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파도가 곳간을 덮치듯, 新권력이 구권력을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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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2 03:00

      '뉴 파워' 저자 제러미 하이먼스가 분석한 권력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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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란희
      차량 공유 업체 우버(Uber)는 물리적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뤘고, 탄탄한 교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은 네트워크 참가자, 즉 운전자와 승객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최근 이 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우버가 2016년 미국 전역 80개 도시에서 이용료를 10~20% 인하한다고 갑자기 발표한 게 발단이었다. 승객은 환호했지만, 운전자는 분노했다. 우버는 심지어 금요일 영업시간이 끝난 후 갑작스럽게 요금 인하를 발표했으며, 운전자에게 따로 이메일로 알리지도 않았다. 우버 운전자들은 여전히 요금 인하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이 시대의 권력 변화를 분석한 '뉴파워(New Power)'의 저자 제러미 하이먼스(Heimans·41)는 우버 갈등에 대해 "신권력 모델과 구권력 가치가 충돌한 사례"라며 "우버는 이용자의 자유로운 교류를 이용한 신권력 모델로 시장에서 성공했지만, 상층부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을 사전 고지나 의논 없이 운전자에게 통보하는 전형적인 구권력 접근 방식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뉴파워'는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이먼스는 전 세계의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단체 퍼포스(Purpose)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동 인권 문제부터 핵 확산 금지에 이르기까지 평생 사회운동에 앞장서 왔다. 2011년 포드 재단에서 수여하는 75주년 비전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하는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꼽혔다. 그의 테드(TED) 강연 '신권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는 150만 조회를 기록했다. 뉴욕 맨해튼의 퍼포스 사무실에서 만난 하이먼스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기자를 반겼다. 미국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이라 텅 빈 사무실에는 하이먼스 대표와 직원 한 명만 출근한 상태였다.

      기술 변화로 권력 이동 현상 발생

      ―신권력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과 미투(Me too) 운동을 접하면서부터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총 300회 넘게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여왕은 그에게 대영제국의 명예 공로훈장을 수여할 정도였다. 와인스틴은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면서 수년간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계는 쉬쉬하며 그를 보호했다. 미투 운동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권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피해 여성들은 와인스틴과 그를 떠받쳐준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전통 영화계를 수십 년 만에 무너뜨렸다. 과거에도 권력자의 성범죄를 고발한 사례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개인의 부패와 잘못으로만 여겨졌지, 체계적인 사회문제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과거에 피해자의 발언이 성명(statement)에 그쳤다면, 지금의 미투 운동은 행동(action)이라고 볼 수 있다. 해시태그(#)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군중을 하나로 묶어, 다수로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10년 전에 등장했는데, 왜 이제 와서 미투 운동이 가능해진 건가.

      "참여자들의 마음가짐이 변했기 때문이다. 10~20년 전에 등장한 플랫폼은 기술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를 경험한 젊은이들이 구권력이 유일한 권력이 아니라고 인식하게 됐다. 즉, 신권력을 통해 구권력을 밀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권력 장악보다 권력 흐름을 조절

      ―구권력과 신권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권력은 통화(currency)처럼 기능한다. 소수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일단 권력을 손에 넣고 나면 사력을 다해서 곳간을 지킨다. 권력자들은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권력 곳간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하향식 방식이고, 또 다른 권력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유발한다.

      신권력은 다르게 기능한다. 비유하자면 해류나 조류 같은 하나의 흐름(current)에 가깝다. 신권력은 많은 사람이 합심해 창조하고, P2P(개인 간) 방식으로 각자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공개적이며 참여적이다. 또한 아래에서 위로 몰아주는 상향식 경향이 있고, 사회의 여러 곳으로 분배되고 탈집중화하는 특성이 있다. 물이나 전기처럼 한꺼번에 쇄도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신권력이 추구하는 목표는 권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게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결집하는 일이다."

      돈 벌기 위해선 과거와 다른 기술 필요

      ―신권력을 잘 활용한 기업이 있다면.

      "가장 먼저 신권력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 혹은 조직의 이름, 로고, 슬로건을 만들 때 소비자에게 어떤 언어로 다가갈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아멕스 블랙 카드나 고급 승용차 벤틀리는 고급스럽고, 배타적인 인상을 준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에 반해 에어비앤비는 신권력 시대에 적합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은 '누구든 어디서든 소속감을 느끼는 세상 만들기'다. 에어비앤비의 로고는 집주인이 저마다 자기 목적에 맞게 수정할 수 있다. 브랜드는 경영진이 하향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참여해 바꿔나갈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의미다."

      ―신권력 시대에는 돈을 버는 방식도 다른가.

      "수입, 기부, 투자금, 대출이든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나의 아버지는 호주에서 독립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었는데,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일이 중요했다. 특히 이런 일에는 남성, 백인, 아이비리그 등 고학력 출신이 유리하다. 이 방식이 현재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대단한 인맥 없이도 충분히 자금을 모을 수 있다. 특정 기업이나 프로젝트,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 등에 대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 Starter)'가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킥스타터로 모집된 투자액은 40억달러(약 4조5800억원)가 넘는다."

      트럼프, '구권력+신권력'에 성공

      ―신기술 펀딩 기술을 활용한 기업을 소개한다면.

      "스코틀랜드 스타트업 브루도그(BrewDog)는 은행 융자나 벤처캐피털에 기대지 않고, 소비자들로부터 수천만달러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크라우드 주식의 선구자 역할을 해 자사 소비자 2만4000명을 '공동 소유자'로 만들었다. 브루도그는 신권력 기법을 활용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지녔으면서도, 지분 23%를 사모펀드에 2억6500만달러에 매각해 12억달러(약 1조3740억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하는 등 구권력을 십분 활용하는 기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권력과 구권력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가 구권력의 가치를 기반으로 신권력의 모델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신권력 세계에서 대중을 결집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트위터 마니아'로 잘 알려진 그는 소셜미디어상에서 어떻게 해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다. 그의 자극적인 한마디에 페미니스트, 흑인 인권가, 자유무역주의자는 분노했지만, 그 반대에 존재하는 총기 소지 권리자, 티파티(세금 감시 운동을 펼치는 미국의 보수 단체), 극우주의자는 열광했다. 트럼프는 이미 존재하는 에너지를 한곳에 모아 최대한 결집했고, 선거운동을 통해 열렬한 대중의 지지로 변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