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2년 걸리던 신발 제작 기간을 24시간으로… 사무라이 칼 제조기술로 만든 골프채… 갸날픈 닭 다리서 착안한 운동화… 여성 속옷서 아이디어 딴 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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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2 03:00

      [Cover Story] 혁신하는 세계 스포츠기업 5

      아디다스
      독일 아디다스

      2014년 언더아머에 뒤지며 美 3위 추락…
      '스피드 팩토리' 도입 고가 프리미엄 반격


      독일의 스포츠 용품 기업 아디다스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 최대 시장 미국을 놓고 미국 나이키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2004년 매출 차이는 불과 3.5% 수준. 그러나 2005년 아디다스가 '타도 나이키'를 내세워 리복을 인수한 시점부터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40억달러를 들여 야심찬 한 수를 던졌지만 무리수로 돌아온 셈. 2014년에는 미국 시장 2인자 자리마저 까마득한 신생 브랜드 언더아머에 빼앗기며 3위로 떨어졌다.

      독일 아디다스 공장에서 근로자가 아디다스 로고를 박음질하고 있다.
      독일 아디다스 공장에서 근로자가 아디다스 로고를 박음질하고 있다.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반전 카드가 필요했다. 경영진은 갈수록 떨어지는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선 '속도전'에서 앞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패션쇼에 오른 유명 디자이너 옷이 시장에서 유행하려면 1년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당시 어느 스포츠 업체든 시장조사 후 새 운동화를 기획하고 만들어 소비자에게 내놓는 데 1년 반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대형 가두 매장에 풀린 제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 등장한 새 제품에 밀려나고, 곧 창고 매장에서 재고 취급을 받다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야만 겨우 팔리는 게 공식이었다. 아디다스는 2016년 속도를 강조한 '스피드 팩토리'를 열면서 2년이 걸리던 제작 과정을 24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독일 안스바흐의 스피드팩토리 1호점에서는 로봇 자동화 공정을 활용해 5시간 만에 새 운동화를 설계하고 생산한다. 공장 설비 관리를 위해 상주하는 인력은 10여 명뿐이지만, 철저한 자동화로 연간 운동화 50만 켤레를 만들어 낸다. 이에 반해 중국과 동남아 공장에서 50만 켤레를 만들기 위해선 600여 근로자가 필요하다. 2017년 새로 취임한 캐스퍼 로스테드(Rørsted)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고 오후에 원하는 매장이나 장소에서 신발을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공장 자체가 아디다스가 내세운 혁신과 속도와 '쿨(cool)함'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H&M·자라와는 결이 다른 속도전

      아디 다슬러 아디다스 창업자
      아디 다슬러 아디다스 창업자
      아디다스는 H&M이나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와 결이 다른 속도전을 추구한다. 이 패션 브랜드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옷을 상품 회전율을 최대한 높여서 재구매를 유도하는 '저(低)마진 박리다매'를 내세운다면, 아디다스는 스피드팩토리 가동 이후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군을 더 강화했다. 첨단 소재로 만든 '이지부스트'나 일본의 스트리트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 협업해 만든 'Y-3'가 대표적인 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각 회사의 정체성을 살리기보다 유행에 따르거나, 어디서 입어도 튀지 않는 무난함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아디다스는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복고풍 운동화 '스탠스미스'(1965년 출시)나 '수퍼스타'(1969년 출시) 같은 제품을 다시 꺼내들었다. 속도전에 밀려 희미해질 수 있는 아디다스만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최근에는 최첨단 축구공 '마이코치 스마트볼'을 선보였다. 이 공은 안에 든 센서가 공을 찰 때 속도, 회전율, 궤적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어느 부위를 강하게 찼는지, 회전량과 어떤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는지를 기록해준다.

      아디다스(Adidas)

      설립 1924년
      본사 독일 바이에른
      설립자 아돌프 다슬러
      직원 5만6888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27조9700억원
      영업이익 3조240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미국 나이키

      미국 나이키

      출시 30년 '에어 조던' NASA 기술 '에어 맥스' 기념비적 히트작…
      "차별화된 경험 특징"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내성적인 사람으로 스포츠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자서전 '슈독'에서 스스로 "다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라며 "신경성 안면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했다. 책에는 자서전에 으레 들어 있을 법한 본인 사진조차 한 장도 들어 있지 않다. 그는 1964년 나이키 전신 블루리본스포츠를 세우고, 2016년 나이키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52년간 이렇다 할 외부 인터뷰 한번 하지 않으며 은둔의 경영자로 지냈다.

