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혁신하는 세계 스포츠기업 5

2014년 언더아머에 뒤지며 美 3위 추락…
'스피드 팩토리' 도입 고가 프리미엄 반격
독일의 스포츠 용품 기업 아디다스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 시장 미국을 놓고 미국 나이키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2004년 매출 차이는 불과 3.5% 수준. 그러나 2005년 아디다스가 '타도 나이키'를 내세워 리복을 인수한 시점부터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40억달러를 들여 야심찬 한 수를 던졌지만 무리수로 돌아온 셈. 2014년에는 미국 시장 2인자 자리마저 까마득한 신생 브랜드 언더아머에 빼앗기며 3위로 떨어졌다.

독일 안스바흐의 스피드팩토리 1호점에서는 로봇 자동화 공정을 활용해 5시간 만에 새 운동화를 설계하고 생산한다. 공장 설비 관리를 위해 상주하는 인력은 10여 명뿐이지만, 철저한 자동화로 연간 운동화 50만 켤레를 만들어 낸다. 이에 반해 중국과 동남아 공장에서 50만 켤레를 만들기 위해선 600여 근로자가 필요하다. 2017년 새로 취임한 캐스퍼 로스테드(Rørsted)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고 오후에 원하는 매장이나 장소에서 신발을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공장 자체가 아디다스가 내세운 혁신과 속도와 '쿨(cool)함'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H&M·자라와는 결이 다른 속도전

아디다스(Adidas)
설립 1924년
본사 독일 바이에른
설립자 아돌프 다슬러
직원 5만6888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27조9700억원
영업이익 3조240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미국 나이키
출시 30년 '에어 조던' NASA 기술 '에어 맥스' 기념비적 히트작…
"차별화된 경험 특징"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내성적인 사람으로 스포츠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자서전 '슈독'에서 스스로 "다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라며 "신경성 안면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했다. 책에는 자서전에 으레 들어 있을 법한 본인 사진조차 한 장도 들어 있지 않다. 그는 1964년 나이키 전신 블루리본스포츠를 세우고, 2016년 나이키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52년간 이렇다 할 외부 인터뷰 한번 하지 않으며 은둔의 경영자로 지냈다.
반면 그가 몸담은 50여 년 동안 나이키는 정반대 길을 걸었다. 스포츠가 있는 곳이라면 지역을 막론하고 등장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는 코카콜라, 맥도널드와 비견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지난해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 역시 나이키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 패션 업체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거대 스포츠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나이키라고 꽃길만 걷진 않았다. 1975년에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버림받아 파산 위기를 맞았으나 일본 무역회사 도움으로 구사일생했다. 이후 1980년 상장에 성공했지만, 더 큰 위기가 1980년대에 잇따라 찾아왔다. 당시 최대 경쟁사였던 리복의 프리스타일 에어로빅화에 맞서 내구성을 강조한 새 대항마를 내세웠으나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투박한 디자인을 외면했다. 이어 생활 속에서 구두 대신 캐주얼한 운동화를 신는 소비자를 겨냥해 기능성 캐주얼화를 출시했지만,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상장으로 큰돈을 끌어모아 이전보다 야심 찬 투자를 한 만큼 실패 규모도 컸다. 1985년에는 2분기 연속 적자가 발생했고, 1987년에는 임직원 280명을 해고했다.
광범위한 기업·유명인과 협업
실패와 동시에 나이키는 '엘리트 선수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에 다른 기업이 가진 새로운 기술을 더한다'는 새 성공 방정식을 세웠다. 나이키를 대표하는 두 제품 '에어 조던'과 '에어 맥스'가 이렇게 태어났다. 에어 조던은 경영학계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스타 마케팅 케이스로 회자된다. 출시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신제품 발매와 동시에 매진을 기록하는 나이키의 간판 상품이다. 에어 맥스는 1987년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 고안한 충격 방지 기술을 사들여 만든 이종(異種) 기업 간 협업의 대표작이다.

2000년대 들어 나이키는 더 광범위한 협업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2006년 애플과 나이키는 공동으로 나이키 플러스(Nike+)라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운동화에 센서를 장착해 운동량을 측정하고 아이폰, 아이팟과 연동해 얼마나 운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피트니스 앱의 기준이 됐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전자 제품·의료 기기 제조 회사 플렉스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제조 공정 자동화와 개인 맞춤형 생산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마존, 드림웍스와는 디지털 사업 부문에서 협력에 나섰다. 나이키는 2020년까지 온라인 판매 등 디지털 부문 수익을 7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마크 파커 나이키 최고경영자는 "협력사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오프라인 매장 품질을 높여 소비자에게 나이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나이키(Nike)
설립 1964년
본사 포틀랜드 비버튼
설립자 필 나이트
직원 7만3100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동용품 제조
매출액 41조4000억원
영업이익 5조480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모노즈쿠리' 정신으로 품질 보증제도 실시
이치로 야구 글러브는 지금도 3~4배 가격
"(일본) 외부의 나이키와 아디다스, (일본) 내부의 아식스와 데상트만 경쟁자가 아닙니다.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가정용 게임기)에 빠진 아이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려면 그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5년 일본 최대 스포츠 업체 미즈노의 미즈노 마사토 당시 회장(현 이사회 부이사장)은 창업 100주년 기념회에서 경쟁 상대로 소니와 닌텐도를 지목했다. 당시 미즈노는 100주년을 맞았지만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직원 절반을 해고해 4000명이었던 직원이 2000명으로 반 토막 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면서 주력 상품이던 야구 관련 매출은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단가가 높아 효자 상품이었던 골프 관련 매출 역시 불황 여파로 뚝뚝 떨어졌다. 1988년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회장 자리에 오른 마사토 회장은 매년 새로운 시도에 나섰지만, 실적은 나빠졌다. 스포츠 용품 주요 소비자층인 20~40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갑을 열지 않는 데다,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아이들마저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이다.

