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본사 직원 90%가 선수로 뛴 경험 시카고 4600㎡ 혁신센터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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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2 03:00

      [Cover Story] 스포츠용품 105년 윌슨의 모든 것

      마이크 다우즈 윌슨 회장

      105년 장수 비결 셋은 인재·브랜드·비즈니스
      유일한 회사 전략은 '혁신 계속하여 소비자를 미소짓게'

      마이크 다우즈 윌슨 회장
      김연정 객원기자
      윌슨은 1989년 나이키, 아디다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그룹 중 하나인 핀란드의 아머스포츠 그룹에 인수 합병됐다. 마이크 다우즈(53) 회장이 윌슨에 입사한 해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다. 그는 2010년 아머스포츠 미주 본부장을 지내고 2013년 40대에 윌슨 회장 겸 CEO에 취임했다.

      다우즈 회장 인터뷰는 서울 강남 논현동 아머스포츠코리아 본사에서 이뤄졌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문자 하나만 확인해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했다. 미국 아내에게서 온 문자였다. "열여덟 살짜리 아들이 고교 야구 리그 선수인데 지금 경기가 열리고 있어 아내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문자를 확인한 뒤 "나뿐만 아니라 윌슨의 모든 직원은 자기가 맡은 스포츠 종목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 브랜드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윌슨 본사 직원의 90% 가까이가 선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다우즈 회장 역시 미국 프로테니스협회 인증을 받은 테니스 선수다. 직접 사용해본 만큼 제품도 잘 안다.

      다우즈 회장은 답변할 때보다 신제품 테니스 라켓을 들었을 때 훨씬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윌슨이 105년간 경쟁력을 유지한 비결에 대한 설명은 명쾌했다.

      한국, 15년간 다섯 차례 방문

      ―한국은 첫 방문인가.

      "지난 15년간 다섯 번 정도 방문했다. 주기적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해 각국 시장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전략 회의를 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신제품 '클래시' 출시 시기에 맞춰 방문했다. 클래시는 최근 10년 내 윌슨이 가장 큰 규모로 출시하는 제품이다."

      ―클래시는 어떤 점에서 혁신 제품인가.

      "테니스 라켓의 '유연성'과 '파워'는 그동안 상충되는 요소였다. 라켓의 유연성이 높아지면 공을 치는 파워가 떨어지고, 파워가 강한 라켓은 유연성이 떨어져 라켓 조절이 쉽지 않은 것이다. 클래시에는 이 두 요소를 모두 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윌슨만의 기술('프리플렉스'와 '스테이블스마트' 기술)을 도입했다."

      ―어떻게 그러한 기술을 고안하게 됐나.

      "테니스 타구 방식이 과거와 달리 변화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과거에는 라켓을 뒤에서 앞으로 수평적으로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라켓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려 치는 동작이 늘어났다. 이러한 수직적 플레이를 고려해 새롭게 만든 라켓이 클래시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라켓을 개발하는 직원 대부분이 선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윌슨이 각 스포츠 분야 전문가만을 고용하는 이유다."

      저가 제품 전략으론 오래 버틸 수 없어

      ―우수한 인력이 '장수' 비결인가.

      "윌슨에는 일종의 기업 문화처럼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 첫째로 중요한 건 인재다. 적절한 인재를 고용해 잘 일할 수 있도록 관리(care)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브랜드다. 혁신을 일궈 시장에 앞선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이 다음으로 중요하다. 마지막이 비즈니스인데, 사업은 앞의 두 가지를 잘하면 저절로 굴러가게 돼 있다."

      ―인재 관리와 혁신만 잘하면 100년을 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소비재 회사가 살아남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비자를 미소 짓게 하는 제품을 계속 만들면 된다. 윌슨의 혁신적 제품은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다. 100년 넘게 사업 건전성을 유지해준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혁신이다. 인재는 혁신의 바탕이 된다. 전문성과 이해도가 높은 직원일수록 소비자가 어떤 혁신을 원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스포츠 장비는 소비자를 속일 수 없다. 써봤을 때 정말 플레이가 잘돼야 명성을 얻는다. 품질은 기본이고, 만족도를 현재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 없이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한다. 저가 제품 전략으로는 단기적으로 판매가 많이 되더라도 10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

      ―윌슨의 혁신은 어디서 나오나.

