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1000조원 쏟아붓는다 '빚의 만리장성' 위태위태

입력 2019.03.29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14> 中 리커창 총리의 2019 국정연설

질주하는 '회색 코뿔소'
GDP 253% 달하는 빚 미국·일본과 달리 대형 국유기업 많아
올 성장목표 6~6.5% 일자리 우려해 개혁보다 성장 택해
과잉투자 부작용 부동산부터 나타나 새 주택 5채 중 1채 작년 말 미분양 상태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지난 5일 오전 9시,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2차 회의 단상에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올랐다. 전인대는 우리나라의 국회 격으로, 이날 리 총리의 업무 보고는 신년 국정연설에 해당한다.

그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0~6.5%로 발표했다. 중국은 2016년에도 6.5~7.0%로 '성장 구간'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보통의 경우 특정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초과 달성해왔다. 그런 만큼 올해 성장 구간을 제시한 것은 경제 운용에서 '운신의 폭'을 갖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날 발표된 모든 수치와 정책 방향은 작년 12월 말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 총리 등이 참석한 최고위 경제정책 결정 기구인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위험(risk)을 뜻하는 펑셴(風險)이란 단어를 24번이나 썼다.

대외 위험 속에 불거지는 부채 문제

중국 경제에 새롭게 등장한 위험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었다. 리 총리는 이날 "대외적 환경의 깊은 변화에 직면했다"고 해 미·중 무역 마찰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노출된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 미·중 두 나라는 모두 3600억 달러어치의 상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 결과,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작년 12월에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3.5%로 돌아섰고 지난 2월에는 마이너스 28.6%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중국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는 1월 391억6000만달러에서 2월 40억8000만달러로 격감했다. 수출을 주도하는 기술·제조업들이 밀집한 남부 선전, 광저우 등지에선 투자와 고용 지연은 물론, 장기 해고까지 속출하고,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019년 중국 경제 정책 방향을 대의원들에게 보고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019년 중국 경제 정책 방향을 대의원들에게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경제의 더 크고 해묵은 위험은 종종 '회색 코뿔소(gray rhino)'로 불리는 막대한 빚이다. 중국의 총부채는 GDP(국내총생산)의 253%에 달한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총부채 규모도 GDP의 각각 105.4%, 250%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의 빚은 성격이 다르다. 대형 국유 기업들이 대부분인 기업의 총부채가 GDP의 152.9%(2018년 3분기)에 달한다. 한국·일본의 기업 총부채가 101.2%이고, 미국이 73.9%인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다. 비(非)효율성·과잉투자·수익률 저하·부실화 비판에도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의 신도시 개발·인프라 프로젝트에 저리(低利)로 대규모 은행 대출을 제공하며 경제 성장을 주도해 온 결과다.

2008년 경기 부양으로 빚 급증

중국의 총부채는 2004~2008년 말까지만 해도 GDP의 170~180%로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중국 GDP에서 9%를 차지하던 순 수출액이 반 토막 나자, 중국 정부는 2008년 4조 위안의 돈을 쏟아 부으며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섰다. 당시 GDP의 12.5%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넘치도록 돈을 쏟아 붓는 경기 부양이었다. 덕분에 중국 경제는 위기 후에도 매년 1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고용 창출과 세입(歲入) 증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중앙·지방정부와 국영기업들이 쌓은 '빚의 만리장성'도 높아만 갔다. 지방정부의 숨은 부채와 비(非)은행권인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을 통한 민간기업의 대출을 포함하면 총부채 규모의 실체는 파악하기도 어렵다.

올해도 1000조원 쏟아붓는다 '빚의 만리장성' 위태위태
빚으로 무계획하게 과잉 투자한 단적인 예가 부동산 개발이다. 중국 전역의 신도시·신구(新區) 조성 계획만 합쳐도 수용 인구가 중국 인구의 배가 넘는 34억 명이라는 조사가 있을 정도다. 도시화 정책으로 새로 지은 주택의 21.4%인 6500만 채가 작년 말 현재 미분양 상태다. 중국인들이 부동산 열기 속에서 22조9000억 위안의 빚을 져 구입한 주택의 47.1%가 현재 빈집이다. 중국인들이 빚으로 산 아파트의 절반이 아무도 안 살거나, 임대 수입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 결과, 올해 초 많은 중소도시에서 부동산 거래 건수가 44%까지 주저앉았다. 중국 GDP의 25%가 시멘트·유리·철강·알루미늄 등과 같은 부동산 관련 산업이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 이들 산업과 대출을 제공한 은행권은 직격탄을 맞는다. 인민대의 샹송줘(向松祚) 교수는 "부동산에 잠긴 중국인 자산만도 G7 선진국 GDP 규모의 2배인 65조달러로, 중국인들은 결국엔 무너질 신기루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도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부채 주도 성장'의 폐해를 잘 안다. 그래서 시 주석도 3년 전부터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의 대출을 억제하며 채무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해도 빚으로 경기 진작 나서

하지만 리 총리의 정책 목표를 뜯어보면 '개혁'보다는 '안정적 성장'에 강조점이 찍혔다. '6% 대 성장'은 1990년 이래 최저이지만, 작년 GDP가 90조 위안인 세계 제2의 경제국가엔 여전히 매우 높은 목표다. 계속적인 고용 창출이 우선순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의 이치훈 중국팀장은 "다소 목표치를 낮춘 것은 앞으로 2년간 6.1%씩만 성장해도 샤오캉(小康·비교적 잘 사는 중산층) 사회를 약속한 2020년의 경제 규모가 2012년의 2배가 되고, 2016~2020년 13차 5개년 계획의 연평균 목표치(6.5% 이상)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9년 중국 경제 주요 목표
중국 정부는 올해도 8000억 위안의 철도 및 1조8000억 위안의 도로·수로 건설, 5780억 위안의 통신 인프라 개선 사업을 진행한다. 말로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부인하지만, 인프라 투자가 여전히 경기 부양의 핵심 요소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1100만 개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또 대형 국유은행들의 소기업 대출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제조업체에 대한 증치세(부가가치세·16%)를 3%포인트 인하했다. 사회보장연금 부담금 비율(임금의 19~20%)도 16%로 낮춰 모두 2조 위안의 기업 감세 효과를 내게 했다. 동시에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폭을 GDP 대비 2.6%에서 2.8%(2조8000억 위안)으로 확대했다. 지방정부의 특수목적 채권 발행 한도도 작년보다 8000억 위안 늘려 2조1500억 위안으로 잡았다. 발표된 올해 경기 부양용 지원 규모만 줄잡아도 6조 780억 위안(약 1014조원)에 달한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사동철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전쟁 충격까지 고려해 지금까지의 핵심 기조였던 부채 축소와 공급 측 구조개혁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부채 리스크를 오히려 확대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19년은 반일(反日)·반(反)제국주의 학생운동인 5·4운동 100주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10월) 70주년 외에도 티베트의 독립 봉기(3월) 60주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6월) 30주년, 신장 우루무치 독립운동 유혈 진압 10주년(7월)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작년에 헌법까지 고쳐 종신(終身) 주석이 된 시 주석에겐 조그마한 정책적 실수도 걷잡을 수 없는 사회 불안으로 번지는 불꽃이 될 수 있어 안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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