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무어인 '오텔로'는 왜 아내를 죽일 때 초승달 모양의 신월도를 들고갔나

    •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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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26 03:00

      CEO 오페라 (13) 베르디의 '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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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서 공연한 오페라 ‘오텔로’. 당시 원작자인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지휘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맡았다. /풍월당
      제목부터 의문이 생긴다. '오셀로'가 맞는가, 아니면 '오텔로'가 맞는가? 오셀로(Othello)라고 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말하는 것이고, 오텔로(Otello)는 오페라를 지칭한다. 희곡과 오페라의 차이면서 또한 영어와 이탈리아어의 차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유명한 희곡 오셀로는 300년이 흘러서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에 의해 오페라 오텔로로 다시 태어났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오페라를 위한 좋은 원작을 찾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는데, 특히 좋아한 작가는 셰익스피어였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두 비극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멕베스'와 '오텔로'다. 그런데 멕베스는 1847년에, 오텔로는 1887년에 각각 초연됐다. 두 작품의 간극은 무려 40년이다. 멕베스가 34세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오텔로는 74세 때의 가장 원숙한 작품이다.

      측근 간계에 말려 아내 살해

      베르디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작곡을 멀리하며 오랫동안 시골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창작의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은 젊은 작가 아리고 보이토(1842~1918)였다. 보이토는 이탈리아인이지만 독일의 바그너에게 매료되었으며 바그너식 오페라 개혁을 지지하였다. 그는 독일에 가서 바그너를 연구하고, '이탈리아의 바그너'가 되려는 열망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보이토는 '메피스토펠레'를 발표하였지만 반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보이토의 작곡보다는 대본을 쓰는 재능을 더 높이 산 출판사 사장 리코르디는 베르디에게 오텔로의 대본가로 그를 천거했다. 보이토는 베르디의 인품에 매료되었고 그의 창작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쏟았다. 자녀가 없었던 베르디 역시 보이토를 아들처럼 여겼다. 이렇게 젊은 작가의 참신함과 완숙한 대가의 노련미가 어우러져 오텔로가 탄생하였다.

      오텔로는 이탈리아 오페라로서는 대단히 개혁적인 작품으로서 바그너가 이룩한 오페라의 혁명적 요소들이 담겨있다.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올라간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노대가의 열정적인 작품에 열광하였다. 이 작품은 바로 세계 오페라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가 됐다. 비평가들은 "바그너의 오페라 개혁에 대한 이탈리아의 화답"이라고 평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베르디는 노익장을 발휘하여 80세에 보이토와 함께 최고의 희극 '팔스타프'를 완성하게 된다.

      중세 베네치아의 해군 제독이자 키프로스 총독인 오텔로가 젊은 아내인 데스데모나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하여 그녀를 살해하는 이야기다. 이 오해는 오텔로의 부하인 이아고의 획책으로 인한 것이다. 즉 오텔로는 자신이 가진 성격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이아고에게 놀아나고 결국 순결한 아내를 의심하다가 죽인다는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오텔로를 유색인인 무어인으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원제도 '오텔로, 베네치아의 무어인'이다. 즉 오텔로가 아내를 죽이기까지는 그의 성격이 중요한 요인으로 표현된다. 무어인인 오텔로는 최고의 문명 사회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명문가의 딸을 아내로 얻고, 해군의 제독이 되며, 막강한 지위였던 키프로스 총독까지 올랐다. 이런 그를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인물로 만들며 그의 열등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화려한 출세 뒷면엔 나약한 인간성이

      마지막 장면에서 오텔로가 아내를 죽이러 방으로 들어올 때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칼인 신월도(新月刀)를 들고 들어온다. 이것은 그가 유럽 사회에서 성공하였고 기독교로 개종하였지만, 결국 바탕은 무어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시에는 받아들였을지 모르나,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인종차별적인 요소다. 의심 많고 측근의 말에 잘 넘어가고 저돌적이고 충동적인 오텔로의 성격이 모두 무어인의 속성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작이 가진 의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보편성에 있다. 스탕달이 말했듯이 문학은 우리의 거울이며, 명작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텔로의 비극의 원인을 피부색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위대한 명작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구미의 오페라극장에서는 더 이상 오텔로의 얼굴에 검은 칠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성격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결함이며, 그의 행동은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행할 수 있는 안타까운 실수다.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된 것이 한 인간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배운다. 이것이 비극의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