      반면 그가 몸담은 50여 년 동안 나이키는 정반대 길을 걸었다. 스포츠가 있는 곳이라면 지역을 막론하고 등장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는 코카콜라, 맥도널드와 비견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지난해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 역시 나이키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 패션 업체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1985년 나이키가 선보인 첫번째 ‘에어 조던’을 목에 걸치고 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1985년 나이키가 선보인 첫번째 ‘에어 조던’을 목에 걸치고 있다. /나이키

      지금은 명실상부한 거대 스포츠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나이키라고 꽃길만 걷진 않았다. 1975년에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버림받아 파산 위기를 맞았으나 일본 무역회사 도움으로 구사일생했다. 이후 1980년 상장에 성공했지만, 더 큰 위기가 1980년대에 잇따라 찾아왔다. 당시 최대 경쟁사였던 리복의 프리스타일 에어로빅화에 맞서 내구성을 강조한 새 대항마를 내세웠으나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투박한 디자인을 외면했다. 이어 생활 속에서 구두 대신 캐주얼한 운동화를 신는 소비자를 겨냥해 기능성 캐주얼화를 출시했지만,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상장으로 큰돈을 끌어모아 이전보다 야심 찬 투자를 한 만큼 실패 규모도 컸다. 1985년에는 2분기 연속 적자가 발생했고, 1987년에는 임직원 280명을 해고했다.

      광범위한 기업·유명인과 협업

      실패와 동시에 나이키는 '엘리트 선수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에 다른 기업이 가진 새로운 기술을 더한다'는 새 성공 방정식을 세웠다. 나이키를 대표하는 두 제품 '에어 조던'과 '에어 맥스'가 이렇게 태어났다. 에어 조던은 경영학계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스타 마케팅 케이스로 회자된다. 출시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신제품 발매와 동시에 매진을 기록하는 나이키의 간판 상품이다. 에어 맥스는 1987년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 고안한 충격 방지 기술을 사들여 만든 이종(異種) 기업 간 협업의 대표작이다.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

      2000년대 들어 나이키는 더 광범위한 협업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2006년 애플과 나이키는 공동으로 나이키 플러스(Nike+)라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운동화에 센서를 장착해 운동량을 측정하고 아이폰, 아이팟과 연동해 얼마나 운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피트니스 앱의 기준이 됐다.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전자 제품·의료 기기 제조 회사 플렉스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제조 공정 자동화와 개인 맞춤형 생산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마존, 드림웍스와는 디지털 사업 부문에서 협력에 나섰다. 나이키는 2020년까지 온라인 판매 등 디지털 부문 수익을 7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마크 파커 나이키 최고경영자는 "협력사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오프라인 매장 품질을 높여 소비자에게 나이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나이키(Nike)

      설립 1964년
      본사 포틀랜드 비버튼
      설립자 필 나이트
      직원 7만3100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동용품 제조
      매출액 41조4000억원
      영업이익 5조480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일본 미즈노
      일본 미즈노

      '모노즈쿠리' 정신으로 품질 보증제도 실시
      이치로 야구 글러브는 지금도 3~4배 가격


      "(일본) 외부의 나이키와 아디다스, (일본) 내부의 아식스와 데상트만 경쟁자가 아닙니다.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가정용 게임기)에 빠진 아이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려면 그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5년 일본 최대 스포츠 업체 미즈노의 미즈노 마사토 당시 회장(현 이사회 부이사장)은 창업 100주년 기념회에서 경쟁 상대로 소니와 닌텐도를 지목했다. 당시 미즈노는 100주년을 맞았지만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직원 절반을 해고해 4000명이었던 직원이 2000명으로 반 토막 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면서 주력 상품이던 야구 관련 매출은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단가가 높아 효자 상품이었던 골프 관련 매출 역시 불황 여파로 뚝뚝 떨어졌다. 1988년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회장 자리에 오른 마사토 회장은 매년 새로운 시도에 나섰지만, 실적은 나빠졌다. 스포츠 용품 주요 소비자층인 20~40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갑을 열지 않는 데다,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아이들마저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이다.

      미즈노가 1933년 선보인 ‘스타라인’ 골프 클럽 첫 모델.
      미즈노가 1933년 선보인 ‘스타라인’ 골프 클럽 첫 모델. /미즈노
      마사토 회장은 미즈노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의 친손자다. 가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온갖 스포츠를 지켜봐야 했던 그는 스포츠 경기에서 마음이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경기에서 마음을 뛰게 만드는 새로운 기록이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기록 달성의 두근거림이 불황을 겪는 소비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고, 새로운 이정표에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도전 정신은 소비자에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상어 가죽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 개발

