타는 '신발 마을'로 유명한 푸젠성 진장(晋江)시 천다이(陳埭)진(鎭)에서 설립됐다. 딩스중 아버지도 1981년부터 신발을 만들었다. 천다이진은 지방정부 육성정책에 힘입어 1995년 신발 기업이 1500여 개에 이를 만큼 신발 마을로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대부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었다. 딩스중은 17세 되던 1987년 베이징에 진출해야 승산이 있다고 믿고 아버지에게 1만위안과 신발 600켤레를 받아 무작정 상경했다. 그는 같은 공장에서 만든 신발이 브랜드를 달았다는 이유로 20위안(약 3400원) 더 비싸게 팔리는 걸 보고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버지와 형을 설득해 1991년 안타를 창업한 배경이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 여파로 천다이진 신발 마을 공장들이 잇따라 도산할 때 안타가 살아남은 건 이런 독자 브랜드와 유통망을 일찍부터 개척했기 때문이다.

딩스중은 1999년 한 해 이익이 수백만위안에 그치던 때 1000만위안(약 17억원)을 광고비에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관영 CCTV에 제품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 서구 업체들에선 보편적이었지만 당시 중국 업체로선 파격적인 행보였다. NBA 스타까지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과감한 투자도 뒤따랐다. 브랜드 지명도가 올라가자 도매 영업 위주에서 2001년부터 직영점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수정했다. 소매를 해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딩스중 CEO는 창업 초기엔 장인 정신으로 제품을 잘 만드는 데 주력했지만 일정 수준에 이른 다음엔 소비자 지향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좋은 신발을 만드는 데는 빠르면 1~2년이면 될 수도 있지만,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건 20~50년까지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란 얘기다.

안타 개요
운동과학실험실에 스마트 매장도 세워

지난해 미 샌프란시스코 안타 매장에선 안타의 한정판 농구화를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안타가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스타 선수 클레이 톰슨 이름을 딴 160달러(약 18만원)짜리 특별 제품을 만든 것. 이 제품이 화제를 불러온 것이다. 지난달 딩스중은 "인터넷에선 이미 5000위안(약 85만원)으로 가격이 올랐다"면서 "중국 브랜드는 저가라고 생각하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전했다.

안타는 중국 저가 제품이란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제품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중국 스포츠용품 업계에선 처음으로 국가급 운동과학실험실을 설립하고 매출의 5% 이상을 연구비로 쓰고 있다. 중국을 포함해 서울, 이탈리아 밀라노, 일본 도쿄, 미국 LA 등지에 글로벌 디자인연구센터도 세웠다. 18개 국가 디자인 전문가 200여 명을 영입하기도 했다. '스마트 매장'도 혁신의 기반이다. 고객이 많이 집어든 횟수와 실제 구매한 횟수를 비교해, 디자인은 좋은데 편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지 등을 추적한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당시엔 회사 규모가 작아 중국 대표단을 후원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 기억을 도약대 삼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협찬사로 기어코 이름을 올렸다. 관련 협찬 자금은 50억위안(약 8500억원)에 이른다. 딩스중은 "많은 중국 기업이 이익을 내지만 반드시 존중받지는 않는다"며 "존중받는 회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타는 지난해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농구화를 판매해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같은 종류의 농구화를 팔고 있는 중국 광저우 매장.
안타는 지난해 미국에서 한정판으로 농구화를 판매해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같은 종류의 농구화를 팔고 있는 중국 광저우 매장. / 안타
대리점에 지분 투자해 동반 성장

안타는 단일 브랜드가 아닌 다(多)브랜드 전략을 펴고 있다. 2009년 바이리(百麗)그룹으로부터 휠라의 중국 상표 사용권과 경영권을 인수한 게 대표적. 2012년 딩스중은 "10년 내에 휠라 점포 500개, 매 점포당 연간 500만위안(약 8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총매출을 25억위안(약 4250억원)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주위에선 "어림없다"고 폄하했지만 지난해 휠라 중국 매출은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중국 중소 도시 격인 3~4선급 도시 공략에 주력하던 안타는 휠라를 통해 1~2선급 대도시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시작했다. 2015년 영국 스프란디, 2016년 일본 데상트, 2017년 한국 코오롱 등과 손을 잡고 본격적인 다브랜드 회사로 진격했다. 고급화만 지향하는 건 아니다. 명품 백화점에서부터 현(縣)급 이상 도시 매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채널로 다양한 브랜드를 공급한다. 고객 스펙트럼이 넓은 셈이다.

대리상(대리점)과 동반 성장한다는 전략도 이색적이다. 대리상에 공동 지분을 투자하고 대리상 직원 교육 등을 통해 '한 가족 경영'을 유도하고 있다. 안타는 아메르 인수로 해외 시장뿐 아니라 중국 시장을 더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메르는 각 분야에서 매우 전문적인 브랜드를 소유해 세계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중국에서 매출 규모는 매우 작다"면서 '세계를 사고, 지역을 창조하라(Buy global, Create local)'고 강조한다. 핵심은 현지화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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