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성공에 안주해 파벌주의에 빠지고 복지부동한 회사는 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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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26 03:00

      [Cover Story] 일본 잃어버린 30년… 진 별 5, 뜬 별 5

      '헤이세이 30년 불황' 추락한 기업 5

      2차 대전 이후 40년 넘도록 불패(不敗) 신화를 일군 일본 경제는 헤이세이 30년 내내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일본에서는 1990~1995년 주식·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1000조엔이 증발했다. 2년치 일본 국민총생산(GNP)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쇼와(昭和) 시대를 수놓았던 샤프와 엘피다는 도산했다. 소니와 도시바, 닛산은 살아남았지만 구조조정을 거친 탓에 몸집이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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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나카 히사오 도시바 사장 2 가와사키 히로야 고베제강 회장 3 시게하라 다카타 다카타 사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블룸버그
      ①샤프: 과거 영화에 안주

      샤프는 '긴급개발 프로젝트'라는 독창적인 기업 문화가 자랑이었다. 개발팀이 내놓은 시제품에서 대박 가능성이 보이면 부서를 초월한 사내 전문가를 불러모아 사장 직속 특별팀을 꾸린 후 특별 예산을 투입해 신속하게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는 구조였다. 일본 최초 전자레인지, 세계 최초 액정 전자계산기, 세계 최초 탁상용 전자계산기 등이 성장의 발판이었다. 여기에 컬러 TV(1960년)에 이어 세계 최초 LCD TV(1987년)를 선보이며 고속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호황이 길어지자 샤프는 성공에 안주했다. TV 시장에서 삼성·LG가 맹렬히 추격하는 동안, TV 이후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일본 1위'라는 명맥은 유지했으나, 이마저도 일본 정부의 판매 보조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기술력을 과신한 나머지 세계적으로 TV 기술 트렌드가 뒤바뀐 와중에도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2012년 TV와 LCD 시장의 침체가 닥치자 일본 정부는 '규모의 경제'를 목표로 도시바, 히타치, 소니의 LCD 사업부를 묶어 '재팬디스플레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샤프는 여기 합류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혼자서도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 해 샤프는 6조원이 넘는 순손실이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러 차례 이러한 판단 착오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결국 2016년 아이폰 하도급업체인 폭스콘에 넘어가는 수모를 겪게 됐다.

      ②도시바: 사내 파벌 간 갈등 격화

      "파벌주의와 불필요한 회장 숭배에 빠진 경영진, 쓸데없이 완고한 상명하복 문화와 지시가 없으면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 직원들." 일본 경제전문지 동양경제는 위기에 빠진 일본 기업 도시바의 사내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도시바는 1939년 시바우라 제작소와 일본 최초로 백열전구를 생산한 하쿠네쓰사, 도쿄전기가 연합해 만든 80년 역사의 회사다. 1985년 세계 최초로 휴대용 컴퓨터를 개발할 정도로 빼어난 기술력을 자랑했고, 이를 토대로 반도체와 인프라, 군수산업에까지 진출했다.

      문제는 사업 확장에서 생긴 파벌 싸움이었다. 대표적으로 인프라 사업군은 순환 주기가 짧은 반도체·가전 부문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인프라계'와 '가전계'로 파벌이 나뉘어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각 파벌이 돌아가면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2008년 진출한 원자력 사업은 도시바 몰락의 도화선이었다. 도시바는 당시 아베 정부가 추진하던 '원자력 르네상스' 정책에 발맞춰 미국 원전 설계업체 웨스팅하우스를 시장 예상가의 2배에 달하는 50억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도시바의 전(前) 사장·회장 출신으로 구성된 파벌이 경영진을 종용해 의사 결정을 주도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사업 부문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런데도 '2017년이 되면 매출 1조엔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영진이 주장하는 바람에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전근대적인 파벌 싸움을 근절하지 못한 대가는 참혹했다. 2015년 손실을 메우려 회계 부정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이 발각됐다. 원자력 사업 진출 실패의 여파로 알짜배기였던 반도체 사업부는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국 ·미국·일본 연합 컨소시엄에 팔렸다. 도시바는 지금도 부정 회계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③다카타: 위기관리 부실

      '8년간 20명 사망·200여명 부상.' 품질 관리에 실패한 기술자와 위기 관리에 무심한 경영진이 만난 결과는 비참하다. 2017년 일본이 자랑하던 세계 2위 에어백 업체 다카타는 '죽음의 에어백' 논란 끝에 파산을 신청하고 중국 기업에 헐값으로 팔렸다. 부채 총액은 약 17조원. 일본 제조업체 가운데 최대 규모 파산이라는 불명예까지 씌워졌다.

