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끝없는 혁신으로 신제품 내고, '비싸야 좋다'는 고정관념 깬 기업은 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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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26 03:00

      [Cover Story] 일본 잃어버린 30년… 진 별 5, 뜬 별 5

      '헤이세이 30년 불황' 도약한 기업 5

      '헤이세이 30년 불황'은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 위기였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는 기회로 다가왔다. 소매업체 니토리, 의류업체 유니클로(패스트리테일링), IT 기업으로 출발한 소프트뱅크, 게임업체 닌텐도는 이 기회를 잡았다. 2018년 7월 말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일본 경영자 순위를 매기면 1위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2조1410억엔), 2위는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1조3795억엔)이 차지했다. 이어 5위는 니토리 아키오 니토리 회장(4083억엔), 7위는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3168억엔)이 뒤를 이었다. 모두 1989년 순위에는 없던 기업과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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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과 2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은 ‘헤이세이 불황’을 돌파한 대표적인 일본 경영인으로 꼽힌다. 3은 부침 속에서도 위기 때마다 히트 상품을 내놓은 닌텐도의 대표 캐릭터인 슈퍼 마리오. /블룸버그
      ①니토리: 모든 공정 직접 한다

      가구·생활잡화 기업 니토리는 32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일본 기업사에서 보기 드문 기록이다. 니토리의 성공은 니토리의 창업자인 니토리 아키오 회장이 이뤄낸 집념의 결과였다. 1967년 니토리가구점으로 출발한 니토리는 1986년 가구에서 홈퍼니싱(가구·잡화)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니토리는 제조·물류·소매 모든 부문을 자사 내부에서 소화하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토털 패키지(모든 기능을 갖춘)' 기업으로 도약했다.

      니토리 회장은 "사업에 필요한 모든 공정은 우리가 직접 한다"는 확고한 경영 원칙을 갖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영 방식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수입도 대형 상사 대신 무역 자회사를 설립했다. 제조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다. 신상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가격 파괴라는 목표로 자체 생산을 고집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구성하는 코일도 니토리는 모두 자체 제작한다. 철사를 대량으로 구매해 직접 구부려 만든 코일에 하나하나 천을 씌워 만든다. 비용이 높아 다른 가구업체에서는 꺼리는 방식이다. 자체 생산으로 원가를 줄이는 대신 더 좋은 상품을 시장에 최대한 투입하자는 니토리 회장의 신념 때문이다.

      공격적인 점포망 확대도 한몫했다. 1988년 16곳에 지나지 않던 점포 수도 2018년 현재 523곳(일본 내 505곳)에 이른다. 니토리는 기능성 상품에 특화하며 상품 단가를 높였다. 더운 여름철을 겨냥한 침구 'N쿨'과 꽃가루를 흡착하는 커튼 등이 대표적이다.

      ②유니클로: 싸고 가벼운 혁신 의류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의 사업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세계 1위. 1980년대 일본 패션 시장은 '비싼 옷이 좋은 옷'이라는 트렌드가 만연해 있었다. 유니클로는 이러한 패션 조류에 과감히 도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스스로 진화를 거듭했다. 일본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1980년대에 유럽과 미국의 패션시장을 둘러본 야나이 회장은 "일본의 옷은 비싸다"라는 생각에서 유니클로의 힌트를 얻었다.

      유니클로는 헤이세이 시대 일본인의 패션 문화를 송두리째 바꿨다. 어패럴 업계의 오랜 관행에 도전한 유니클로는 1994년 부드러운 소재의 재킷인 플리스, 2003년 얇은 내의 히트텍, 2009년 보온성이 뛰어난 깃털처럼 가벼운 다운재킷 등 수많은 기능성 의류를 대중화했다.

      1990엔짜리 플리스는 출시 7년 만에 누적 판매 2600만벌을 기록하며 남녀노소 즐겨 입는 '국민 교복'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히트텍은 10억 벌을 넘어선 대히트 상품이 됐다. 저렴하면서도 가볍고 따뜻한 초경량 다운재킷은 경쟁 업체들이 유사 상품을 쏟아냈다. 유니클로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1989년 1인당 옷의 평균 총무게가 2.5kg이었는데 2018년에는 이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1.2kg이었다.

      유니클로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규모의 경제' 이점도 누렸다. 백화점 의류 브랜드의 이익률은 비싼 임차료 탓에 1~2%로 매우 낮지만 유니클로는 다양한 점포망 덕분에 임차료를 전체 비용의 평균 5% 수준으로 낮췄다.

