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초상화 얼굴이 계속 바뀌네! 소더비 경매서 6000만원에 팔렸다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입력 2019.03.29 03:00

[이규현의 Art Market] (13) AI 미술시장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지난 6일 런던 소더비에서 AI(인공지능)가 그린 미술품 한 점이 경매에 나와 4만파운드(약 6000만원)에 낙찰됐다. 작품 이름은 '행인의 기억 1(Memories of Passerby 1)'. 이 작품은 컴퓨터와 연결된 스크린 액자 두 개에서 초현실주의 화풍 초상화가 계속 바뀌어가며 생성되는 장치였다. 장치를 만든 사람은 독일 컴퓨터 과학자 마리오 클링거만(Klingemann). 그는 이 작품에 신경계를 뜻하는 뉴로(Neuro)와 이미지를 뜻하는 그래피(graphy)를 합성해서 뉴로그래피(neurography)라는 새로운 장르 이름을 붙였다. AI 신경망이 스스로 초상화를 제작한다는 뜻이다. 실제 화가들 판화나 조각처럼 이 장치는 한정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판매용 3점, 아티스트 프루프(AP·판화나 조각에서 작가가 시험판으로 찍은 것) 2점만 만든 것이다.

AI 미술품 경매 시장 본격 열리나

AI 미술품으로는 사실 이번이 두 번째다. 첫 경매는 작년 10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AI가 그린 초상화 에드먼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가 43만2500달러(약 4억9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당시 그 그림은 오비어스(Obvious)라는 개발자 그룹이 수천년 동안 미술사에 있었던 초상화 1만5000점을 입력해서 AI로 하여금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이다. AI 컴퓨터와 연결된 프린터가 가로·세로 70cm 캔버스 위에 잉크를 뿌려 완성했다. 이들은 이보다 앞선 작년 초에는 자신들이 개발한 AI가 그린 또 다른 초상화 한 점을 개별 거래를 통해 한 프랑스 컬렉터에게 1만유로(약 1300만원)에 팔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크리스티에서 낙찰된 그림 가격 4억9000만원은 추정가의 40배가 넘는 액수였다. 이에 비해 이번 3월에 소더비에서 팔린 '행인의 기억I'의 낙찰 가격 6000만원은 추정가 범위 안에 딱 들어가는,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밋밋한 가격이었다. 아직은 AI 미술품의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어정쩡한 상태라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AI 미술품으로 처음 경매됐던 에드먼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
지난해 10월 AI 미술품으로 처음 경매됐던 에드먼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 / 크리스티
지난 6일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된 미술품 '행인의 기억 1(Memories of Passerby 1)'. AI(인공지능) 컴퓨터가 제작한 작품이다.
지난 6일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된 미술품 '행인의 기억 1(Memories of Passerby 1)'. AI(인공지능) 컴퓨터가 제작한 작품이다. / 소더비
AI는 산업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이 시대의 키워드다. AI가 모차르트와 쇼팽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작곡을 하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영화 시나리오도 쓴다. 영국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라는 회사에서는 사람이 데이터를 입력할 필요 없이 스스로 초상화를 그리는 에이다(Ai-Da)라는 인공지능 여성 예술가 로봇을 만들었다. 눈에 장착된 마이크로칩이 눈앞에 있는 대상을 파악해서 연필로 드로잉을 한다.

이런 AI 예술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기성 작가들도 있지만, 반면 적극적으로 AI 기술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도 많다. 미모 아크텐은 AI를 학습시켜서 그 학습 내용을 기반으로 스스로 외부 세계 사진을 찍도록 하는 작가다. 레피크 아나돌이라는 작가는 작년에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00주년을 맞아 예술작품 제작 의뢰를 받았을 때, 이 오케스트라의 100년 역사를 담은 사진, 영상, 음악 등을 기계에 입력해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LA 필하모닉의 공연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건물 외벽에 상영했다. AI의 등장으로 이제는 미술 작가와 과학자 사이의 뚜렷한 경계가 없어졌다. 최근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에서 팔린 두 점의 AI 미술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아니라 과학자들인데,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가격 책정은? 보험 산정은?… 쟁점으로

AI가 그렸거나 AI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그림은 이미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적 미술관 바비칸 센터에서는 올해 5~8월 인공지능(AI: More than Human)이라는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에겐 AI 미술 작품 매매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예를 들어 AI 프로그램이 고장나거나 작품 제작 능력이 떨어질 경우 작품 가치는 어떻게 될까? AI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책정하고, 그에 따라 보험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할까? 오픈 소스를 활용한 AI 작품은 복제가 가능한데, 그럼 다른 기계로 제작한 같은 그림은 위작이라고 봐야 할까? 이제 미술 시장은 이런 생경한 이슈들에 직면한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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