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성녀에 감화받아 다윗이 된 '기업 소프트웨어의 황제'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03.15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3>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긴 기업가는 신화 속 영웅과 비슷한 삶의 여정을 걷는다. 영웅 여정의 시작은 소명(召命)에 눈뜨는 단계이다. 지금까지 삶에 의미를 부여하던 것들이 갑자기 무가치하게 느껴져,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이하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Benioff)에게 그 순간은 인도에서 찾아왔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원조 격인 오러클에서 10년을 근무한 그는 안식 휴가를 떠나 하와이에서 석 달, 인도에서 두 달을 머문다. 당시 그는 오러클의 전설적인 경영자 래리 엘리슨의 오른팔로 승승장구했지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둬? 아니면 창업해? 아니면 오러클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안식 휴가는 해답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찾아다닌다. '포옹하는 성녀'로 알려진 마타 암리타난다마이와 만남은 베니오프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녀는 직업적 야망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고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베니오프는 사업을 하는 것과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것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고, 두 가치가 정방향 정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지훈의 CEO 열전] <3>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마크 베니오프에게 영감을 준 마타 암리타난다마위(앞줄 왼쪽에서 셋째) 힌두교 지도자. 2014년 12월 2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인신매매, 강제 노동, 매춘 등 현대판 노예제를 없애자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다음 찍은 사진. / AP 뉴시스
[이지훈의 CEO 열전] <3>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그는 그 뒤 바로 그 길을 걷는다. 그는 세일즈포스를 창업했고,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가치를 융합한다. 그 전략은 성공했고, 회사는 거의 매년 20% 고속성장했다. 애플 이후 가장 혁신적인 IT 기업으로 불리게 됐다. 2018년 주가는 31% 급등했다. 포천지는 2017년에 이 회사를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큰 대기업 25개 중 1위로 선정했다. 2018년엔 일하기 좋은 직장 100개 중 1위로 꼽았다.

아마존에서 사업 아이디어 얻어

[이지훈의 CEO 열전] <3>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마크 베니오프는 창업을 통해 사업과 사회를 정방향 정렬시키는 그 나름의 길을 찾았는데, 그것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을 통해 전기처럼 빼내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베니오프는 SAP, 오러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공룡이 지배하던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고객의 불편이 무시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이 해결해 줄 가능성을 보았다.

전통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설치가 까다롭고, 유지에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고객은 불편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베니오프는 오러클에서 일했기에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업계는 그 문제를 해결할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

베니오프는 당시 급부상하던 아마존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아마존에서 책을 구매하고 물건을 사듯,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에 접속해 사용하게 하면 어떨까? 그러면 거액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살 필요 없이 월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 고객은 설치와 유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총비용을 90% 가까이 절감할 수 있다. 신의 소명처럼 다가온 이 생각은 그의 삶을 바꾸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바꾸었다.

요즘은 클라우드가 보편화된 비즈니스모델이지만, 베니오프가 창업한 1999년만 해도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베니오프의 상상력이 업계의 기존 상식과 관행에 속박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통찰이었다. 김위찬 교수는 세일즈포스닷컴을 블루오션 전략의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기존 산업이 고객들에게 떠넘긴 모든 문제점을 제거해 경쟁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꿈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베니오프의 위대함은 업계의 공룡들에게 주눅이 들지 않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싸워 이긴 데 있다. 그는 우선 세일즈포스가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린다. 그래서 도출해낸 '원(one) 메시지'가 '노(No) 소프트웨어'였다. 전통적인 개념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세일즈포스는 '노 소프트웨어'를 모든 마케팅, 이벤트, 고객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콘셉트로 정한다. "노 소프트웨어' 배지를 만들어 전 직원이 부착하고, 대표전화 번호를 1-800-NO-SOFTWARE로 바꿨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 자처

[이지훈의 CEO 열전] <3>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는 스스로를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번은 어느 도시에서 진행할 순회 제품설명회 날짜가 업계 강자인 시벨(Siebel)과 겹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일즈포스는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이용한다. 배우들을 고용한 뒤 시벨의 행사장에 보내 가짜 시위를 하게 한 것이다. 배우들은 '노 소프트웨어' 피켓을 들고 "소트프웨어는 한물갔다. 인터넷은 훌륭하다"고 외친다.

장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든 행위가 회사의 원 메시지와 맞닿아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서 브랜드의 힘이 길러진다. 베니오프는 "기업가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베니오프는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충격을 받았다. 같은 건물에 세들어 있던 다른 회사 직원이 세일즈포스 직원들에게 "도대체 뭐 하는 회사냐"고 물었는데, 직원들이 저마다 다르게 대답한 것이다. 베니오프는 내부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는 곧 회사가 지향하는 바와 제품의 특장점, 주요 고객 명단을 두 장의 카드에 담아 전 직원에게 나눠주고, 직원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세일즈포스는 몸집이 계속 커지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개발자들이 세일즈포스와 연계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유하고 팔 수 있는 장터(앱익스체인지)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홀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30만명의 개발자가 4000개 이상의 앱을 제공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세일즈포스는 이제 연 매출이 100억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이 되었지만, 여전히 창업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공지능 분야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혁신적인 벤처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기도 한다. 2018년엔 65억달러를 들여 앱 통합 기술 스타트업 뮬소프트를 인수했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 표출

베니오프에게 사업은 결코 사회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빈부 격차나 직장 내 차별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직원들이 1년에 56시간을 유급으로 자원봉사에 쓸 수 있게 한다. 그는 2018년 개인 자금으로 타임(Time)지를 인수했는데, 편집에 간여할 생각은 없으며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브랜드의 수호자가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훗날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은 자신보다 더 큰 사명을 위해 몸을 던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이 더욱 큰 무엇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더 큰 도전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맡긴다.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는 그런 영웅의 족적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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