      ③닌텐도: 경쟁사와도 적극 제휴

      닌텐도는 1989년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출시하며 세계 게임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90년대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등 경쟁사에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나날도 적지 않았다. 닌텐도는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를 등장시켰다. 2006년에 내놓은 게임기 위(Wii)는 리모컨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운동게임으로 게임과 담을 쌓았던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들이며 누적 판매 대수가 1억 대에 달했다. 위 발매 이후 주춤했던 닌텐도는 최근 '닌텐도스위치' 발매 이후 다시 비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41% 늘어난 2200억엔을 기록했다.

      닌텐도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타사와의 제휴를 마다하지 않는다. 2007년 발매한 건강관리 게임 위핏(WiiFit)이 대표적인 예다. 보드에 올라 게임 소프트에 맞춰 트레이닝하는 이 게임은 전기 부품업체인 미네베어의 고성능 센서 기술을 제공받았다. 스마트폰용 확장 현실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인 포켓몬고(Pokemon Go)는 캐릭터 회사인 포켓몬과 미국 나이언틱과의 공동 개발로 탄생했다.

      탄탄한 재무 체질을 중시하는 'BS경영'도 한몫했다. 보통 자기자본비율이 40% 이상이면 건실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데, 닌텐도는 변제 의무가 없는 자기자본비율이 85.2%(1조2509억엔)에 달한다. 보통 일본 기업들은 손익계산서를 중시하는데, 닌텐도는 풍부한 현금과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재무상태표를 중시했다.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해에도 매해 500억엔의 연구개발비는 줄이지 않았다.

      ④소프트뱅크: 과감한 글로벌 투자

      손정의 사장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가장 '핫한' 경영자다. 1990년대 그의 주특기는 '타임머신 경영법'으로 불렸다. 미국에서 성공했거나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을 일본에 들여와 장점은 흡수하고 손정의식 경영을 더했다. 1994년 미국 IT 미디어기업 지프 데이비스(Ziff Davis), 포털기업 야후 등 IT 혁명의 황금기를 이끌던 미국 기업에 M&A(인수·합병)와 투자를 이어갔다. 1996년 미국야후와 일본에 공동 합작회사를 설립해 일본 내 인터넷 검색 부흥시대를 열었다. 2013년 미국 4위 휴대전화업체인 스프린트(Sprint)를 인수해 모바일 부문을 키웠다.

      2000년대 소프트뱅크는 기간사업인 통신 부문을 강화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ADSL(전화선을 이용한 데이터통신)을 활용한 인터넷 통신회사 야후BB를 설립했는데 당시 야후BB가 내세운 월정액 요금 2280엔은 기존 요금의 100분의 1 수준이었다. 이후 손정의 회장은 통신 부문의 '적자 3형제(일본텔레콤·보다폰·윌컴)'를 모두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손 회장은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 계열 펀드 출자를 묶어 10조엔 규모의 비전펀드를 설립했다. 미국 차량공유기업인 우버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중국의 알리바바와 디디추싱 등 성장 전망이 높은 기업에 족집게식 투자를 이어갔다. 지난해 12월에는 소프트뱅크의 핵심 자회사인 휴대전화사업을 떼어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만 2조6000억엔. 경제 호황기였던 1987년 일본 1위 통신회사인 NTT도코모의 2조3341억엔을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투자할 곳은 널렸다"고 말한다.

      ⑤라쿠텐: 인터넷 안에 각종 서비스 집결

      1997년 설립된 라쿠텐은 헤이세이 시대에 설립된 기업 중 최초로 매출 1조엔을 달성했다. 라쿠텐 이전의 일본 인터넷 포털 강자는 야후재팬이었는데 라쿠텐이 등장하며 양자 구도를 형성했다.

      은행원이었던 라쿠텐 창업자 겸 회장인 미키타니 히로시는 1997년 5월 인터넷상에 다양한 점포를 모은 쇼핑몰 '라쿠텐이치바' 운영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0년에는 M&A를 통해 여행과 서적, 티켓 판매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2010년 전후에는 보험·카드·은행 등 금융 서비스와 해외 진출에 힘을 쏟았다. 인터넷 공간에 쇼핑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 고객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구매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연계 소비를 노렸다.

      미키타니 회장은 이를 '라쿠텐 경제권'이라고 부른다. 단순한 상품 판매에 머물렀다면 치열한 경쟁 속에 레드오션에 잠식될 거라는 경영적 감각과 확신 때문이었다. 1997년 5월 13개 점포로 시작한 라쿠텐 시장의 출점 점포 수는 현재 4만5000곳을 넘어섰다. 라쿠텐의 일본 내 전자상거래 유통 총액은 3조4000억엔, 라쿠텐 카드의 취급액은 7조5000억엔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