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서 책 1000권 읽은 '호리에몽'… 천의 얼굴로 돌아오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02.15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2) 日 벤처투자자 호리에 다카후미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얼마 전 일본에 가보니 서점마다 몇몇 책이 눈에 띄었다. 벤처기업가 출신의 작가 한 사람이 썼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는 거의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펴내는데, 대부분 수만 권이 팔리고 지금까지 팔린 책을 합치면 3백만 부가 넘는다.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47) 이야기다. 10여 년 전 일본 재계를 떠들썩하게 한 라이브도어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도쿄대 재학 중 벤처 사업을 시작해 만 30세에 인터넷 기업 라이브도어 CEO가 됐고, 일본 사회의 통념을 거스르는 돌출 언행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적대적 M&A를 통해 후지TV 경영권을 인수하려다 실패했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낙선했다. 그는 "'천황이 국가의 상징'이라는 내용으로 일본 헌법이 시작된다는 데 위화감을 느꼈다"는 말을 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는 그 뒤 회계 부정 및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하루 4시간씩 1000권의 책을 읽고, 이메일 매거진을 발행하는가 하면, 옥중 생활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호리에는 2013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에도 다채롭고 남다른 삶을 살고 있다. 벤처 투자자이며,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처럼 우주행 로켓 개발 사업을 벌이고, 메일 매거진 발행자, 회원제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자, 맛집 찾기 앱 운영자, 베스트셀러 작가, 인터넷 방송 진행자,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위 사진)지난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히로시마현 지역구의원 후보로 나선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CEO. 오노미치역 앞에서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
일할 땐 핵심 인원 2~3명이면 충분

호리에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은 배금주의에 물든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기업가라는 비판론과 함께 기득권에 도전장을 내민 대가로 표적이 됐다는 동정론이 뒤섞여 있다. 그는 만화 도라에몽을 따서 호리에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주장에 수많은 이가 귀를 기울이고 종교 집단의 신도라 할 만한 추종자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살아가고 주장하는 삶의 방식의 어떤 점이 일본인에게 어필하고 있을까?

첫째, 그는 소속되지 않는 삶,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산다. 그런 삶을 권장하며 '속하지 않는 용기'란 책도 냈다. 회사라는 조직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삶의 방식일 뿐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 이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이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간에 모여 일해야 하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호리에는 일할 때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만들어 한다. 이를테면 그는 '호리에 다카후미 혁신대학교'(약칭 HIU)라는 회원제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여러 일을 벌이게 하고 호리에가 도와준다. 회원들이 벌이는 일 중 하나가 매년 개최하는 호리에몽 엑스포라는 축제다. 음식과 서브컬처, 음악을 버무린 일종의 성인 문화제. 2019년에는 2월 2~3일 이틀간 도쿄 롯폰기에서 개최했다. 행사의 독특함과 다양성, 프로그램의 방대함에 입이 벌어진다.

실험적 삶을 사는 유명인과 호리에 다카후미의 릴레이 토크쇼가 있고, 로봇 등 최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쇼도 있다. 행사 기간이 일본의 명절인 절분 기간임에 맞춰 액막이 풍습인 콩 뿌리기 이벤트를 호리에 다카후미와 연예인들이 함께 코믹하게 개최한다. 아마추어 패션쇼와 격투기, 200명이 참여하는 미팅 등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행사에 참여하는 식당에 가면 행사 기간 한정 특별 메뉴를 내놓는다. 여러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DJ 시설을 갖추고 음악을 틀어주는 버스를 이용한다. 27곳에서 30건 이상의 이벤트가 벌어진다.

회원들이 재미로 벌인 일인데, 어떤 대형 조직도 엄두를 못 낼 큰일을 해낸 것이다. 호리에는 이렇게 일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므로 "앞으로 회사 같은 상명하달식의 큰 조직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몇 년간 이런 형태로 일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고 말한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핵심 인원 2~3명과 필요에 의해 모인 행동부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기에 '힘들지만 돈 때문에'라고 타협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만 골라 하라

둘째, 그는 할 일을 고르는 삶을 추구한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그 시간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에만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일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집이 없고 호텔에서 살기에 청소나 빨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이 열중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청소라면 열심히 하겠지만, 자신에게 청소는 조금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일이기에 인생을 살면서 할 일 목록에서 청소를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한다. 부자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반론에 대해 그는 가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면 시간당 2500엔이면 가능하니 자신의 한 시간이 2500엔보다 가치가 높아지는 데 투자하라고 말한다. 그는 옷을 선택하는 일도 친구에게 맡긴다. 옷을 고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고르는 일차적인 기준은 재미이다. 그는 재미가 일이 되는 삶을 산다. 맛집을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인 그는 이를 사업화해 데리야키라는 맛집 검색 앱을 만들었다. 호리에 본인을 비롯해 몇 명의 음식 전문가가 직접 돌아다니며 맛집을 발굴한다.

여러 직함을 가져라

셋째, 그는 여러 직함을 가지는 삶을 추구한다. 산업과 산업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에 정년까지 한 가지 직업에 매진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호리에는 '다동력(多動力)'이란 책에서 1만 시간 법칙의 새로운 버전에 대해 말한다. 1만 시간을 투자해야 비로소 한 분야에서 100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100명 중 한 명 곱하기 100명 중 한 명이니 1만 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완전히 다른 분야에 다시 1만 시간을 투자하면 100만명 중 한 명의 인재가 탄생하고 몸값이 급상승한다.

호리에 다카후미는 직함이 '사업가·컨설턴트·프로그래머·작가·해설가·방송인·로켓개발자·음식점 프로듀서·온라인 커뮤니티 주최자' 이렇게 셀 수 없이 많다. 스티브 잡스는 "점과 점을 연결해 나가면 어느새 선이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 일 저 일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흩어져 있던 점과 점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어진다고 호리에는 말한다.

결국 호리에 다카후미가 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술의 힘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면서 겁내지 말고 행동에 옮겨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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