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 직원이 최대한 역량 발휘하는 방법 고민… 결론은 수평적 조직"

입력 2019.04.26 03:00 | 수정 2019.04.30 09:25

[Cover Story] 105년 된 료칸의 재도약… 어떻게 첨단 리조트 됐나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호시노 사장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호시노 사장에게 ‘105년 기념 전시벽’ 앞에서 포즈를 요청했다. 그는 “우리의 강점은 100을 가진 직원이 100이라는 성과를 온전히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직 문화”라고 말했다. / 남민우 기자
"사진 촬영을 하실 예정입니까. 혹시 전신 촬영을 하신다면 사장님 구두를 미리 살펴봐야 합니다." 인터뷰가 예정된 당일 아침 호시노리조트 직원은 기자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호시노 사장이 평소 행실은 물론 복장도 자유로운 편이다 보니 행여 격식에 너무 걸맞지 않은 차림으로 나설까 노파심에서 물어본 말이었다. 통상 언론을 만나는 유력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빳빳하게 다린 정장에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면서 나타나곤 한다. 호텔·리조트 업계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담당자는 호텔·리조트 회사 사장 구두를 걱정하고 있었다.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인터뷰를 위해 직원용 회의실에 나타난 호시노 사장은 목이 살짝 늘어진 셔츠를 입고 갈색 캐주얼 구두를 신었다. 미소를 띤 채 스시 모양 스티커를 붙인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뒷면엔 호시노리조트 105년 역사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인터뷰는 호시노리조트 도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도쿄 사무실이래 봤자 교바시(京橋)와 긴자 사이를 관통하는 고가도로 바로 밑 2층 건물이다. 비교적 후미진 곳이라 처음 온 직원들은 길을 헤매기 일쑤라고 한다. 사무실에는 칸막이 대신 1~2인용 책상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수평적 조직 문화 만드는 데 총력

―사장실도 없는 사무실이 독특하다.

"회사에 출근하면 적당히 아무 곳이나 자리를 잡아 일한다. 긴자 사무실이든 가루이자와 사무실이든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따로 임원실이 없다. 자기 책상도 따로 없다. 아무도 자기 방이 없다. 회사 관용차도 없고, 따라서 운전사도 없다."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나.

"취임하고 첫 3년은 좋은 인재를 뽑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 회사엔 인재가 부족했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회사라 인재 선발에 애를 먹었다. 그래서 우선 '리조트 운영 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고, 인재들이 그만두지 않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 시절 읽었던 논문과 저서를 뒤적거렸다. 결론은 '플랫(flat·수평적) 조직'이었다."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호시노리조트의 온천(위 사진)과 가이세키 요리. / 호시노리조트
―수평적 조직을 만드는 게 왜 중요한가.

"단지 조직 체계를 마련하는 게 아니라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서비스업은 최전선에 있는 직원 개개인이 '자각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발상을 전환하는 게' 성패를 좌우한다. 제조업처럼 자동화해서 품질관리를 하기도 어렵고 경영자가 쫓아다니며 개입할 수도 없다. 결국 직원이 손님을 맞는 순간,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 최전선에 있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얘기할 수 있고,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즉석에서 개선 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구체적으로 수평적 조직은 어떤 것인가.

"조직도나 직급 체계가 수평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부터 수평적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평소에 수직적 명령 체제를 고수하면서 회의 때만 '말하고 싶은 대로 얘기해보라'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수평적 조직이 되는 게 아니다. 출발점은 '윗사람 문화'를 없애는 것이다. 조직에 '윗사람' 개념이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경고음이 올린다. 총지배인이 새로 취임한다고 방을 휘황찬란하게 새로 장식하는 관행은 악습이다. '윗사람 숭상 문화'를 없애는 게 지상 과제였다."

―윗사람 문화를 없애려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했나.

"우선 총지배인이든 말단 직원이든 서로 직급을 붙여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씨(일본어로 상·さん)'를 붙여 부르도록 했다. 또 모든 경영 정보는 직원들과 공유한다. 투숙객 설문 조사 결과는 물론, 가동률, 평균 단가, 이익액, 매출액 등 모든 경영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한다. 경영진이 아닌 현장 직원이 최적의 개선 방안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토론할 땐 '누가 지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토론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게 했다."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재량권

―성공 비결치곤 다소 진부하게 들린다.