상어 가죽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 개발
1분 1초를 앞당기는 데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건 스포츠 기업의 숙명이다. 여기서 돋보이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 미즈노는 이때부터 유달리 기술력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일본 국가대표 수영팀 기록 단축을 위해 첨단 소재 기업 도레이와 손잡고 상어 가죽을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을 만들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맞서 발볼이 넓고 발등이 두툼한 동양인 발 모양에 맞는 러닝화를 독자 개발했다. 불효자로 전락한 골프용품에는 사무라이용 칼을 만들 때 쓰던 연철 단조 기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망치로 철을 직접 두드려 만드는 이 방식은 녹인 쇳덩이를 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 방식보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힘과 방향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전 세계 골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미즈노(Mizuno)
설립 1906년
본사 일본 오사카
설립자 미즈노 리하치·미즈노 리조
직원 5368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1조8200억원
영업이익 453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같은 치수 신발도 너비로 6단계 세분
대공황 때도 살아남아 매출 28년째 상승중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모든 사업은 반드시 위대한 사명(mission)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지속 가능한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초기에는 소수 소비자만 상대하다 보니 당연히 성장이 더뎠다. 그러나 1930년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자 상황이 뒤바뀌었다. 경쟁사가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뉴밸런스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대공황이 끝나자 뉴밸런스는 이 시기 쌓은 소비자 데이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장애인용 밑창에서 시작한 회사라 발 모양이나 사이즈 다양성에 일찍부터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틈새 시장을 큰 시장으로 키우다

뉴밸런스의 3대 경영자 짐 데이비스 회장은 2006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자리에서 "경쟁자들이 모두 한길로 나가 싸울 때 그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시중에서 잘 구할 수 없는 사이즈와 발볼 너비를 가진 소비자의 주문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 뉴밸런스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뉴밸런스(New Balance)
설립 1906년
본사 보스턴
설립자 윌리엄 라일리
직원 5287명
주요 사업 신발 제조
매출액 4조5500억원
영업이익 비공개
※매출 2018년 추정치

미국 언더아머
선수 시절 땀 많았던 창업자, 유니폼 속에 갑옷 같은 옷 만들어…
'가장 창의적 경영자'
소비자에게 특정 스포츠 브랜드를 언급하면서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를 물어보면 대답이 뒤죽박죽이기 일쑤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나 프로 골퍼 본인이 이름을 걸고 만든 일부 골프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중에게 스포츠 스타의 인지도는 연예계 유명 인사보다 높지 않은 편이다. 반면, 스포츠 기업이 누구나 다 아는 스포츠 스타를 홍보에 동원해 차별화를 시도하려 하면 기업이 이미 어지간한 브랜드를 구축해 놓지 않은 이상 스타의 인지도에 기업 브랜드가 묻히는 '뱀파이어 효과'를 겪기도 한다.
미국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는 일반적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뒤집어 대성공을 이끌어 낸 사례다. 메릴랜드대 미식축구 선수였던 케빈 플랭크가 1996년 세운 언더아머는 창업 22년이 지난 업계 '젊은 피'에 속하지만, 아디다스를 제치고 나이키에 이어 미국 시장 2위 자리를 꿰찬 무서운 신예다.

선수 시절 유독 땀이 많았던 플랭크는 연습을 마치고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가 원래 무게보다 1.4㎏이나 더 나가는 점에 불만을 느꼈다. 직접 원단 상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땀을 덜 흡수하는 여성 속옷용 합성섬유를 쓰면 소재가 가벼워지고, 신축성이 좋은 데다 땀에 잘 젖지 않아 운동복을 만드는 데 제격임을 깨달았다. 경영학 학사 학위를 딴 그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나서는 대신, 그들이 입는 옷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품 특성에 맞춰 유니폼 안(under)의 갑옷(armour)이란 의미로 브랜드 이름은 '언더아머'라 정했다.
자금이 넉넉지 않던 플랭크는 미국 전역의 대학교 미식축구팀을 찾아다니며 직접 판로를 개척했다. 직접 개발한 옷을 대학 시절 친분을 맺은 프로 선수에게 나눠 주고 피드백을 받은 후 재차 개량했다. '경기 막판에도 몸이 가벼운 옷'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학 라커룸 한편에서 시작한 언더아머는 프로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스타보다 유망주 발굴하는 마케팅
보통 스포츠 브랜드는 스타 마케팅에 나서 점유율 높이기에 집중한다. 그러나 언더아머는 정상급 스타 선수와 거액 후원 계약을 맺는 대신 일부러 언더독(underdog·승리 가능성이 낮은 약자)을 찾아 나섰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장 가능성 높은 선수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1등이 아닌 도전자의 열정을 강조했다. 눈앞에 보이는 트로피를 거머쥐기보다 운동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 되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최고'보다 '감동'을 원했던 젊은 소비자들은 언더아머가 발굴한 언더독에 감정을 이입하고 열광했다.

언더아머(Under Armour)
설립 1996년
본사 메릴랜드 볼티모어
설립자 케빈 플랭크
직원 1만 5800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5조9150억원
영업이익 -284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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