      1분 1초를 앞당기는 데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건 스포츠 기업의 숙명이다. 여기서 돋보이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 미즈노는 이때부터 유달리 기술력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일본 국가대표 수영팀 기록 단축을 위해 첨단 소재 기업 도레이와 손잡고 상어 가죽을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을 만들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맞서 발볼이 넓고 발등이 두툼한 동양인 발 모양에 맞는 러닝화를 독자 개발했다. 불효자로 전락한 골프용품에는 사무라이용 칼을 만들 때 쓰던 연철 단조 기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망치로 철을 직접 두드려 만드는 이 방식은 녹인 쇳덩이를 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 방식보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힘과 방향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전 세계 골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미즈노 마사토 미즈노 부이사장
      미즈노 마사토 미즈노 부이사장
      당시 미국 스포츠 용품 업계에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동남아와 중국 공장에 외주를 주곤 했는데 미즈노는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 제품을 만든다)' 정신을 살릴 수 있게 일본 생산을 고수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특정 제품을 오래 만든 직원은 장인으로 대접해 화가가 그림에 서명하듯 완성품에 본인 직인을 직접 새기도록 했다. 일종의 '품질 보증 제도'를 공장형 스포츠 업계에서 실시한 셈이다. 일본 야구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의 글러브를 담당했던 쓰보타 노부요시의 직인이 들어간 글러브는 여전히 시장에서 일반 제품의 3~4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마사토 회장의 바람대로 이치로는 이 글러브를 끼고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를 포함한 무수한 신기록을 만들어 냈다.

      미즈노(Mizuno)

      설립 1906년
      본사 일본 오사카
      설립자 미즈노 리하치·미즈노 리조
      직원 5368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1조8200억원
      영업이익 453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

      미국 뉴밸런스
      미국 뉴밸런스

      같은 치수 신발도 너비로 6단계 세분
      대공황 때도 살아남아 매출 28년째 상승중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모든 사업은 반드시 위대한 사명(mission)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지속 가능한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뉴밸런스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신발을 선보이고 있다.
      뉴밸런스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신발을 선보이고 있다. /뉴밸런스
      뉴밸런스는 1906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윌리엄 라일리(Riley)가 만든 운동화 전문 제조업체다. 간판에 걸맞게 인체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기능을 강조한 신발을 만들어 명성을 쌓았다. 라일리는 마당에서 놀던 닭이 토실토실한 몸을 가냘픈 다리로 받치고 있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아치서포트(arch support)를 개발해 팔았다. 아치서포트는 사람의 발바닥 중앙 볼록 들어간 부분을 세 갈래로 나뉜 밑창으로 받쳐줘 편안함과 균형감을 주는 제품이다. 닭발 모양에서 착안한 밑창은 변변한 운동화가 없었던 20세기 초반 선천적 족부 장애나 후천적 불편을 앓던 소비자에게 정형학적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탔다. 뉴밸런스는 창립 초기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 발 치수를 재고, 특수 설계한 밑창을 넣은 후 불편함이 줄어드는지 확인한 후에야 신발을 파는 맞춤 형태를 고수했다. 발볼이 넓거나 발등 높이가 제각각인 소비자를 위해 업계 최초로 발 너비가 다른 신발도 준비했다. 같은 280㎜ 신발이라도 발 너비에 따라 '아주 좁음'에서 '아주 넓음'까지 6단계로 구분하는 식이다.

      초기에는 소수 소비자만 상대하다 보니 당연히 성장이 더뎠다. 그러나 1930년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자 상황이 뒤바뀌었다. 경쟁사가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뉴밸런스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대공황이 끝나자 뉴밸런스는 이 시기 쌓은 소비자 데이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장애인용 밑창에서 시작한 회사라 발 모양이나 사이즈 다양성에 일찍부터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틈새 시장을 큰 시장으로 키우다

      짐 데이비스 뉴밸런스 회장
      짐 데이비스 뉴밸런스 회장
      이후 뉴밸런스는 미국 경제 호황기를 맞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달리기 붐이 일었다. 미국 유명 마라토너 톰 플래밍은 뉴밸런스 320을 신고 뉴욕 마라톤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세계적인 육상 잡지 러너스 월드(Runner's World)는 이 신발을 최고의 달리기용 신발로 꼽았다. 여기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마다 같은 신발을 신으며 뉴밸런스 전도사를 자청하자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껑충 뛰었다. 1991년 9500만달러였던 뉴밸런스의 연 매출은 지난해까지 28년간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2018년 매출 추정치는 45억달러로 27년 사이 50배 가까이 늘었다. 1906년 작은 점포로 시작했던 뉴밸런스는 이제 전 세계 120여 나라에서 팔리는 세계 3위 운동화 브랜드로 성장했다. 창업자 윌리엄 라일리가 혼자 연구하던 족형(足形)은 이제 별도로 지은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에서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의 신체운동학과 박사과정 학생들과 협업한다.