헤이세이 30년 불황 뚫은 '호시노리조트'
호시노야도쿄의 대문을 열면 노송향이 물씬 풍기는 거대한 현관이 보인다. 나무 냄새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왼쪽 신발장에도 향을 넣어놨다. 정면에 보이는 장식품은 계절마다 바뀐다. / 호시노리조트
"대단한 건 아니고 이미 있는 이론이다. 켄 블란차드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재량권 부여)' 책을 많이 참고했다. 경영대에선 훌륭한 이론을 많이 가르친다. 근데 정작 실전에서 응용하는 회사는 드물다. 사실 책에 쓰여있는 대로만 해도 회사가 잘될 수 있다. 대개 경영자가 기득권을 버리자니 망설여서 기회를 놓치곤 한다. 사장실 없애자면 박수 칠 사장이 몇이나 되겠나."

―밑에서 나온 의견을 잘 반영하는 건가.

"우리는 '밑[下]'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위아래 개념이 아니다.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좀 더 올바른 표현이다. 반영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최전선 직원 판단을 믿고 일을 추진한다.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면 프로젝트를 스스로 접을 수 있게 해준다. 내 역할은 직원들의 제안을 '결재'하거나 '각하'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맡기다 보니 가끔은 회사의 좋은 소식을 내부 보고가 아닌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할 때도 있다."

직원 이탈 막기 위해 1등 비전 제시

호시노 사장은 1988년 부사장으로 취임했다가 사장인 아버지와 불화를 겪어 6개월 만에 온천을 떠났다. 그는 휴식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쪽으로 여행이 변하는 만큼 료칸도 서비스나 예약 시스템을 비롯해 전면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100여 년 동안 지켜온 전통식 운영을 고집했다. 온천을 떠난 그는 이후 시티은행에서 호텔 부실 채권 담당자로 2년 6개월 일하다 가족이 요청해 1991년 구원투수로 복귀했다.

―부친을 비롯한 가족들 당부는 없었나.

"가업을 망치진 말아달라는 말밖에 없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역시 초창기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엔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비결이랄 것도 없다.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조그만 회사지만 장래에는 일본 최고의 운영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자마자 당장 인재가 몰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좋은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원들이 비전을 공유하고 같이 달려온 덕분에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사업 전환점은 언제였나.

"항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기에 전환점이라고 느낀 시점을 말하기는 어렵다. 언제나 힘들다. 지금도 힘들고. 잘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했다. 지금은 리츠(REITs·부동산 투자 회사) 등을 활용해 돈 문제는 해결했지만, 1990년대에는 돈 빌리기조차 어려웠다."

母브랜드 아래 다양한 子브랜드 운용

100년 기업일지라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고객의 의견을 토대로 사업을 끊임없이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 호시노리조트의 강점이다. 호시노 사장은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인 '호시노야'를 시작으로, 가족에 초점을 맞춘 리조트 브랜드 '리조나레' 등 호시노리조트라는 모(母)브랜드 아래에 부속 브랜드를 다채롭게 운용하고 있다. 각기 다른 고객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모브랜드 아래에 고객층별로 서브 브랜드를 두는 데이비드 아커 UC버클리 교수의 '마스터 브랜드' 개념을 토대로 이런 전략을 짰다고 한다. 최근엔 35세 미만을 공략한 브랜드인 'BEB5'를 출범시키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50년 후 어떤 회사가 되기를 바라는가.

"매출 목표, 거점 수(운영 시설 수) 등 수치적 목표는 전혀 없다. 50년 후에는 해외에서도 리조트·호텔·료칸을 운영할 실력을 갖춘 회사가 돼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지금보다 더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가 돼서 지금보다 직원들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회사였으면 한다."

―에어비앤비의 출현으로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위기감을 그다지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유 경제 급성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 표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도 이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방에서도 에어비앤비는 물론, 우버·리프트와 같은 공유 경제가 빨리 도입돼야 한다. 일각에서 공유 경제 움직임을 반대하는데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호텔 업계도 규제로 맞서려 하지 말고 이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비스가 별로니까 고객들이 공유 경제로 옮겨간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호시노 사장에게 "가업을 물려받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프로 스키 선수가 됐을 것이다. 1년에 60번 스키를 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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