      "시카고에 있는 4600㎡(약 1400평) 규모의 '혁신 센터'가 중심에 있다. 제품 제작에 필요한 3D 프린팅 기계와 CAD 디자인 소프트웨어, 제품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는 테니스·농구 코트와 각종 측정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다. 여기서 과학자, 엔지니어, 산업 디자이너, 재료 공학자 등 70여 명이 근무한다. 최근에는 센서를 제품에 넣기 시작하면서 전자 공학자도 합류했다. 제품 개발·제작, 시험까지 한곳에서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스포츠 장비 업체는 윌슨이 유일하다."

      ―어떻게 제품 개발이 이뤄지는 것인가.

      "혁신 센터는 사용자의 요구를 빠르게 제품에 적용해볼 수 있는 '대장간'이라고 보면 된다. 더 중요한 작업은 사용자들의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다. 윌슨은 프로 선수, 아마추어 선수·코치 등을 약 1만명 후원하는데, 이들이 윌슨의 선수 자문단(WAS·Wilson Advisory Staff)으로 활약한다. 제품 매니저들이 자문단과 밀착 소통하며 아직 제품으로 구현되지 않은 요구를 파악하고, 제품 개발 초기 회의에서 이를 소개한다. 그럼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 제품을 만든다. 혁신 센터에 선수들을 초청해 그들의 요구에 맞게 장비 조율을 해주면서 신제품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혁신만이 의미

      윌슨은 선수들과 협업하는 게 많다. 1922년부터 선수 자문단을 운영했다. 업계 최초다. 테니스의 세리나 윌리엄스, 지난 시즌 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 MVP를 차지한 무키 베츠(보스턴 레드삭스), 골퍼 개리 우드랜드 등 수많은 선수와 협업한다. 다우즈 회장은 그 가운데 로저 페더러 선수를 가장 좋은 협업 사례로 꼽았다.

      "2014년 무렵 그는 '스윙하는 데 파워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빠르게 진행되고 힘이 많이 필요한 경기에서 밀리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테니스 라켓의 틀을 좀 더 두껍게, 라켓의 면을 좀 더 크게 만든 '프로스태프 97 RF(로저 페더러)' 라켓을 만들었다. 라켓 출시 시점과 맞물려 페더러의 주춤했던 경기력도 다시 올라갔다. 선수 성적에도 도움이 됐지만, 동시에 일반 사용자들도 이 제품의 혜택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센서를 단 스마트 농구공 '윌슨 X'가 이목을 끌었다.

      "세계적으로 센서를 활용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윌슨 X는 스마트폰 앱과 블루투스로 연결된다. 농구 골대에 공이 들어갔는지 앱으로 체크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상대편과도 농구 게임을 할 수 있다. 센서가 들어간 미식축구 공도 상용화했다. 최근에는 NFL(미식프로풋볼리그)의 많은 쿼터백(공격을 주도하는 선수)들이 이 제품을 이용해 훈련한다. 공이 날아간 거리와 속도, 플레이의 효율성 등을 분석할 수 있다. 테니스 라켓에도 센서 적용을 시험해보는 단계이다."

      ―앞으로 또 어떤 혁신 제품들이 있나.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센서 공은 선수·코치 등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개발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디지털 시대이니 우리도 IT(정보 기술)를 활용한 첨단 제품을 만들어보자'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첨단 기술은 '도구 상자'에 담긴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제품이 얼마나 첨단 기술을 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혁신은 철저히 소비자의 필요를 바탕으로 했을 때 의미가 있다."

      디자인 강화하고 소셜미디어 활용 확대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윌슨이 계속해서 잘해나가려면 소비자 중심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를 더 중심에, 소비자를 첫째로 두는 것이다. 물론 그 기본은 혁신적이고 좋은 제품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나는 '열정'을 추가하고 싶다. 윌슨은 오랫동안 존경받는 기업으로 잘해오고 있지만 열정을 좀 더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어떤 열정을 말하는 것인가.

      "내부적으로 '욕망의 대상(object of desire)'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욕망의 대상이 되는 제품을 팔자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디자인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더 다양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과거에는 제조 회사가 제품을 만들어 유통업자에게 주면 유통업자가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일직선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는 제조 회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닿을 수 있는 지점이 다양해졌다. 옴니 채널이 구현된 만큼 윌슨도 소비자와 직접 대화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