      뉴밸런스의 3대 경영자 짐 데이비스 회장은 2006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자리에서 "경쟁자들이 모두 한길로 나가 싸울 때 그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시중에서 잘 구할 수 없는 사이즈와 발볼 너비를 가진 소비자의 주문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 뉴밸런스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뉴밸런스(New Balance)

      설립 1906년
      본사 보스턴
      설립자 윌리엄 라일리
      직원 5287명
      주요 사업 신발 제조
      매출액 4조5500억원
      영업이익 비공개
      ※매출 2018년 추정치

      미국 언더아머

      미국 언더아머

      선수 시절 땀 많았던 창업자, 유니폼 속에 갑옷 같은 옷 만들어…
      '가장 창의적 경영자'


      소비자에게 특정 스포츠 브랜드를 언급하면서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를 물어보면 대답이 뒤죽박죽이기 일쑤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나 프로 골퍼 본인이 이름을 걸고 만든 일부 골프 브랜드를 제외하면 대중에게 스포츠 스타의 인지도는 연예계 유명 인사보다 높지 않은 편이다. 반면, 스포츠 기업이 누구나 다 아는 스포츠 스타를 홍보에 동원해 차별화를 시도하려 하면 기업이 이미 어지간한 브랜드를 구축해 놓지 않은 이상 스타의 인지도에 기업 브랜드가 묻히는 '뱀파이어 효과'를 겪기도 한다.

      미국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는 일반적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뒤집어 대성공을 이끌어 낸 사례다. 메릴랜드대 미식축구 선수였던 케빈 플랭크가 1996년 세운 언더아머는 창업 22년이 지난 업계 '젊은 피'에 속하지만, 아디다스를 제치고 나이키에 이어 미국 시장 2위 자리를 꿰찬 무서운 신예다.

      언더아머가 삼성전자와 함께 내놓은 스마트워치 기어핏2.
      언더아머가 삼성전자와 함께 내놓은 스마트워치 기어핏2. /언더아머

      선수 시절 유독 땀이 많았던 플랭크는 연습을 마치고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가 원래 무게보다 1.4㎏이나 더 나가는 점에 불만을 느꼈다. 직접 원단 상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땀을 덜 흡수하는 여성 속옷용 합성섬유를 쓰면 소재가 가벼워지고, 신축성이 좋은 데다 땀에 잘 젖지 않아 운동복을 만드는 데 제격임을 깨달았다. 경영학 학사 학위를 딴 그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 나서는 대신, 그들이 입는 옷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품 특성에 맞춰 유니폼 안(under)의 갑옷(armour)이란 의미로 브랜드 이름은 '언더아머'라 정했다.

      자금이 넉넉지 않던 플랭크는 미국 전역의 대학교 미식축구팀을 찾아다니며 직접 판로를 개척했다. 직접 개발한 옷을 대학 시절 친분을 맺은 프로 선수에게 나눠 주고 피드백을 받은 후 재차 개량했다. '경기 막판에도 몸이 가벼운 옷'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학 라커룸 한편에서 시작한 언더아머는 프로 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스타보다 유망주 발굴하는 마케팅

      보통 스포츠 브랜드는 스타 마케팅에 나서 점유율 높이기에 집중한다. 그러나 언더아머는 정상급 스타 선수와 거액 후원 계약을 맺는 대신 일부러 언더독(underdog·승리 가능성이 낮은 약자)을 찾아 나섰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장 가능성 높은 선수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1등이 아닌 도전자의 열정을 강조했다. 눈앞에 보이는 트로피를 거머쥐기보다 운동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 되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최고'보다 '감동'을 원했던 젊은 소비자들은 언더아머가 발굴한 언더독에 감정을 이입하고 열광했다.

      케빈 플랭크 언더아머 창업자
      케빈 플랭크 언더아머 창업자
      지금은 미국 프로농구(NBA) 최고 스타로 자리 잡은 스테픈 커리가 좋은 예다. 원래 커리를 후원했던 나이키가 '키가 작아 성공 가능성이 떨어지고, 멀리서 외곽슛만 던져 스타성이 부족하다'며 박한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자 언더아머는 2013년 아직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커리와 연간 400만달러 전속 후원 계약을 맺었다. 당시 언더독이었던 커리가 리그를 지배하는 최고 선수로 탈바꿈하면서 그가 신는 언더아머 농구화는 요즘 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패스트컴퍼니는 2017년 플랭크를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경영자'로 꼽으면서 "소비자에게 '자신을 다스리라(Rule Yourself)'는 브랜드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언더아머(Under Armour)

      설립 1996년
      본사 메릴랜드 볼티모어
      설립자 케빈 플랭크
      직원 1만 5800명
      주요 사업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매출액 5조9150억원
      영업이익 -284억원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