      1933년 문을 연 다카타는 세계 20개국에 56개 공장을 운영하며 에어백과 안전벨트 등 자동차 안전용품에서 세계시장의 20%를 점유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파산 직전이었던 2016년에는 매출 6600억엔을 기록했고, 종업원은 4만6000명에 달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

      다카타에 몰락의 신호탄이 터진 것은 2014년. 에어백이 펴질 때 부품 일부가 파손되면서 금속 파편이 운전자와 승객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이 있는 제품을 알고도 팔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운전자를 사지에 몰아놓고 모른 체했다'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 조사에 따르면 다카타는 2000년 무렵 결함을 알았지만, 10년이 넘도록 리콜에 나서지 않고 제품을 계속 팔았다.

      다카타는 2015년에야 미국 전역에서 리콜을 실시했지만, 이미 사태는 손 쓰기 어려운 시점으로 진입한 이후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다카타 몰락의 싹이 2007년부터 자라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창업자 3대인 다카타 시게히사(重久) 회장 겸 사장이 매출 신장과 주가 올리기에만 몰두했다는 것. 주식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만한 대책은 사내에서 아예 언급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④엘피다: 합병 이후 융합 실패

      엘피다는 2000년 당시 세계 5위 반도체 업체인 일본 NEC와 7위 업체인 히타치가 힘을 합쳐 세운 'D램 연합군'이다. 1980년대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은 1990년대 들어 삼성전자 등 한국·대만 기업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도시바 등 다른 회사들이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일본 D램 반도체 제조업체는 2000년에는 엘피다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엘피다는 희망했던 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엘피다가 설립될 당시 NEC와 히타치를 합쳐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16%였다. 그러나 바로 1년 뒤 8%로 반 토막 났고 이듬해 다시 4%로 재차 반이 줄었다. 반도체 업체마다 표준 제조 기술 등에 차이가 커 인위적인 합병이 시너지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NEC와 히타치 두 회사 기술자들은 합병 이후에도 같은 뜻을 가지고 힘을 합치기보다 자신의 장기를 내세우기 바빴다. 1980년대 D램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자리를 여러 해 차지했던 NEC 출신 기술자들과 미세가공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히타치의 기술자들은 개발 현장 곳곳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며 혼란과 마찰이 발생했다. 2인 3각을 해도 모자랄 마당에 서로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한 셈이다. 2011년 25나노 D램 제품을 삼성전자보다 앞서 개발했지만, 양산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등 여러 내부 갈등 요인으로 인해 역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⑤고베제강: 품질 증명서 조작

      150년을 쌓은 신뢰도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2017년 벌어진 고베제강(神戸製鋼) 알루미늄·구리 품질 조작 파문은 1868년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차곡차곡 쌓인 '메이드 인 재팬'에 대한 믿음이 헤이세이 시대 말미에 이르러 뿌리부터 뒤집힌 대표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고베제강은 일본에 3곳뿐인 용광로 사업자다. 1905년에 설립하고 1911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해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가 청년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직장이기도 하다.

      고베제강은 2017년 10월 8일 돌연 자사 주력 제품인 알루미늄과 구리의 강도·규격·연성 등에 관한 품질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발표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2016년 9월부터 1년 동안 4개 공장에서 출하한 제품 약 4만t이 품질 기준에 못 미쳤음에도 검사증명서를 조작해 팔았다는 것. 현장 직원과 임원 모두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이렇게 팔린 알루미늄과 구리는 도요타 자동차의 본넷,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 차량 등 시민 안전에 직결되는 부품에 두루 쓰였다. 중국이나 한국 등 신흥국 제품과 가격 경쟁 하게 되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도덕적 해이가 퍼졌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