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스타트업처럼 혁신 좀 하고 싶다

입력 2019.03.15 03:00

[Cover Story] 대기업의 염원은 왜 번번이 좌절되나… 심층 분석

[Cover Story] 대기업의 염원은 왜 번번이 좌절되나… 심층 분석
게리 피사노 하버드大 교수 / 그래픽=김현국
화려하게 차린 유기농 점심 뷔페, 해먹에서 편히 즐기는 낮잠, 마사지실과 호화 피트니스센터…. 혁신의 산실(産室)인 실리콘밸리 IT(정보 기술) 기업 사무실을 떠올릴 때 흔히 등장하는 풍경이다.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자리 잡은 인터넷 제국 구글(Google) 캠퍼스(본사)는 놀이터를 연상시킨다. 범퍼카 모양 책상에 빨간 공중전화 부스, 거대한 원색 주사위 속에 설치된 회의실, 이동형 미끄럼틀, 그랜드 피아노, 무료 손톱 손질 서비스와 요가 강습까지, 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한동안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주로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확산한 이런 '혁신 문화'는 ①실패에 대한 용인 ②지속적 실험 ③심리적 안정 ④팀워크 ⑤수평적 조직을 강령으로 삼곤 했다.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이런 문화 코드를 이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과연 성공했을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사무실에서 만난 게리 피사노(Pisano) 교수는 "이런 즐거운 분위기를 혁신적 문화의 본질로 간주하는 건 오해"라면서 "기업 규모가 커지면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기업과 협업한 경험을 토대로 올해 초 "대기업(big companies)은 스타트업과 다르게 규율(discipline)을 강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창의적 문화에 규율 더해야 혁신 완성

스타트업들은 흔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 실패에 주눅 들지 말라'고 주장한다. 물론 실패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값진 교훈을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실패를 미화해선 안 된다. 특히 기업 규모가 커져 대기업이 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서투른 생각이 낳은 잘못된 분석과 디자인, 불투명하고 나약한 관리 능력 때문에 초래한 실패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직원을 가차 없이 해고하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직원들을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여 악명이 높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구글은 지구상에서 가장 선망받는 조직이지만 현재 보직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직무를 바꾸는 엄격한 성과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실패는 용인하지만 무능력까지 용인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피사노 교수는 실험을 독려하는 조직 문화 역시 "실험은 권장하지만 강력한 규칙·원칙 아래 진행해야 한다"로 수정한다. 터무니없는 아이디어까지 실험 대상으로 넣어선 곤란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야 한다.

'임직원의 정신적 안정'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인 심리적 안정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함을 전제해야 한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조직은 솔직하게 비평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조직을 이길 수 없다. 특히 아래에서 위로 솔직한 의견이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팀워크는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이 각자 성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감과 협력은 서로 보완적이다. 조직에서 어떤 업무에 대한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책임감이 생기면 그 업무를 성공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주위에 기꺼이 도움을 청하는 협력적 자세로 이어진다.

수평적 조직일수록 강력한 리더십 필요

직원들이 공식 직급과 상관없이 행동하고 교류하는 수평적 조직은 혁신에 가까이 가는 토양이다. 그러나 위계가 없다는 게 리더십 부족을 의미하진 않는다. 수평적 조직일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다. 리더가 전략적 우선순위와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수평적 조직은 혼란에 빠진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의 대명사인 구글과 아마존은 공통적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유능한 리더가 이끄는 곳이다.

피사노 교수는 "기업이 커질수록, 조직을 관리하는 데 힘이 빠져 혁신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 대기업은 어떤 스타트업보다도 경험과 노하우, 자금력을 가졌기 때문에 전략만 제대로 짠다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전통 대기업 경영자 중에서도 창의성과 규율을 적절히 조화시켜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메리 바라 GM 회장,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규율을 강조하는 문화도 혁신과 배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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