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사이클 탈 수밖에…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심리와 반대로 투자하라"

입력 2019.03.29 03:00

[Cover story] 헤지펀드의 큰손들… 성공 비결을 묻다

세계 최대 부실 채권 펀드 '오크트리캐피털' 하워드 마크스 창업자

하워드 마크스 회장은 “뛰어난 투자자는 경향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확률을 내편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블룸버그
오크트리캐피털 본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그러나 하워드 마크스 회장은 뉴욕 사무소에서 주로 근무한다. 맨해튼 뉴욕현대미술관이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34층에 자리 잡은 오크트리 뉴욕사무소 한쪽에 마크스 회장 방이 있다. 회장 방이래 봤자 26㎡(8평) 정도 크기에 책상과 책꽂이, PC만 놓여 있다.

오크트리는 지난해 기준 운용 자산이 1220억달러(약 138조원)에 이른다. 한국 1년 국가 예산(400조원)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지난 13일 캐나다계 투자운용사 브룩필드가 오크트리 지분 62%를 47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오크트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마크스 회장 경영권은 보장하는 조건이다.)

마크스 회장은 항상 "미래에 대해 기껏 알 수 있는 건 확률뿐"이라면서 "평균적으로 더 많이 맞힐 수 있을 뿐이다"고 강조한다. 투자에서 성공은 복권당첨자를 뽑는 것과 비슷한데 뛰어난 투자자는 공 무더기에 어떤 공이 있고 추첨에 참여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감각이 좋은 사람이란 설명이다.

"특정 회사 주가가 월등히 높다면 한번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합당한 가격인가. 그만큼 실적이 뛰어난가. 시장은 정당하게 대접하고 있나. 아니면 너무 호의적인 거 아닌가. 주식 가격은 펀더멘털(fundamental)과 실제(reality)와 감정(emotion)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거기서 인식(perception)이 생성되고 투자 결정을 좌우합니다."

마크스 회장은 "재무제표가 나쁘지만 좋은 회사에 투자하라(good company bad balance sheet)"는 원칙을 지켜왔다. 부채비율은 높지만 펀더멘털이 튼튼한 회사를 눈여겨 본다. 부실 채권(distressed debt) 투자가 주 전공인 이유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멀리 내다보고 안정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면서 "감정이 앞서면 고점에 사서 저점에 파는 어리석은 지경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심리가 더 위축되고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면 오히려 투자 기회가 온다는 의미다.

기업 부실 채권에 투자해 큰 수익

―투자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하나.

"첫째, 역사를 본다. 평범한 투자자들은 금융사를 읽지 못해 사이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다음으론 양적 분석이다. 주가수익률, 주당 자산가치 같은 알기 쉬운 기본 정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가치 있는 정보는 중요하면서 알기 쉬운 것이다. 셋째, 행태(behavior)를 잘 관찰해야 한다. 투자자들 행동이 욕심이나 두려움에 지배되고 있는가. 적절하게 위험을 회피하는지 아니면 무모하게 위험을 감수하는지. 투자 심리가 냉랭하고 리스크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면 투자에서 수익을 얻을 기회는 높아진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올해 미국 경기 전망은 어떤가.

"강세지만 불확실하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회복기가 10년 차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렇게 회복 국면이 장기적으로 지속된 적은 없었다. 회복이 후기 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경기는 언제나 사이클을 탈 수밖에 없고, 순환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좋으면 낙관론이 퍼져 행동으로 옮겨지고, 다시 조정을 맞는다. 그게 자연스러운 질서다. 사이클이 있을 것이란 점을 예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해서는 안 된다."

―부실 채권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싱글B' 등급에 투자한다. 하지만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정크 본드 시장이 그다지 전망이 좋진 않다. 올해 주목하는 투자처는 시니어 론(senior loan)과 사모사채(私募社債·private credit)다."(시니어론은 S&P 신용등급 기준 'BBB-' 이하로 낮은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비교적 높은 이자를 받는 변동금리형 선순위 담보 대출. 시중금리가 오르면 수익이 높아진다. 사모사채는 기업이 은행·단자사 등 기관투자자나 특정 개인에 대해 개별 접촉을 통해 매각하는 채권이다.)

―부동산에는 관심이 없나.

"부동산에도 투자한다. 주로 사무용 빌딩을 사고판다. 전체 자산 중 10~15%가량이 부동산에 들어간다. 흔히 부동산은 불패(不敗)라는 잘못된 신화가 퍼져 있는데 부동산이나 페이스북 주식이나 무슨 마법(magical)을 가진 투자처가 아니다. 부동산은 덩치가 너무 커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기 어렵고, 거래 비용이 너무 크다. 시장가와 공시가가 달라 뭐가 합리적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다른 금융 상품과 비교하면 불확실성이 크다."

중국이 조금 양보하면 트럼프 발 뺄 듯

―미·중 무역 전쟁은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은 미국에 불공정한 무역 상대라는 점은 수긍한다. 전임 대통령들은 이런 걸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30여년 전 일본 경제가 미국을 위협했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일본처럼 지금 중국도 미국과 마찰을 원하지 않을 거라 본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면 미국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중국은 못 견딘다. 물론 미국도 무역 전쟁이 길어지면 타격이 작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트럼프는 중국을 압박해 작은 양보를 이끌어낸 다음 그걸 엄청난 업적처럼 부풀려 선전한 뒤 슬쩍 발을 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만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 정말 중국을 싫어할 수도 있다. 외국인 혐오증이 있다는 건데, 만약 그렇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순 있다."

―투자 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군가.

"투자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워런 버핏이 있고, '월스트리트의 현자(賢者·guru)'로 통하는 피터 번스타인,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도 통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다. 최근엔 나심 탈레브에게 감명받았다. 그의 '행운에 속지 마라'는 정말 좋은 책이다. 여기저기서 듣고 읽은 많은 지식을 종합해서 세상을 분석하는 틀을 마련한다."

―평소 어떤 책을 많이 읽나.

"투자와 관련한 책도 읽지만 그냥 재미로 읽는 책이 더 많다. 특히 첩보 소설(spy novel)다. 존 르 카레(Le Carre)를 아는가. 그는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첩보 소설 작가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나 '리틀 드러머 걸'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첩보 소설이라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내용과 줄거리가 심오하다. 존 그리셤은 르 카레와 비교하면 그냥 대중소설 작가일 뿐이다. 르 카레는 문호(文豪) 반열에 오를 만한 경지다." (존 르 카레는 본명이 데이비드 콘웰인 전직 영국 외무부 공무원 출신 작가다. 수많은 첩보 소설 걸작을 남겼다. '테일러 오브 파나마'나 '콘스탄트 가드너' 등 8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읽고 쓰고 강연하면서 세상에 공헌

―인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였나.

"가족과 함께 있을 때다. 아내를 만난 날, 결혼식을 올린 날, 자녀가 태어난 날, 손자를 얻은 날… 이런 게 삶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평생 원칙으로 삼고 실천하고 있다."

―여생에 대한 계획은 뭐가 있나. 또 다른 인생의 목표가 있나.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할 것이다. 생각하고 읽고 쓰고 강연하고….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더 현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지적 능력(marble)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게 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이따금 식당 같은 곳에서 누군가 알아보고 다가와 '당신 책을 읽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강연을 듣고 복잡했던 상념이 명쾌하게 정리가 됐습니다' '그동안 생각 못 하던 걸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건넨다. 그럴 때 정말 기분이 좋다.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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