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쇠창살에 갇힌 당신, 상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방 탈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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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3.29 03:00

      日 게임업체 '스크랩'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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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를 풀어야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리얼탈출게임’의 한 장면. 탈출 게임 전용센터에서 참가자들이 탈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스크랩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일본 도쿄 전역은 수수께끼를 푸는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도쿄메트로 언더그라운드 미스터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도쿄메트로의 지하철 9개 전 노선 '1일(24시간) 자유이용권'을 구매해 도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의 여정을 펼친다. 수수께끼 풀이용 각종 도구와 지하철 티켓이 포함된 이용권은 한 세트당 2200엔이다. 이 대형 체험 이벤트는 2008년 설립된 신생 게임 제작 기업 스크랩(Scrap)이 도쿄메트로와 손잡고 2014년부터 개최하는 정기 이벤트다. 지금까지 누적 참가자 수가 25만명에 달한다.

      스크랩은 참가자끼리 한 팀이 돼 다양한 수수께끼와 암호를 풀어 감옥과 밀실 등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탈출하는 게임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일본과 세계 각국에 새로운 놀이 문화로 확산시켰다. 게임 형식도 다양하다. 적에게 흔적을 들키지 않고 탈출하는 잠입 게임, 거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게임 등 홀로 즐기는 인터넷 게임에서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게임 방식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였다. 2018년 누적 이용자 수가 380만명을 돌파했다. 2017년에는 도쿄 번화가 신주쿠 가부키초에 일본 최대 규모 탈출 게임 전용 게임센터 '신주쿠 미스터리 서커스'를 열었다.

      '방 탈출 게임'의 창시자로 불리는 가토 다카오(加藤隆生) 스크랩 창업자 겸 대표는 모자 달린 카디건과 청바지에 중절모자를 눌러쓴 옷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마치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친근하게 때로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그가 만든 리얼 탈출 게임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비결에 대해 묻자 "탈출 게임은 참가자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엔터테인먼트"라며 "게임 중에 스토리에 몰입하는 순간이 오면 이때 영감이 나오고 영감에는 쾌감이 따른다. 여기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뮤지션에서 게임 제작·운영 변신

      가토 대표는 뮤지션 출신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첫 직장인 인쇄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1년 6개월 근무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교토에서 인디밴드를 결성했다. 2004년 이 음악 밴드 홍보용으로 만든 무료 배포지 '스크랩' 창간이 회사 설립으로 연결됐다. 당시 재미있는 기획을 찾던 그는 온라인에 유행하던 탈출 게임을 오프라인에 그대로 옮겨 2007년 교토에서 '리얼 탈출 게임'을 개최했는데 이 이벤트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2008년 스크랩을 설립해 2010년에 도쿄에도 진출했다.

      스크랩의 지난해 매출액은 24억5800만엔으로 5년 전보다 6배 늘어났다. 스크랩은 해외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2012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2곳에 리얼 탈출 게임 전용센터를 설립했다. 중국·싱가포르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공간을 빌려 리얼 탈출 게임을 직접 운영한다. 리얼 탈출 게임은 장소를 한정하지 않는다. 야구장과 학교, 지하철과 도심 고층 빌딩 등을 통째로 빌려 대규모 게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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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크랩의 가토 다카오 창업자. / 이태경 기자
      초창기 미국 진출, 실패 후 성공

      스크랩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2012년 해외 진출 초창기, 뉴욕에서 탈출 게임을 운영하다 생각만큼 잘 안돼서 사업을 접었다. 미국에서 공간을 빌려 유령선 탈출 게임을 운영했는데 반응이 없어 철수했다. 대신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정박해 있던 큰 배를 통째로 빌려 탈출 게임을 운영했는데 미국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현실 공간을 유령선이라는 상상 공간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며 "문화 차이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초반 고전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 차이란 뭘까. 그는 일본인과 해외 사람들이 읽는 만화량의 차이를 예로 들었다. 일본인 독서량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100배 이상 많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쉽게 접하다 보니 이야기 습득 능력이 뛰어나 게임도 일상처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상공간에 잠수함을 꾸며놓으면 일본인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중국이나 유럽·미국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는 일이 많았다.

      지하철·유명 기업과 협업해 세력 확장

      스크랩이 제작·운영하는 리얼 탈출 게임은 유명 기업과의 협업으로 화제성을 더하며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2014년 시작된 도쿄메트로와의 대규모 협업 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가토 대표는 "당시 도쿄메트로 직원 중에 리얼 탈출 게임 단골손님이 있어서 도쿄메트로에서 이벤트를 먼저 제안해 왔다"고 말했다.

      스크랩은 이 밖에도 유니클로와 닛산 등과 협업해 리얼 탈출 게임 콘셉트를 입힌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닌텐도가 제작한 게임 시리즈 '젤다의 전설'과 협업으로 만든 탈출 게임을 유럽 각지에서 운영하며 팬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가토 대표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교육·사회문제 해결에도 방 탈출 게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넷·모바일을 태어날 때부터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들은 오프라인 경험만으로도 새롭다. 그는 "만약 청소년들이 리얼 탈출 게임을 통해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해본다면, 자살률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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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랩의 부산지점에서 운영하고 있는 AR(증강현실) 기술을 응용한 ‘테이블 프로젝션 매핑’. 테이블 위에 영상을 비추면 손으로 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스크랩
      '재미있는 게임'이 성공 전략

      게임 제작·운영에 그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가토 대표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도록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이곳에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가득하니 와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보다 "다이아몬드를 숨긴 장소가 있으니 와서 한번 찾아봐라" 하는 편이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한다고 강조한다. 게임 흥행에는 스토리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토 대표는 평소에도 다양한 취미를 즐긴다. 그는 책과 만화를 읽고 영화 감상 외에도 등산과 인터넷 게임도 즐긴다. 최근에는 영어도 배우고 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지 않나"라며 미소 지었다.

      스크랩 게임의 특징은 탈출 성공률이 10% 정도로 난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가토 대표는 새로 기획된 모든 게임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난도를 직접 조절한다. 스크랩은 최신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포켓몬고와 같이 현실 공간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보여주는 AR(증강현실) 게임 방식도 도입했다.

      가토 대표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했다. 그는 "지금은 1시간 게임에 주력하고 있지만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며 도전하는 심야 모험 게임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개최되는 도쿄올림픽도 그에게는 훌륭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스크랩은 수수께끼 풀이와 운동을 연동시켜, 마라톤 10㎞를 뛰지 못하면 수수께끼를 풀 수 없게 장치를 이용자 몸에 걸어두는 게임을 기획 중이다.

      가토 대표에게 앞으로 목표에 대해 묻자 "장래 목표를 정해 전진하는 기업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을 찾고, 가능한 한 오래 자유로운 발상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토 대표의 '재미 지상주의'는 그의 인재 채용 철학에도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지금 1장짜리 종이에 아이디어를 써서 보여 달라. 재미있으면 바로 채용하겠다."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재미있는 세상'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