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베트남 모델을 참고하라

    • 르 홍 히엡 ISEAS 연구원

입력 2019.03.15 03:00

[WEEKLY BIZ Column]

르 홍 히엡 ISEAS 연구원
르 홍 히엡 ISEAS 연구원
지난달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35세 지도자 김정은이 염두에 둔 건 비핵화 문제 해결만이 아니었다. 경제 제재를 완화해 빈곤에 시달리는 '은둔의 왕국'을 개혁하고 장기 집권 토대를 다지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점에서 북한에 지난 30년간 베트남이 걸어온 개혁·개방 경로는 유용한 전범(典範)이다. 베트남 방문 자체가 정상회담보다 더 의미 있는 행보일 수 있다.

오늘날 북한은 1980년대 후반 '도이 머이(Doi Moi)'라는 개방 정책을 채택하기 전 베트남과 비슷하다. 당시 베트남은 북한처럼 계획 명령 경제 체제였고, 저효율 국영기업이 경제를 주무르고 있었다. 막대한 국방비는 빈곤과 저개발을 초래했다. 캄보디아 침공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에 시달린 점도 흡사하다. 그러나 '도이 머이' 이후 30년간 베트남 경제는 30배 성장했고, 저소득 국가 꼬리표를 뗐으며, 무역 규모가 GDP 2배가 넘는 매우 개방된 나라 중 하나로 변했다. 더 중요한 건 북한처럼 1인 독재 체제는 아니지만 여전히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개방·개혁 조치는 결과적으로 공산당 지배 구조를 공고히 했고, 김정은에겐 솔깃할 대목이다.

베트남도 전엔 미국과 관계가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이 1994년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면서 관계 정상화의 길이 열렸다. 미·베트남 관계는 현재 준동맹 단계까지 와 있다.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 시장이고, 베트남은 미국 기업에 중요한 시장이 됐다.

북한이 정말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를 개혁하고 싶다면 중국보다는 베트남 모델이 더 적합하다. 경제 규모가 비슷할 뿐 아니라, 김정은 역시 중국에 의존하면서 개방·개혁 정책을 편다면 중국을 위협적 존재로 여기는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아는 듯하다.

과거 베트남 공산당 수뇌부는 미국이 자기들과 화해하려 하자 유화책을 써 공산당 정권을 전복하려 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이런 우려는 2013년 미국과 베트남이 서로 정치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양자 선언을 한 뒤에야 온전히 없어졌다. 북한 역시 미국이 체제 전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우선순위는 중국 부상을 막는 것이다. 북한 자체가 관심사가 아니다. 북미가 회담을 통해 각자 뭘 진정으로 원하는지 파악하긴 어렵지만 북한이 베트남식 개방을 택한다면 미국에도 이로울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View & Outlook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